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을 집에 들이다 / 손성호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개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을 쫓아 2년 전 아파트에서 시골로 이사했다. 집사람 소원대로 진돗개 혈통을 살짝 이어받은 백구와 검둥이를 데려와 마당 한편에서 살게 했다. 떡장이 집안이라 흰 개는 '보리', 까만 개는 '쌀'로 이름을 지었다. 나중에 아내는 쌀이 코커스패니얼 순종이라며 '별'로 이름을 바꿨다. 얼마 되지 않아 별 역시 잡종이라 밝혀졌지만 이미 이름이 입에 붙어 버려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뒀다. 도로 바로 옆 집인데다 대문이 없어 내키진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낮은 울타리에 보리와 별이를 가둬 키웠다.
강아지가 밤낮없이 낑낑대는 탓인지 수시로 동네 개들이 들이닥쳤다. 자다 일어나 내쫓거나 붙잡아 마을 회관 앞에 세워진 경운기에 묶어 놓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아내도 피곤했는지 대문을 달면 좋겠다고 했다. 견적을 받아 보니 가장 싼 게 시공비를 빼고도 48만원이라 차라리 직접 해 보면 어떤지를 집사람에게 물었다. 못미더워 하면서도 인건비까지 더하면 백만 원 정도라 해 보라고 했다.
치수를 재니 폭이 4.8미터였다. 주방 뒤쪽 다용도실을 고치면서 챙겨 두었던 방부목을 쓰기로 하고 대충 설계도를 그렸다.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는 토요일에 만들기로 하고 일단 철물점에서 경첩과 나사못, 와이어(wire), 턴버클(turnbuckle), 빗장을 샀다. 수시로 설계도를 고치고 인터넷에서 '방부목 대문'을 검색했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온통 다른 집 대문만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이 다가올수록 멋진 대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모처럼 설렜다.
눈을 뜨자마자 톱질을 시작했다. 방부목으로 세로 1.2미터 가로 2.3미터 크기의 사각틀을 두 개 만들어 경첩으로 기둥에 달고서 와이어와 턴버클로 쳐지지 않게 했다. 안쪽에 윗부분과 중간엔 가로로 빗장을 붙이고, 밑에는 세로 빗장을 달고선 미리 잘라 놓은 방부목을 나사못으로 틀에 붙였다. 완성하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도 예쁘게 잘 만들었다며 칭찬했다. 떡하니 들어선 멋진 대문을 바라보며 아내와 막걸리로 축배를 들었다.
일요일 새벽에 대문이 주저앉았다. 출근하려 아내가 빗장을 풀자마자 와이어가 끊기면서 경첩이 틀어졌다. 전날엔 미처 몰랐지만 문의 엄청난 무게를 세로로 된 빗장이 그나마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사를 풀어 기둥에서 문을 떼어 힘들게 옮기는데 틀이 틀어지면서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동네 사람들 보기 전에 고치려는데 한쪽 나무 기둥마저 금이 가 버렸다. 박았던 나사를 풀고 있자니 지나는 사람마다 위로의 한마디씩을 건냈다. 공사판에서 잡일을 오래 했다는 이가 문틀만큼은 사각 파이프를 용접해서 만들어야 탈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두 달만에 대문을 완성했다. 주말에만 작업할 수밖에 없었던 탓도 있지만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용접에 꽤나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격려를 하던 동네 사람들도 걱정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굳이 대문을 왜 만들어? 못 하겠으면 차라리 사람을 부르지?'라는 식으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간신히 걸린 대문엔 초보가 용접한 것을 드러내는 많은 구멍과 땜질 자국이 보였다. 그래도 조금 떨어져서 보면 제법 그럴듯했다.
또다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가지고 며칠을 지켜봤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색칠을 하겠다고 하자 아내는 지금도 괜찮다며 말렸다. 일단 문에 밑그림을 그리고서 빨강,노랑,파랑, 그리고 하얀색 페인트를 칠했다. '기껏 고생해서 만들고선 다 버렸다.' '대문은 집 얼굴인데 어쩌자고?' 지나는 사람들은 혀를 차거나 안타까워했다. 집사람조차 마치 당골래 집 같다며 어이없어 했다. 나중에 보면 '와!' 할거라며 달랬다. 세 번 덧칠하고서 검정색으로 선을 그었다.
사람들은 재밌고 특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를 '대문이 알록달록한 집 바깥양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네 잔치가 있어 인사 차 들렀는데 처음 본 이가 내게 포기할 줄 알았는데 기어이 해내더라며 술을 권했다. 누군가는 쓰다 남은 갖가지 페인트 통을 건네주며 예술 분야의 일을 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무난한 대문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성공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은 내가 대견했다. 어느 날 아내는 친하게 지내는 언니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그녀는 대문을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와! 몬드리안이다."
첫댓글 와! 재밌어요. 자랑할 만해요.
수업하면서 못 한 말
이 글이 좋은 이유는 동네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더불어 산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경에 깔아 놓음으로써 독자에게 흐뭇한 느낌을 안겨 주기 때문인 점도 있어요. 옆에 살 뿐 이웃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풍경이니까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몬드리안 대문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