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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원문 글과 사진을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ㅠㅠ
https://blog.naver.com/ktusjye/221671671392
옆지기는 약속이 있어 나간다하니 혼자 남는다.
썩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
인근 갈 만한 곳을 찾아본다.
만만한 곳이 감악산이지만
평일, 임시버스가 운행하지 않으니 여의치 않다.
그렇게 지도를 검색하다 찾은 곳이
김포에 있는 문수산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애매하고
차를 끌고 길을 나선다.
문수산 산림욕장에 2천원 카드결제를 하고 주차한다.
문수산성을 한 바퀴 도는 코스를 염두에 뒀지만
현장에서 상황을 볼 일이다.
문수산성 안내도가
대략적인 등산안내도를 겸하고 있다.
주차한 곳에 문수산 등산로가 있어
그 곳에서 출발, 능선에서 한 바퀴 돌아 하산하기로 한다.
등산로표시가 주차장 옆 계단을 가르킨다.
등산로로 접어드니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이 잠시 트이는 능선,
염하강 건너 강화도가 보이고
앞쪽 강화대교와 그 너머 구, 강화대교가 보인다.
1965년 착공, 1969년 12월 완공하여
다음 해 1월에 개통된 구 강화대교, 노후화로 인한 붕괴위험으로
1993년 신 강화대교 공사를 착공하여
1997년 12월 완공, 개통되며 구 대교는 폐쇄되었다.
강화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나루에서 만조를 기다려 해수면이 8미터에 이르렀을 때
버스를 나룻배에 실어 오갈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이 길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초입 경사가 꽤 있었다고 기억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이다.
사람 기억의 한계다.
혹시 나의 기행 어느 부분에 이런 실수가 있지 않았은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능선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 산성 성곽은 아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군부대 능선 초소가 보인다.
둘레를 돌아 보는데
반대편으로 성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옆으로 등산로는 있지만
성곽위 제법 넓직한 길을 걷는다.
이내 풀에 가리워진 곳을 벗어나
다시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봉우리를 따라 성곽이 노출되도록
수목 제거작업을 한 형태가 드러난다.
문수산성길이 겹쳐지는
평화누리길, 애기봉 7.3킬로미터를 표시하고 있다.
능선 트인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있다.
뿌연 안개에 썩 좋은 시야는 아니지만
김포와 강화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염하강이 보인다.
문수산성 안내판에는 처음 축조할 당시
성가퀴, 여장이 설치되었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막상 성가퀴는 보이지 않는다.
복원된 부분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순조 12년(1812) 대대적인 개축이 있었다는데
그 때 없앤것인지 알 수가 없다.
50센티미터 내외의 길이
성곽 위를 따라 걷기에 불편하지 않게 이어진다.
잠시 뒤돌아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앞 쪽 계곡 능선에 정자가 보이고
그 뒤 봉우리 정상에 한옥 지붕이 보인다.
문수산 정상에 설치된 장대다.
등산로를 벗어나 성곽위를 걷는다.
잠시 능선에서 벗어나
밑에서 보이던 정자에 도착한다.
김포와 마주한 강화 끝머리가 보인다.
그 강변을 따라가면 한강과 임진강과 합류하며
이내 서해 바다 품에 안겨 장정을 마무리한다.
안개 저 너머 북녘땅이 있다.
문수산성이 길게 능선을 따라 흘러가고
성곽에는 당시 군사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문수산성 성문은 서, 남, 북, 세 개의 문루와
동, 서, 남 북, 네 곳에 아문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동, 남 아문만 남아있다.
아문은 북한산성의 암문과 같은 역할로
성곽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의 눈을 피해 사람과 가축이 양식 등을 운반하던 곳이다.
현존하는 두 아문 중 남아문이다.
안에서 보면 사각형이지만
밖에서 보면 아치형 홍예문이다.
성곽 위를 걷다가 남아문에 이르러
잠시 아문을 구경하고 다시 성곽으로 오르려는데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문수사 5백미터', 오르던 방향 왼쪽,
외부에서 남아문을 들어서 안쪽으로 길을 안내한다.
다소 돌아가더라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경사가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초입은 완만하다.
하지만 이내 다소 급한 경사가 나온다.
화물 운반용 레일이 보인다.
성곽복원공사용으로 보인다.
몇 번의 폭우로 다져졌던 길이
경사로에서는 넓게 패였다.
가운데 패인 부분은 크고 작은 돌들이 그대로 드러나
가장자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백여미터 그런 길을 내려가자
문수사, 유격장 방향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사찰 초입 터 아래 계단 끝에
해우소가 있다.
비탈 사이 동굴이 철책에 막혀있다.
안을 들여다 보니 석간수가 흘러나오는지
그물망을 씌워놓은 안쪽에 바가지가 놓여있다.
