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노랑제비꽃
윤소희 / 존 케이지와 무외음
부산대 국악학과 강사
얼마 전 ‘강마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모 드라마에서 관료에게 항거하는 음악으로 4분 33초를 연주한 장면이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지난해 모 불교사전을 집필하면서 필자가 불교음악의 갈래를 무외음.자연음.인위적인 음으로 분류했던 일이 생각났다. 믿음을 전제로 하는 타종교와 달리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는 음악의 세계 또한 광대하여 무외음이라는 세계가 있다. 일상에서 생각과 감각으로 듣는 음이 자연음과 인위적인 음이라면 무외음은 우리 존재가 담겨있는 음이다.
무외음이란 소리와 소리 이전의 음의 세계이다. 800㎞로 달리는 비행기와 414㎞로 달리는 KTX옆에 가까이 가면 귀청이 찢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몸을 붙이고 사는 지구는 시간당 1660㎞를 돌면서 태양을 돌고 있는데도 ‘고요한’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독일에서 한 전자음악가가 스튜디오에서 밤새도록 작업을 하며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최저 이하의 낮은 음을 사용했는데, 아침에 스튜디오를 나서니 거기에 여러 마리의 개들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주 한정된 범위에 불과하다. 어떤 소리가 분명 있어도 듣지 못하므로 없다고 여기지만 부처님의 말씀과 옛 조사들의 게송 가운데는 이런 세계가 종종 표현되고 있다. 우주의 모습을 일러주는 <화엄경>을 통해서, 색도 공도 아니라는 그것도 아닌 세계를 말씀하시는 <반야심경>에서도 무외음의 세계를 일러주고 있다.
4분 33초는 미국의 유명한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대표작이다. 1952년 8월29일 뉴욕주 우드스탁에서 데이비드 튜더라는 피아니스트가 4분33초동안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고 사라진 그 작품은 불교의 무외음의 세계와 닮아있다. 존케이지는 우연성음악. 확률음악 등 여러 가지 전위적인 시도를 많이 하였는데, 만약 그가 불교의 무외음의 세계를 알았더라면 작품 제목을 무외음악이라고 붙이지 않았을까 싶을 만치, 그의 작품들에서는 불교적인 세계를 많이 느끼게 된다. 이제 한국의 불교음악계에도 존 케이지 같은 작곡가가 탄생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