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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 박소란
바닥에 놓인 가방을 보았다
어쩌다 가방을 보게 된 건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오 가방일 뿐이니, 말하는 가방을 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점차 무거워진 가방을
무엇이 든 건지 알 수 없었다
큰일을 앞두고 돌아누운 이의 뒷모습처럼
묵묵한, 자세히 보면 신음도 없이 들썩이는 어깨가 먹먹한
정말 필요한 건 가방 속에 없다오
아무것도 없다오
눈을 감는 가방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언젠가 가방을 끌어안고 달린 적이 있었다고
숨이, 아니 끈이 끊어질 듯 위태롭던 어느 밤의 가방을
가방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오
가방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 하나의 가방을
어디로 떠날 참인가요?
물어도 대답이 없는 가방을
어느 틈엔가 나타나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한 사람을 보았다
황급히 문을 여는 사람은
어떤 무게로 인해 잠시 휘청거리고, 나는 보았다
가서는 다시 오지 않을 가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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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또, 생각하고 궁리함이라는 뜻도 있다. 길에서 우연히 목도한 사고 현장을 보고 화자는 오래도록 가슴을 쓸어내리고, 뒤돌아보며, 생의 가벼움과 죽음의 무거움을 오랫동안 사고했을 것이다.
이 시는 사람 (또는 그 사람의 삶, 경험, 업 등)을 가방에 비유하고 있다. 우연히, 바닥에서 발견하게 된 죽음의 순간 하나, 그 순간 나는 어떤 표정으로 가방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가방은 어떤 눈을 보게 된 것일까? 동정, 연민, 놀람. 가방은 태연히 그런 눈으로 보지말라고 말한다.
화자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점차 무거워졌을 가방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큰 일을 앞두고 돌아누운 이의 뒷모습처럼. (수능 하루를 남기고 끊어져 버렸던 나의 가방처럼. 사춘기 딸의 가장 혼란스러운 순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던 나의 엄마처럼. 사고는 그렇게 갑자기 일상을 파고드는 것. 사고뿐만이 아니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죽음도 언제가 마지막 날일지 가늠할 수 없다. 나는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이 시처럼 바라보니 엄마도 사고처럼 떠난 것 같았다. 말기암으로 1년간 투병하다 떠난 엄마였지만, 엄마의 죽음은 내게 사고 같았다. 갑자기 찾아온 바이러스 같은. 모든 죽음은 갑자기 일어난다. 아무리 준비해도 소용없게 한다. 갑자기 소중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게 된다. 엄마의 마지막 눈빛을 잊지 못한다. 간암으로 누렇게 황달이 올라온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고 오래도록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나와 엄마의 마지막 인사였다. ) 이 시의 화자는 그런 순간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와 상관없는 관계였더라도 화자는 그 순간 나와 상관있는 죽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점차 무거워진 가방에는 필요한 것이 담겨있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을 담고 다니느라 그렇게 무거워지기만 했던 걸까? 명예, 권력, 부, 걱정, 욕심, 불안, 허영, 이기심, 질투, 부러움, 열등감, 수치심 등. 가방 속에 수없이 담았던 것이 정작 죽음의 순간에서는 꺼내 쓸 것이 없다.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했던 것들은 한순간 잡동사니가 되어 버렸다.
화자는 가방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담담하게.
누구나 도달하게 되는 마지막 문 앞에서. 가방의 끈(숨)이 북 끊어지듯 가방은 쓸모를 다하고 떠나 버린다. 가방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담는 부분이겠지만 정작 끈이 떨어지면 멀쩡해도 들고 다닐 수 없다. 어딘가 부러지고 고장 나서 더 이상 가방으로 살 수 없는 순간이. 신도 막을 수 없는 순간이, 갑자기, 온다.
이것저것 담느라 무거워진 가방을 바라본다. 가방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다 보면 온전한 무게를 감각하게 된다. 그것이 나의 무게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 피곤한 날은 손에 든 모든 것을 어딘가 훌훌 버려 버리고 싶다. 떠나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 손에 들린 무게 하나를 덜어내면 발걸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사람은 참 단순해서, 아주 살짝 줄어든 무게로 또 걸음을 옮긴다.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싶은 극단적인 순간에, 단순한 나를 떠올린다.
고작, 작은 무게 하나를 버리면, 숨이 쉬어지고 걸음이 걸어지는, 그 단순한 나를, 어떻게 연민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나는 그렇게 아주 작은 것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오늘, 가방의 무게를 달아보며. 나를 위해, 아주 작은 무게 하나를 덜어 본다.
사고 / 박소란
(뜻밖의 불행한 일 &그 일을 생각하고 궁리함)
바닥에 놓인 가방을 보았다
어쩌다 가방을 보게 된 건지
(우연히, 바닥에서 발견하게 된 죽음의 순간 하나, 그 순간 나는 어떤 표정으로 가방(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오 가방일 뿐이니, 말하는 가방을 보았다
(가방은 어떤 눈을 보게 된 것일까? 동정, 연민, 놀람. 가방은 태연히 그런 눈으로 보지말라고 말한다. )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점차 무거워진 가방을
(화자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점차 무거워졌을 가방(사람)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무엇이 든 건지 알 수 없었다
큰일을 앞두고 돌아누운 이의 뒷모습처럼
묵묵한, 자세히 보면 신음도 없이 들썩이는 어깨가 먹먹한
(그 사람 생애를 알 수 없었다.
큰 일을 앞두고 돌아누운 이의 뒷모습처럼 회한? 불안? 의 감정으로 먹먹한)
정말 필요한 건 가방 속에 없다오
아무것도 없다오
눈을 감는 가방을 보았다
(점차 무거워진 가방에는 필요한 것이 담겨있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을 담고 다니느라 그렇게 무거워지기만 했던 걸까? 명예, 권력, 부, 걱정, 욕심, 불안, 허영, 이기심, 질투, 부러움, 열등감, 수치심 등. 가방 속에 수없이 담았던 것이 정작 죽음의 순간에서는 꺼내 쓸 것이 없다.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했던 것들은 한순간 잡동사니가 되어 버렸다. )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언젠가 가방을 끌어안고 달린 적이 있었다고
숨이, 아니 끈이 끊어질 듯 위태롭던 어느 밤의 가방을
(나도 그 가방에 동감한다.
언젠가 많은 생각으로 끓던 그런 가방, 머리, 가슴을 끌어안고 달린 적이 있었다고
숨이 끓어질듯한 위태로운 어느 밤이 있었다고, 그런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방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오
(사람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오)
(정작 필요할 땐 가방(삶, 경험)에서 꺼낼 게 없다.후회하지 않는 삶, 본래적 삶, 종교적 삶을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정작 생의 마지막까지 축적한 것은 세속적 욕망만 가득하다)
가방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 하나의 가방을
(삶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그 하나의 본래적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인생을)
어디로 떠날 참인가요?
물어도 대답이 없는 가방을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건가요? 천국인가요? 지옥인가요? 아니면 그냥 사라지는 것인가요? 혹은 웃으면서 떠날 것인가요? 울면서 떠날 것인가요?
가방(사고를 당한 사람)은 물어도 대답이.없다)
어느 틈엔가 나타나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한 사람을 보았다
(여기부터는 유체이탈한 영혼이라고 상상해본다.사고를 당한 사람은 자신의 업(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황급히 문을 여는 사람은
어떤 무게로 인해 잠시 휘청거리고, 나는 보았다
가서는 다시 오지 않을 가방을
(저승의 문을 여는 가방(사람)은 이 생의 무게로 인해 잠시 휘청이더니,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