아마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수원이 안에 있는 듯 하다.
본당인 비로전이다.
문수사는 신라 혜공왕(서기 765 ~ 779년)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일설에 의하면 876년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우측에 석탑은 3층으로 보이는데
입구 문수사 안내 현판에는 5층석탑으로 소개하고 있다.
본당인 비로전과 뒤로 보이는 요사채 건물,
두 동이 문수사의 전체 구조다.
산의 이름까지 바꾼 사찰치고는
극도로 왜소하다.
비로전 왼쪽 끝에 약수가 흐르고 있다.
석간수를 연결해 흘러내리는 약수를
바가지에 담아 마신다.
왼쪽으로 풍담대사 부도가 있다는데
길은 흔적으로 보여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돌아선다.
남아문 바깥으로 나와 외벽을 바라본다.
출입문이 횽예문으로 드러난다.
발굴 조사에 의하면
성벽은 40 ~ 60센티미터 자연석과 깬돌을 이용해 쌓았으며
차이는 있으나 9 ~ 14단,
높이 2.5 ~ 3미터로 확인되었다.
문수산성은 조선 숙종 20년(1694),
갑곳진과 한양을 수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2014년 고려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한 결과
발굴된 유물에 의하여 추정한 결과
삼국시대에 이미 산 정상과 8 ~ 9부 능선을 따라
길이 3백미터에 달하는 산성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앞 봉우리 성벽과 지붕 있는 곳이
문수산 정상이다.
그 밑 봉우리에 헬기장이 있고
끝 쪽으로 제단이 보인다.
'문수제단',
'문수산을 오르는 산악인의 강녕을 기원하며
새 천년을 맞아 여명을 알리는 곳을 향해 제단을 세운다.'는
취지의 설립문이 제단비 뒤에 써있다.
사적 139호 문화재 문수산성,
장대가 서있는 정상 바로 아래 비탈 수십미터가
성곽 보호를 위해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우회하여 정상으로 올라간다.
해발 376미터, 문수산 정상이다.
김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고 불린다.
'비아산'으로 불리웠으나
'문수사'가 세워진 이후부터 '문수산'으로 불린것으로 전한다.
장대성곽 바깥에 정상석이 서있다.
장대 출입문이다.
문수산성의 지휘소인 장대가
한국전쟁 이후 군용 헬기장으로 사용되면서
유적이 크게 훼손되었다.
2009년 인공암반을 해체, 조사하여
장대 유물을 발굴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17년,
장대와 성벽을 복원하였다.
김포와 강화사이를 흐르는 해협, 염하강이다.
신 강화대교와 구 강화대교가
나란히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정상, 장대를 내려와
다시 성곽을 찾아간다.
정상 건너편 전망대에서 장대를 뒷배경으로 두고
셀카를 찍는다.
맑은 날이면 북녘 땅, 개성과 송악산도 보인다는데
기약할 수 없는 마음에 하늘이 원망스럽다.
수풀 덮인 오른쪽에 성곽을 두고 계속 걷는다
훤한 곳에서 전망대에 올라선다.
산부추가 분홍빛 원형꽃을
짙고 옅은 질감을 뽐내며 화려하게 피어있다.
지나 온 곳을 돌아본다.
훼손된 성벽 곳곳에 돌무지로 드러나 있다.
계속 이어지는 성곽위를 걷는다.
무너진 성곽이 널부러져
등산로 일부를 이루고 있다.
북아문이다.
이곳까지는 많은 이들이 찾지 않는 듯,
풀이 길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괘레일이 성벽을 따라간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주변을 기웃거리는데
레일 옆에 고양아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녀석도 울음소리를 내지만
다른 방향에서도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저 녀석의 새끼가
수풀속에서 어미를 기다리며 울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 지나가니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려고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고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보이는
석축이 비교적 깨끗한 봉우리에 선다.
북쪽방향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연봉이 보인다.
안개는 좀처럼 걷힐 기미가 없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무너지고 만다.
진행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여
무심코 따라간다.
성곽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쯤 알아차렸다면 다시 올라
성곽을 찾아 다소 편하게 하산했을텐데
초행길이라 성곽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40도를 넘나드는 경사로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신경 써서 찾는다.
산악회 이정표 리본이
역시나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급경사를 내려오니
아래 완만한 길이 보인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인듯,
또는 임도인듯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철조망이 쳐진 길을 지나자
시야가 열리고 염하강과 강화도가 건너다 보인다.
도로로 나서자
문수산성 북문이다.
문수산성을 총길이 6,123미터인데
특히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의 치열한 교전으로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어 마을을 이루었다.
문루 중 북문과 남문, 남아문,
문루와 성곽 434미터 구간을 복원하였다.
