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8)신명학교(新明學校)를 설립한 박병현(朴秉鉉) 선생의 섬암고택(剡巖故宅)
박영환 2023. 12. 28. 21:27
섬암고택
청도신문(2023년 12월 27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8)
신명학교(新明學校)를 설립한 박병현(朴秉鉉) 선생의 섬암고택(剡巖故宅)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에 위치한 섬암고택(剡巖故宅)을 찾았다. 섬암고택 주변에는 웅장한 고택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 모두 중심 고택인 운강고택(雲岡古宅) 집안의 살림집이었다.
운강고택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의 후예인 성경당(誠敬堂) 박정주(朴廷周)가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운강(雲岡) 시묵(時默)이 크게 중건하였기에 운강고택이라 부르고 있다. 운강의 맏아들 진계(進溪) 재형(在馨)은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대비정사(大庇精舍)에서 강학 활동을 하며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등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이곳은 운강(雲岡)의 둘째 아들 재소(1840-1873)가 분가하면서 건립하였는데 양아들인 섬암(剡巖) 병현(秉鉉, 1865∼1929)의 호를 따서 섬암 고택이라 하였다.
섬암은 진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들이 없는 삼촌의 대를 이었다. 1906년 12월 29일, 자신의 종중답 200 두락을 기본재산으로 사립 신명학교(新明學校)를 개교했으며 1917년 3월 사립 선암보통학교(仙巖普通學校)로 교명을 변경했다. 이 학교는 1919년 5월에 금천공립보통학교(錦川公立普通學校)로 바뀌었으며 사립일 때는 4년제였으나 공립이 되면서 6년제가 되었다. 지금의 금천초등학교이다.
섬암은 공릉참봉(恭陵參奉)을 지냈으며 효심도 깊어 교남지(嶠南誌)에 등재되는 등 지역에서 그 공덕을 크게 기렸다.
섬암고택의 전체적인 배치는 ㄱ자형의 안채를 제외한 중문채, 도장채 등은 一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 중문, 헛간채, 고방채, 대문채 등이 일곽을 이루는 전형적인 상류 주택의 공간구성을 이루었으나 1990년 2차선 국도 도로 확장공사로 정면 5칸, 측면 3칸인 사랑채와 정면 4칸, 측면 1칸인 대문채가 철거되어 경역이 축소되었다.
사랑채는 안채에 비하여 기단과 지붕을 높게 하여 집 전체를 화려하게 꾸며서 이 지방에서는 격식을 갖춘 집으로 알려졌다.
외부공간은 안마당, 사랑마당, 바깥마당으로 구성되었는데, 안마당은 생활공간으로서 부엌 맞은편에는 약 50년 전에 판 우물이 있다.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후손인 성규(性奎, 교직에서 퇴직)가 거주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신지리는 수량이 풍부한 동창천이 흘러 주변의 큰들인 중방천들, 민들, 멜들 등 곡창지대가 형성되었고 이를 활용하여 거부(巨富)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 대표적인 집들이 운강고택, 섬암고택, 명중고택(明重古宅), 도일고택(道一古宅), 운남고택(雲南고택) 등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지방도 919호선을 내면서 소중한 유형문화재인 고택들이 도로구역에 편입되면서 많이 훼철된 것이 무척 아쉽다.
‘섬암고택’이란 시제로 글을 올린다.
새 시대 열려면 신학문을 배워야
신명학교 설립한 선각의 큰 혜안
여명에 불을 밝히는 그 중심에 섬암고택
사랑채
금천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