차나무의 싹이 뾰쪽하게 돋아난 것을 아(芽)나 창(槍)이라 부르고, 그것이 자라서 펼쳐진 잎을 엽(葉)이나 기(旗)라고 부른다.
송조의 웅번은 차싹이 차의 원료로 가장 좋다고 하면서 소아(小芽)라 부르고 작설(雀舌 참새 혀)과 응조(鷹爪 매 발톱)처럼 생겼다고 하였다.
조선조의 시문과 사서에서는 작설이 차의 통칭으로 쓰였다.
200년 전, 칠불사에서 다신전의 원전을 베껴 갔던 초의는 '칠불사의 스님들은 늦게 딴 찻잎을 햇볕에 말려서 솥에다 풀풀 끓여서 마시는데, 붉고 탁하면서 쓰고 떫으니 비속한 솜씨로 차를 버려 놓았다'고 비난하였고, 쌍계사의 만허가 만든 차를 맛 본 추사는 '용정의 첫물차만큼 좋다'라고 칭찬하였다.
우리차가 긴 암흑기를 거치는 동안에 음풍농월하던 고상한 다풍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화개와 악양의 민가에서 만들어 마시던 잭쌀이 우리차의 명맥을 이었다.
'우리 차의 명맥은 민간의 황차에 의하여 이어져 왔습니다. 해남 강진 지역의 정다산차(丁茶山茶)나 화개지역의 작설차(雀舌茶)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급체나 감기를 다스리는 상비약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례, 사천 등지에도 그 지역 특유의 발효차가 있었습니다. 화개가 고향인 저는 해마다 겨울이면, 부뚜막이나 온돌방에서 시들리고 띄워서 만든 「잭쌀」(작설의 화개지역 사투리)의 다향이 화로불 위에서 피어나던 기억을 문득문득 떠올리곤 합니다.
... 머지않아 차시장이 개방되면 중국산 발효차가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 뻔하니, 우리는 서둘러 우리 땅에서 나는 차잎의 성질에 알맞고, 우리의 입맛에 맞는 좋은 발효차를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위 글은 2001년에 제가 <다담>지에 기고한 ‘황다론(黃茶論)’의 일부이다.
지금은 잭쌀이나 우리황차 같은 빛바랜 유산에 얽매어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커피와 인도산 홍차와 중국산 육대다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우리녹차와 우리발효차를 속히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