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 일식 (외 2편)
이소연
생일이 끝났을 땐
거의 모든 기쁨이 사라졌다
거의 모든 기쁨이 거짓이 되려 할 때
한 사람이 생크림을 뒤집어쓰고 달아나는 바람에
촛불이 꺼지고 다만 한 조각 진심이 남았다
겨우 한 조각이 남은 것에 대해
누군가는 처치 곤란이라고 했다
축하를 끝낸 친구들은
언제나 다시 먹지 못할 음식을 남기고
나는 음료가 반쯤 남은 컵을 치우다 외로워지곤 했다
영혼은 파티를 끝낸 뒤에야 밝아온다
나와 친구들은 생일 케이크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
진짜는 사진 속에만 있다
운 좋게 학을 봤다며 내게 학 사진을 보내주던 사람의 연락이 끊겼다
더는 학을 볼 수 없다고 했다
학은 살아 있을까?
우리는 왜 슬픈 생각을 먼저 가지려 하는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의 불행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귀한 것을 가질 수 없을 땐 마음에서 덜어내려고 노력한다
부분 일식이 있다는 그 시각에 나는 수면 내시경 중이었고
잠 속에선 눈이 멀도록 하늘을 올려다봤다
부분을 지운다는 건 그것을 아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고
조금도 어두워지지 않는 일식에 대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 인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을 아는 것 뿐이다
누가 뒤에서 내 어깨를 툭 치고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사라지던 여름이었다
타인의 삶
조용한 가스불, 차분한 음악
침묵의 행렬을 지나 동그랗게 웅크린 말들
내가 홍차를 우려낼 물을 끓이고 있었을 때는
첫눈이 십 센티쯤 쌓인 아침 아홉 시였다
채광은 속과 겉이 같아지려 하고
우리는 납작한 사람이 되려 하지
나는 말하는 것을 믿고
말하지 않는 것도 믿고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는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잘못을 빌고 있다
가스검침원이 여러 차례 방문 중인데도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건 계획된 누출인가?
당신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눈송이처럼 사뿐한 걸음
이리 오렴 아이야
나는 당신의 말을 믿기 위해서 말 잘 듣는 아이를 키우지
오늘 아침의 홍차는 상처를 씻어낸 물 같아
속눈썹 같은 중력을 본다
찻잔 속에서 가라앉고 있는 것들
여길 나가야 살 것 같은데
침은 입 밖으로 나가면서 더러워지고
내 그림자는 집 밖을 나서자마자 악착같이 끌려다니네
초록을 흠향하고
다들 집 밖으로 나가지 말자고 하였으나
문 없는 집은 없어서
나의 집이 먼저 나를 이끌고 외출하였다
집은 송장나무*를 찾아가 송장같이 지내는 법을 묻는다
꽃잎은 왜 아래만 바라보는 걸까?
개미는 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되돌아갈까?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서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긴 사람처럼 좋았다
굽 높은 신에도 바짓단이 젖고
얼굴을 들면 세상이 물에 잠겼다
약(藥)이 된다는 말을 좋아했다
서로의 반대쪽 손등을 부딪히며 걷는 일은
나도 아는 걸 너도 안다는 뜻이어서
말하지 않아도 숨이 차올랐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죽은 노루를 본 우리는
“치워주고 갈까?”
아직 남아 있는 온기를 치우며 슬퍼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는
나에게서 너를 구하려고 멀어질 때가 있었다
멀리서 사랑하는 일은
비처럼 그친다지
“빗소리 들려?”
멈추지 못하는 호흡들, 헉, 헉, 발밑의 집들이 보인다
지붕, 지붕, 지붕, 없는 것들이 꿈틀거렸다
우리는 초록을 흠향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상장나무
서울신문 2020-05-18 23면 '시는 위로다'<7>
―시집 『거의 모든 기쁨』 202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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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 경북 포항 출생.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 에세이집 『고라니라니』. 창작동인 〈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