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에 능한 여자 / 양선례
어제 송가인 콘서트에 다녀왔다. 찾아갈 정도로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가까운 데서 열리는 데다 아이들이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티켓을 끊어 줘서 남편과 가게 되었다. 그 역시 팬도 아니고, 노래를 그다지 즐기는 편도 아니라서 날짜가 다가올수록 부담스러워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벚꽃 날리는 둑길을 조금 걷다가 들어서니 입구에서부터 온통 분홍 물결이었다. 그것도 우리 부부보다 꽤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알고 보니 티셔츠, 모자, 응원 봉, 가방까지 분홍으로 단장한 송가인의 팬클럽 ‘어게인’ 팀이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온 거였다. 말로만 듣던 열혈 팬을 처음으로 봐서 재미있으면서도 신기했다.
과연 그녀는 그 명성에 걸맞게 노래를 잘 불렀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얼굴은 조막만 하고, 허리가 짤똑한 것이 개미허리 같았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창력이 대단했다. 처음에는 신곡 위주로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청춘 부르스’, ‘결이 달라’, ‘가인이어라’를 불렀지만 귀에 익숙한 노래가 아니라서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나마 휴대폰 플래시를 다 함께 흔들며 부른 ‘서울의 달’만 어디서 들은 적이 있을 뿐이었다. 중간에 자신의 사인 시디(CD)를 나눠 주는 팬 서비스 시간에 진도에서 마을 사람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온 그녀의 아버지가 당첨된 것이 재밌었다. 1,500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단 다섯 명을 뽑는데, 그 안에 포함된 우연이 놀라웠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한 많은 대동강’을 비롯하여 ‘전선 야곡’, ‘불효자는 웁니다’ 등의 정통 트로트를 불렀다. ‘전선야곡’은 나도 즐겨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절 가사는 잘 알지만 2절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전선야곡'은 2절 가사가 맘에 들어 좋아하게 되었다.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 /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 아 아 아 쓸어 안고 싶었소.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에 발표되었다. 피곤을 이기지 못해 앉은 채 깜박 잠이 든 꿈에서, 정안수 떠놓고 비는 어머니를 본 젊은 병사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 간절함이 노래하는 내게까지 느껴져서 곡의 마지막 구절을 부를 때면 목이 메인다. 아마도 그 어머니는 ‘공’보다는 자식이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빌지 않았을까.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저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을 정도로 한때는 애창곡이었다.
‘불효자는 웁니다’는 아버지의 18번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골목 어귀에서부터 불렀다. 아버지는 노래 끝에 늘 울었다. 그런 아버지가 정말 싫었는데 이제는 전주만 울려도 잊고 있던 아버지가 절로 생각난다. 마음이 울리니 비로소 브이아이피(VIP) 석의 티켓값이 생각나지 않았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서 제3부는 ‘쓰러집니다’, ‘당돌한 여자’ 등의 흥겨운 곡이 이어졌다. 두 시간이 넘어서자, 그때부터는 아예 신나는 ‘트로트 메들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송가인의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멋진 무대였다. 그때쯤 나는 그녀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노래는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춤은 젬병인 거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신나는 리듬에서도 엉덩이나 손을 슬쩍슬쩍 좌우로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저 무대에 섰더라면 저 부분에서 저렇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번 주 글감에 맞는 소재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터라 한번 그리 생각하니 관찰자의 시선으로 살피게 되었다. 그녀는 나만큼이나 몸치였다. 하긴 산과 물이 좋은데 정자까지 있으면 세상사 무슨 재미랴. 그녀 스스로도 공연 막바지에 흥은 많으나 춤은 못 춘다고 이야기하더라.
나도 그렇다. 친구랑 둘이 산책하다가 공터에서 운동하는 팀을 만나면 친구는 꼭 그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나는 뒤에 앉아서 ‘어? 아저씨가 다 따라 추네’, ‘저 아주머니는 뚱뚱한 데 비해 몸이 날렵하네. 동작이 이뻐.’, ‘아이고, 저분은 음악과 몸이 따로 노네.’ 등으로 점수나 매기고 있다.
나이 들어 좋은 점 하나가 남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아닐까?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내 식대로 살기도 부족하다. 잠시 다른 사람의 도마에 오를 순 있지만 곧 잊을 거라고 착각까지 한다. 그러니 젊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안 하던 것도 자기 합리화를 하며 도전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당당히 ‘음주가무’에서 전자는 안 되지만 후자는 아주 잘한다고 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춤이 뭐 별건가.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방방 뛰면 되지. 한 손을 45도로 들어 천장을 향해 찌르고, 두 발 모아 방방 뛰기. 한 방향만 보지 말고 간혹 뱅글뱅글 돌기도 할 것.
나는 가인이와는 다르게 흥도 많고 춤도 잘 춘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