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이 행복하지만 죽는게 꼭 불행한 것은 아닐터. 세월의 흐름속에 생명의 순리에 누구도 거역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여정은 비우는 과정을 체험하기 위해 준비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알던 망우리 공동묘지가 역사와 문화와 사색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그 출발점에 산을 좋아하는 여덟 분의 별들이 나란히 섰다.
죽음의 공간에서 마주했지만 엄숙보다는 즐거움이 얼굴에 피어들 있었다. 그만큼 묘지도 이제 우리곁에 한층 친숙하게 다가왔음일까. 가꾸고 다듬어 일상속으로 던져 놓은 탓일까. 해외 어디를 가더라도 도심 한 가운데 묘지가 즐비하였는데 우리도 그와 같은 반열에 올라서기라도 한 것일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들이 잠들어 있는 곳.
유관순 방정환 박인환 김말봉 조봉암 한용운 차중락 지석영 안창호(이장) 그리고 일본인으로 한국의 산림조성에 공을 세웠다는 아사카와 다쿠미. 일컫길 망우리 스타들의 사진과 약력이 석벽으로 전시되어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문화 해설가는 우리나라 산림조성에 일본인의 공로가 컸다고 거듭 이야기한다. 산림족보를 만들고 잣나무의 배양을 일년 앞당기는 등 공적은 충분해 보였다.
망우리(망우산)는 1933년부터 묘지로 조성되어 1970년대에 2만8천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길을 걷는 나그네의 눈에는 유명인보다는 여기저기 무명씨 무덤 여럿이 마음에 밟혀 온다.
망우리를 벗어나기 전에 박인환은 기억하고 가자. 서른 살에 요절하였지만 주옥같은 시를 우리에게 남기고 간 사람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세월이 가면,박인환)
1952년 전쟁통 어느 술집에서 인환과 극작가 이진섭, 가수 나애심이 한 잔하던 중 즉석에서 글을 쓰고 곡을 붙여 노래까지 했다는 그 유명한 노래!
또 있다
"인간은 소모품 그러나 끝까지 정신의 섭렵을 해야지"(박인환)
술을 너무도 좋아했던 인환은 사흘동안 술을 마시다 그만 죽음에 이른다.그리고 망우리에 묻힌다.
망우리에 외로이 누워있는 이름없는 주인을 위해서 한 소절 읊조리며 발길을 옮긴다
[그곳 지금 어떻소]
누구이신지 모르지만
소주 한잔 여미는 마음으로 그대 앞 마주 합니다
외로울까 적적할까 걱정인데
겹벚꽃잎 떨어져 그대 옷되니 한결 무게 놓입니다
여기가 세상 가장 편한 곳 아니던가요
그대 걸었던 그 길로 나 지금 가고 있소
나 떠나도 그댈 챙기러 신록 여럿 몰려 올 것이오
한 마디만 남겨주오 그 곳 지금 어떻소 (호랭이)
망우산(보루) 꼭대기에 올라서니 한강이 힘차게 흐르고 있다. 그 옛날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한 치의 땅을 두고 겨루었던 전장의 현장을 저 강물은 알고 있을 터. 회장님의 달고나 토마토를 먹으면서 그 날을 반추하고 또 반추해 본다.
지금은 망우, 용마, 아차산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예전만해도 아차산(아단산) 으로 불리웠던 곳. 온달장군이 이곳에서 근무했으며, 바보 온달은 서역에서 온 기골이 장대한 남자지만 고구려 말을 제대로 몰라 바보로 불렸다는게 우리의 찬란한 해설가의 언설입니다.
망우보루에 올라 서울 하늘을 보니 먼지 하나없이 깨끗한 하늘이 남쪽으로 북쪽으로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세상에나, 우리가 이런 하늘을 지고 있었던가, 엎고 있었나. 감탄이 절로 나올 뿐이다.
회장님이 신록예찬은 누가 썼지? 물으시니 다들 김양하 이양하 답을 한다. 예찬을 한번 보고 가자.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이양하 신록예찬에서)
걸음을 제촉한다. 홍주형과 통화를 한다. 어디서 보자고 약속을 한다. 우리보다 앞서 달리고 있음에. 죽음의 공간에서 삶의 공간으로 넘어간다. 용마산 영역이다. 해설가님이 게임을 주문한다.잎뒤가 똑같은 세음절을 얘기하란다. 기레기 요기요 몇번 하다 시들해진다.
양원역에서 최대의 위험코스 용마산 깔딱고개까지 5키로 남짓. 쉬엄쉬엄 걷자면 2시간 넘어 걸린다. 드디어 570계단에 접어든다. 이 고지를 넘어야 한다. 어찌 갈꺼나. 무릎이 말썽을 부린다. 종원형의 스쿼트100일 밴드 강의가 도움을 준다. 하루에 100개씩, 허 대단해요.