염하강 철책이 아주 가깝다..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밀물 때는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얕아서 썰물 때에는 곳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조선시대에는 삼남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이
염하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는데
전쟁 후 뱃길이 봉쇄되었다가
2007년부터 민간어선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47807&cid=40942&categoryId=33365>
염하강은 명칭과 달리 민물이 아닌 바다다.
어찌하여 그런 명칭이 생겨났을까?
검증할수는 없었지만
네이버 지식인에 그 유래를 밝힌 글이 있어 옮긴다.
1866년 9월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하며
강화앞바다와 한강유역의 해도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프랑스군이 작성한 해도에는
강화와 김포 사이의 바다가 프랑스어로 "Rivière Salèe"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salèe는 '짠, 짭짤한, 염분이 있는'의 뜻을 가진 말이고
Rivière는 하천(河川)이니
강화 앞바다를 소금기가 많은 강이라고 봤던 것입니다.
프랑스는 이 해도를 가지고 강화도를 침략하여
강화유수부에 불을 지르고
외규장각의 은괘와 수많은 문화재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군도 이지도를 가지고 조선을 침략하였고
1876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때도 이지도를 가지고 쳐들어 왔습니다.
일본은 이미 1867년 프랑스 해군이 만든 한강유역 해도를 구입하여
고려서안 염하지도라는 지도책을 발간하였습니다.
프랑스어로 "Rivière Salèe"라고 기록되어있는것을
일본식으로 직역하여 염하로 번역한것이죠.
이후 식민지 시절 발간한 일반 지도책에도
강화앞바다는 염하로 기록됩니다.
이것이 강화 앞바다가 염하로 변한 최초의 기록이고
일본이 창지개명한 시초입니다.
<출처 : https://tip.daum.net/question/111136062?q=%EC%97%BC%ED%95%98%EA%B0%95>
안타깝게도 해안을 따라서는
성곽이 없다.
신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르며
모두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누렇게 익은 벼 뒤 제방이 보인다.
잠시 길을 벗어나 들어가 본다.
성동저수지다.
제방에 올라보고 싶었는데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것 같아 돌아 나온다.
도로 위에 평화누리길 이정표와
파란 실선이 보인다.
언덕위에 누마루가 보인다.
최근 복원하여 석축이 깨끗하다.
바로 올라갈 수 없고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서 들어가야 한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든다.
문수산성 남문 '희우루'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파손되어
1998년, 문루와 성곽 158미터를 복원하였다.
내성으로 들어서 문루에 올라 서니
구, 신 강화대교가 눈에 가깝게 들어온다.
성곽이 군부대 철책에 가로막힌다
출입문 잠긴 문루 안을 들여다 본다.
아무런 장식도 격식도 없는
경치좋은 곳에 지어진 정자와 다름없다.
문수산성을 관할하던 문수진과 서문, 공해루가 옛 지도에서 확인되어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복원할 예정이다.
성문을 나와 산 방향으로 향하지만
굳게 닫히 군부대 철문 앞에서 되돌아 나온다.
다시 돌아나와 강화대교 초입으로 나온다.
문수산 산림욕장으로 들어서기 전,
강화대교 초입에서 보았던 현장을 담기 위해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받은 농가 네 곳이 확인되며
섬 안 모든 돼지가 살처분된 강화도를 오가는 다리 두 곳 중
강화대교 초입에서 차량에 대한 방역이 실시되고있다.
문수산 선교회, 김포장례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문수산 수목장 건물 끝에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철책길 입구가 보인다.
문수산 산성길이 평화누리길과 중복되어 있었으니
아마도 저 곳으로 올라가면
오르면서 갈라졌던 능선으로 닿을 수 있겠다.
통나무를 가로 걸친 계단을 오른다.
등산로가 환하게 드러나 있다.
등산로에 난데없는 비석과 상석이 놓여있다.
비석에는 '토지지신'이라고
신위가 새겨져 있다.
섬기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오히려 길 바깥쪽에 놓는 것이
정성도 그렇고 미관도 그렇고 맞지 않을까?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경사진 흙길이
어떻게 폭우를 견뎌냈을까, 우려된다.
사람이 다니며 훼손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성벽을 넘어서니
문수산산림욕장에서 올라
능선에 다다라 마주쳤던 초소가 보인다.
하산길을 서두른다.
사람의 기억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산길에 접어들며
오르던 길이 가팔랐었던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체로 완만하다.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이
바로 눈 앞으로 다가선다.
산을 빠져나오기 전,
문수산사림욕장으로 잠시 들어서다
입구 건물 앞에서 돌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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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따라 쪼르르 다니다보니 큰아들 강안 근무 할때 뻔질나게 면회 다닌 기억이 삼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