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
고려 인종 원년(1123년) 6월, 宋의 국신사國信使 일행이 고려에 도착했다.
총 200명이 넘게 구성된 국신사일행은 바닷길을 건너와 고려에 한 달 남짓한 체류하였고, 이때에 보고 들은 고려의 역사 ․
정치 ․ 경제 ․ 문화 ․ 종교 등 거의 모든 부분을 글과 그림으로 빠짐없이 기록한 것이『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
(이하 『고려도경』)이다.
『고려도경』의 작성은 사절단의 인원 ․ 선박 ․ 예물 등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던 서긍徐兢(1091~1153)이었다.
서긍의 학문은 고금을 섭렵하여 佛家, 老子, 孫武, 吳起, 盧扁의 책들과 山徑, 地誌, 方言, 小說에 이르기 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해서楷書, 행서行書 및 전서篆書에 능하였으며, 특히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서긍은 사신의 임무가 견문보고서 작성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그러한 내용을 그림과 글로 옮겨 선화6년(1124년) 송 휘종에
게『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40권을 바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고려도경高麗圖經』의 그림(圖)은 없어지고 글(經)만 전해지고 있다. |
다음의 글들은 당시의 풍습과 생활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고려도경』권20
부인(婦人)
신(臣)이 듣기에 옛 삼한(三韓)의 의복 제도에서 염색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꽃이나 무늬 장식(花文)만은 금지하므로 어사(御史)가 무늬나 꽃이 장식된 비단 옷(文羅花綾문라화능) 입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처벌하여 단죄한다. 백성들은 함부로 금령을 무시하지 못하고 준수한다.
옛 풍속에 의하면 여자 의복은 흰색 모시(저고리에) 노란 치마로서, 왕족이나 귀족(公族貴家)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 처첩(妻妾)에 이르기까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한결같다. 근년에(고려) 사신(貢使)이 예궐(詣闕)하여 송의 하사품인 10등 관복(冠服)을 얻은 것을 계기로 중국제도를 좇았다.
현재 왕족(王府)과 재상가(國相家)에서는 중국풍이 매우 유행인데 다시 시간이 흐르면 바람에 따라 풀잎이 눕는 것처럼 보편화될 것이다. 이제 중국과 다른 점을 우선 간추려 그린다.
『고려도경』권23 풍속(雜俗)
목욕과 세탁(澣濯)
옛 사서(史書)에 따르면 고려의 풍속은 사람들이 모두 깨끗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들은 항상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한 후 집을 나서며,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흐르는 시냇물에 많이 모여 남녀 구별 없이 모두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 따라 속옷을 드러내는 것을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의복을 빨고 명주나 삼(麻마)을 표백(湅涗련세)하는 것은 다 부녀자의 일인데, 밤낮으로 일해도 힘들다고 하지 않는다. 우물을 파고 물을 긷는 것은 대개 내(川) 가까운 데서 한다. 위에 도르래를 걸고 물통(槽조)으로 물을 옮기는데, 그 물통은 배(舟)모양과 비슷하다.

『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