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째 달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죽이라는 조서
(에스더 3장 12-15절)
12-14.첫째 달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령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지방의 관리와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첫째 달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은 정월 초하루에 제비를 뽑았을 것이며, 그 즉시 왕의 허락을 받아낸 후, 유대인 대학살을 집행키 위한 첫 단계의 일인 서기관 소집을 십삼일로 정했던 것이다. 하만의 명을 따라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모든 권한이 하만에게 이양되었고,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유대인 학살을 위한 준비작업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하만의 명령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지방의 관리와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왕의 대신은 페르시아 제국 전 영토를 스물로 나눈 행정구역을 다스렸던 총독들을 가리킨다.
각 지방 관리는 페르시아 제국 영토를 127로 나눈 행정 구역을 다스리던 방백을 뜻한다.
각 민족의 관원은 방백의 통제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대신과 방백은 페르시아 사람이나 메대 사람 중에서 선택되었겠지만, 관원은 해당 피정복민 중에서 선출된 것이다.
왕의 반지로 인치는 행위는 왕의 이름으로 된 조서가 실제로 왕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과 조서에 쓰여진 내용이 변개될 수 없다는 사실 등의 확증이었다.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역졸은 파발마와 같이 공문서를 전달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넓은 영토에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 처소에서마다 게획적이고 조직적인 살륙이 감행될 경우에 이 같은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사람의 경우에는 노소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불문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이는 것을 가리킨다. 씨를 말리는 것이다.
도륙하는 것은 쳐죽이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라그의 부정사로서, 많은 숫자를 집단적으로 살해한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죽이는 방식의 참혹성에 더 강조점이 있는 단어이다. 나중에 유대인들이 하만의 하수인들을 죽이는 행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라는 식의 삼중적 표현은 법률 문서상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조서의 초본은 하만의 사주를 받은 서기관들에 의해서 작성된 조서 원문을 그대로 베끼거나 혹은 다른 언어들로 번역한 사본들을 가리킨다.
왕의 명령을 담은 조서를 접수한 왕의 지방 관리들이 특별히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살륙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두고, 그것을 실행에 옳길 수 있는 요원들을 훈련시키는 정도의 준비가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만이 그 날, 즉 유대인을 살륙할 날을 무려 11개월 후로 잡은 까닭은 하만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자만심을 더욱 높이게 하며, 동시에 그동안 모르드개로 하여금 하만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관적 섭리의 결과라는 것이다. 대학살 시기가 11개월 후로 결정됨에 따라서 유대인들이 극심한 심적 고통에 빠졌을 것은 틀림없다.
15.역졸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
당시 아하수에로 왕은 수산에서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고, 왕의 조서를 휴대한 역졸의 출발지도 수산이었기 때문에, 수산은 왕의 조서가 반포된 최초의 곳이었다.
왕과 하만의 무자비성을 밝히 드러내려는 것으로, 수산성이 어지럽더라는 표현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만큼 염려하는 것을 가르킨다. 학살의 대상으로 결정된 유대인들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수산에 살고 있던 페르시아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애매하게 학살을 당하게 된 사실 자체를 민망히 여겼으며, 또한 그 같은 일이 제국의 한 관례가 되지나 않을지 심히 염려하였던 것이다. 물론 자신들이 학살 대상이 됐음을 조서를 통해 확인한 유대인들은 완전히 공포에 사로 잡히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반면 유일신 종교에 반감을 가졌던 이교도들은 뛸듯이 기뻐하였을 것이다.
(요약 정리)
에스더 3장 12-15절은 하만의 유대인 몰살 음모가 왕의 조서로 공식화되고 전국에 반포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하만이 유대인을 진멸하기 위해 날짜를 정하고 조서를 내린 것은 유일신 종교에 반감을 가졌던 이교도들의 짓이겠지만, 하나님의 주관적 섭리의 결과라는 것이다.
조서가 반포된 후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성은 어수선하여 혼란에 빠졌지만, 정작 권력자인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은 평안히 앉아 술을 마셨다. 고통받는 자와 고통을 주는 자가 대비된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항상 고통받는 자의 위치에 있게 된다. 왜냐하면, 복음을 모르는 자들은 신도들을 원수대하듯 하기 때문이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성도가 세상 속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는 신앙적 암흑기를 묘사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인간의 절망적인 한계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