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와의 협상은 감정 소모가 크고 결과는 삶의 질을 좌우한다. 제사나 명절 차례에 대한 아내의 생각에는 "김씨 집안에 시집와서 할 만큼 했다. 이제 인정 받으며 편하게 살고 싶다."라는 기본 인식이 깔려있다. 맞는 말이기에 협상을 할 때 마다 힘이 들고 감정의 기복이 크다.
아들이 결혼한 해부터 추석 차례는 지내지 않고 부모님 산소에 성묘 후 맛집이나 고향집에서 동생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 지난 추석은 고향집 마당에서 밤늦게까지 고기를 구워 먹으며 재미있게 보냈다.
설 차례는 계속하기로 했으며 아들 내외의 경우, 추석 차례는 처가에서 설 차례는 친가에서 지내기로 했다. 설날에는 동생 가족과 세배를 하며 차례를 지내고 윷놀이를 한다. 윷놀이가 시작되면 팀의 유형과 내기의 종류에 상관없이 승부가 치열하다. 설날은 가족들간에 친목을 다지는 날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이 덤이고 어른에게는 준비 목록 일호다. 어릴 적 설날은 기다림이었는데 가장이 되고 나니 준비해야 할 일도 많고 돈도 꽤 든다.
올해도 아내와 설 차례상을 협상한다.
“설 차례상에 증조부모를 빼고 조부모까지만 떡국을 올리자”
“지난해에 약속해 놓고 무슨?”
지난해 협상에서는 설 차례상에 고조부모까지 올리던 떡국을 증조부모까지만 올리기로 했다.
“얼굴도 모르는 증조부모까지 차례상을 올려야 하나?”
“차례는 조상에게 감사하는 의식인데”
올해도 차례상에 증조부모까지 떡국을 올리기로 했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아내와 명절에 관련된 협상을 한다. 안살림을 살고 있는 아내의 기분에 따라 명절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에 가능하면 아내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올 설 연휴 기간에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의 수가 21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명절 협상에 응해 설 차례상을 준비하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설 차례도 추석처럼 할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설 차례는 꼭 지내고 싶다는 동생의 의견 역시 일리가 있어 설이 올 때마다 아내와 협상을 이어간다. 장남의 숙명이기도 하다.
아내와 함께 명절을 준비할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난다. 어릴 적 우리집은 아버지를 기준으로 증조부모 제사부터 명절 차례 두 번을 포함해 일 년에 여덟 번을 지냈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 공부시키고 밥 굶기지 않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그 세월을 감당하셨을까?
제사 준비는 이 주전부터 시작된다. 제사에 쓸 술을 담그는 일부터 시작해 고기와 과일을 준비한다. 증조부모 제사가 되면 세 분의 작은할아버지 가족들은 1박 2일간 머물며 제사에 참석한다. 어머니는 허리 펼 시간도 없이 대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셨다. 힘이 되어드리지 못하는 자식이 보기엔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물독을 이고 물을 길어 나르느라 벌겋게 언 손을 호호 불던 둘째 누나를 잊을 수 없다. 어른이 되면 어머니와 누나를 힘들게 하는 제사와 명절을 없애 버리고 싶었다.
결혼해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작은 체구에 한복을 입고 옛날식 부엌을 넘나들며 어머니와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던 아내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렇게 아내는 우리집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우리 집안을 대표하는 맏며느리가 되었다.
지금도 정지용 시인의「향수」에서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을 낭송하다 보면 촉촉하게 젖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고조와 증조부모 제사는 벌초 때의 성묘로 대신한다. 그리고 조부 제삿날에 조모를 합치고 어머니 제삿날에 아버지를 함께 모신다. 아들이 장가간 뒤에는 설 차례만 지내고 있으며 아내와 협상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설날은 한 해 최초의 명절이며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설빔을 입고 세배를 하며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은덕을 기린다. 그리고 인사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과세 평안하셨습니까” “그래 덕분에 평안히 잘 지냈다.”
2025.1.25.(42)
첫댓글 설은 항상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언제나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 입니다 회장님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절을 잘 조정하고 가족들의 화목을 생각하면 과감히 하면 좋습니다. 가가예문이라 지금은 특별한 규례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작가는 처가 집 장인 장모 본가 부모의 묘를 전부 없애고 제사를 전부 폐지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아주 획기적이지요. 아마 앞으로 거의 그렇게 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