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니스프리 섬’의 봄날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가 그 변화를 확인하는 곳이 있다. 가까이는 과천의 현대미술관, 다소 시간이 걸리는 팔당의 강변, 하룻밤이 소요되어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인제 내린천, 방태천과 그 부근의 아침가리계곡과 휴양림이 그러하다.
과천 미술관으로 가는 숲길은 완만하게 구부러져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은데, 비가 오면 더욱 어울린다. 더욱이 그곳에서는 ‘노래하는 거인’을 만나 그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어느 날 무슨 연유인지 모르게 ‘어린 왕자’처럼 이곳에 불시착한 그가, 낮은 음조로 먼 우주를 향해 구출 신호를 보내는 듯, 부르는 뜻 모를 노래는, 역설적이지만, 흡사 고향으로 돌아온 도연명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는 듯하다.
젊은 한때는, 살기 위해 벼슬길에 나아가, 험한 세월과 어울리지 못하는 신세였으나, 다행히 돌아갈 곳이 있는 그 시인은 속세의 풍조로부터 호기 있게 독립선언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지금껏 내 마음을 스스로 육체의 종노릇 하게 하였으니, 어찌 슬픔에 젖어 홀로 서러워만 할 수 있겠는가?’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그런데 그 거인은 언제쯤 자기가 떠난 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편 팔당 강변은 배산임수(背山臨水)란 말이 제대로 어울리는 곳이다. 선로만 남아 있는 철길은 자전거 달리기에 좋기도 하지만 강변을 따라 걷는 산책길로서도 그만이다. 그곳 얕은 산언덕 전망 좋은 양지바른 땅에 카페가 있었다. 한때는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북적이던 유명한 곳이었다. 수원지가 가까운 그 카페는, 어느 날 불법 건물로, 영업정지를 당하였다. 그곳 야외의자에 앉아 강과 산을 그냥 무심코 바라보아도 좋았다. 그곳에 갈 때마다 목조로 된 가족 조각상에 다가가 안부를 묻곤 했다.
그 목조 조각상은 강변 철길에서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 중년 부부와 여자아이가 약간 떨어져 서 있는 1960-70연대 풍의 가족 풍경이다. 남자는 방금 중동 건설 현장에서 돌아온 듯 건장하게 뚱뚱한 몸에 헐렁한 양복을 입고 있으나, 와이셔츠 맨 위의 단추는 풀어 놓은 채, 오른손에는 007가방을 들고, 왼쪽에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있는데, 뭔가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지우며, 옆눈으로 부인을 보는 듯하다. 역시 후덕하게 풍성한 부인은, 건실한 여자아이를 안고, 마치 남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두 눈은 앞쪽으로 아무런 감정 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에게 안겨 있는 아이도 똑같은 표정으로 엄마의 시선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남자와의 거리가 사뭇 떨어져 있어, 매우 어색한 가족관계처럼 보인다.
어느 예술작품이든 창작자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다. 과천 미술관의 ‘노래하는 자’(Singing Man)는 미국의 설치미술가인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작품이다.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기계문명 시대에서 사라지는 현대인들의 인간성 회복의 문제 제기이다. 이는 무의미한 행위가 반복되는 일상과 권태의 덫에 갇힌 현대인에게 존엄한 개인으로서 자유인이 되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도연명이, 다시는 자신의 마음을 육체의 노예로 전락시킬 수 없다는 선언과 같이, 인간 정신에 관해 근본적임 물음을 던지는 예술품이다.
이에 비해 팔당 강변 카페 입구의 목조 조각상은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우리의 고도 경제 성장기인 1960-70연대에 고향을 떠난, 근로자들의 애환을 보여주는 듯하다. 즉, 너무 오래 떨어져 있던 가족의 만남에서, 기쁘고 반가운 마음을 자연스레 표출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옛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각가는 거대한 담론을 제시하기보다 이 땅의 민초(民草)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조금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사이 몇 해 전 여름, 강릉 아래쪽 해변에 있는 조각공원을 갔을 때, 낯익은 나무 조각상을 보았다. 그때, 마치 전류에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팔당 부근의 ‘가족상 버전 2’로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자는 체중이 상당히 균형 잡힌 건장한 모습이다. 콧수염도 기른 그의 표정은 화사한 옷차림과 어울리게 밝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손을 잡은 여자는 약간 가냘픈 몸매여서 젊은 부인이나 딸처럼 보였다. 그녀가 딸이라면 엄마에게 안긴 그때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을 것이고, 그들의 생활도 이제 안정된 중산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초여름, 부녀간에 나들이를 나왔을 법하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살만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는 조각가의 의도를 엿보는듯하여,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반면에 내린천과 방태천, 휴양림, 아침가리 여름 추억의 절정은 낚시였다. 계곡의 하루는 시간마다, 분마다 봄· 여름· 가을이 겹치어 반복한다. 검은 구름이 어느새 몰려와 비를 두드리게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그 머리를 내밀면, 봄날의 따스함이 찾아오며, 조금 있으면 따가운 여름의 햇살로 바뀌어 눈부시게 다가오다가, 곧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그러다 산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면, 노을에 비친 숲은 붉게, 누렇게 단풍 모습으로 잠시 보여, 아, 가을이 벌써 깊었나! 라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잠시 그러한지를 물어볼 풍경이 된다. 이제 그곳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연수와 세월이 되어서 아쉽다.
얼마 전, 어느새 봄이 온 듯하여, 팔당 강변엘 다시 가보았다. 강물과 소나무와 대나뭇잎만 푸르렀다. 아직 풀과 나무의 색깔은 제철이 아닌 듯 겨울옷을 입고 있다. 그 카페 입구의 가족 조각상은 그대로 여전히 서 있었다. 카페 야외의자에 홀로 앉아 멀리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개 두 마리가 가끔 그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한가로운 봄 낮이다. 그가 너무 봄을 기다리는 것 같아 그에게 문득 두보의 봄소식인 ‘절구(絶句) 2수’를 들려주고 싶었다.
다행한 일인지는 몰라도, 이제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그곳 풍경들을 찾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랫동안 거처했던 복잡한 소음과 욕망의 도심에서 한적한 산동네, 우거진 숲으로 장막을 옮겼기 때문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낮은 인능산 부근 언덕이 새로운 주소가 되었다. 앞산에서 이른 아침부터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동네 앞 여의천 개울에는 봄을 알리는 듯 청둥오리들이 짝으로 노니며, 가끔 왜가리와 백로가 찾아 먹이를 구하기도 한다. 동구 밖 텃밭에는 농부들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봄 농사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처럼 봄이면, 여의천 변에 아름답게 피는 야생화 향기에 취하기도 하고, 해 질 무렵 서편 산등성이에 물드는 장엄한 노을을 바라보며 숙연해지기도 한다. 어찌하든 이곳 산동네에, 나의 ‘이니스프리 섬’에, 칩거하게 된 것에 감사를 드린다. 산과 들, 개천과 청계산 수변공원으로 산책을 나서며 자유인임을 만끽하기도 하며, ‘자연의 권리’를 가진 풀과 꽃과 나무 모두 공존할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예이츠가 황혼에 떠나기로 소망했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는 시도하지 못했을지라도, 여유롭게 풀과 꽃. 나무와 숲을 가까이 사귀게 되어 무척 기쁘다. ‘무슨 일로 푸른 산속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고 대답하지 않았으나, 마음은 절로 한가롭다. 복숭아 꽃잎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내려가니, 인간 세상이 아닌 별다른 세상이로다’라는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처럼 그렇게, 남은 날들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