아무튼 우리는 부단히 걷고 있다. 낙오없이 싱싱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은 신록 덕분일게다.아니면 죽음의 공간에서 빌려 온 음덕일지도 모르겠다.
깔딱고개가 이번 여정의 고비이면서 하이라이트인 것은 분명하다. 온갖풍파를 헤치고 너른 들판에 안착한다. 웬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가.
다시 아차산 긴고랑길(1.4키로)로 접어든다. 좋은 날씨에 집안에 있을 순 없지 않겠는가. 여기저기 막걸리 가게 곳곳서 영업하고 금지구역에도 떼지어 앉아 노닐고 있다. 답답했음을 어찌 모르랴 마는 지금이 엄중한 시기임을 의식했으면 싶다. 총무님이 막걸리 한잔 하심도 뿌리치고 다들 홍주형 만나러 쌩하니 내뺀다!
망우에서 용마산 아차산을 걷자면 한강의 비경에 정신을 종종 내려 놓는다. 신록과 합쳐진 구비구비 아리수는 예술의 영역으로 이미 접어 들었다. 강동구 암사동, 암사대교 아닌 구리암사대교로 불린다는 귀하신 몸이 저멀리서 고개를 내민다. 카메라에 담아도 또 담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자꾸 뒤쳐진다. 강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저 푸르른 강에 내 영혼 담아 천년 만년 흐르게 하고 싶다.
망우 용마 아차엔 보루가 많다. 고구려 남진정책의 흔적이다. 망우는 1-3보루, 용마는 1-7보루, 아차는1-6보루가 남아 있다. 총무님께서 담배 한 보루, 두 보루가 그 보루 아니냐고 농을 주신다.
산행 새참이 기다려진다. 시간은 벌써 1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본대보다 40분을 잎서간 홍주형을 아차산 4보루에서 감격의 만남을 나눈다. 이곳서 새참판이 벌어졌다. 종원형 희망과 용기형 회장님 은경님 등이 떡이며 과자며 맥주며 캔훈제굴 등 한 가득 가져 오셨다.물론 빈손도 몇 있었지만 시원한 그늘 아래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처녀장사가 관군에 쫓기면서 소를 데려가고 있었다.급해지자 소를 머리에 이고 달리니 소가 죽을맛이지. 뉘읏뉘읏 걷던 소가 이랴(이고 가랴!) 하면 기급을 했다는, 소를 몰때 지금도 이랴한다는! 해설가님의 이랴전설에 모두들 혼줄을 놓았다.
아차의 영역엔 사람들이 더 많다. 광진에서 오후를 즐기는 산행객들이 끊임없이 오르고 오르고 있었다. 부딪히고 부딪히면서 하산의 여정에 접어 든다. 고구려정길(0.7키로)로 방향을 잡는다. 너럭바위가 만주벌판을 닮았다. 시간만 있다면 한숨 때린 후 가고 싶다.
드뎌 시간은 오후 두 시를 달리고 있다. 10시에 출발했으니 많이도 걸었다. 늘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 있어, 신록의 가슴 벅참이 있어 오늘의 발걸음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금새 시간이 가버렸다.
어디서 뒷풀이를 하지. 원래 예정된 아차산역 사거리 횟집이 짬뽕집으로 바뀌어 버렸고 면옥을 기웃대다 결국 그곳에 눌러 앉았다. 만두가 나오고 찹살탕슉에 이어 짬뽕과 볶음밥을 시켜 먹으면서 화창한 봄날의 거찬을 만끽했다. 다들 피곤했는지 이차가 없었고 노래도 없었다. 만석이 형이 빠진게 큰 원인이리라.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임을 스스로 느끼는 하루였다.
4월 출연진
회장님 알대장님 총무님 용기형 종원형 홍주형 은경, 그리고,
오월의 산행은 제주도입니다
벌써
기다려집니다!
사월 산행을 기획하고 추진하신 회장님 희용형이하 많은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글재주가 갈수록 늘고 있는 건가? 아니면 감춰둔 재주를 차례차례 풀어내고 있는 건가? 탄복했네.
(사족) 캔참치가 아니라 캔훈제굴
감사해요 좋은 글 쓰고 싶은데 아직 갈길이 머네요 채찍질 부탁드립니다
호랭이 만세! 말빨은 희용, 글빨은 호랭이
창원의 은둔 호랭이 거사님! 5월 제주. 한라산 산행기도 당연 기대하겠습니다.
하하~~허, 재밌는 산행기 잘 읽었네.
삶과 죽음에 대한 표현 좋~네.^^
페북에도 썼지만 명문장이다. 앞으론 호랭이가 산행기 고정해도 되겠네. 굿잡입니다쇼,&^
이 코스, 꼭 한 번 걷고 싶게 하는 후기네. 잘 읽었어요. ^^
탕슉에서 빵 터짐. 이번 산행을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온 것이라고 쓴 것에 탄복! 잘 봤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호랭이가 용감할 뿐 아니라 생각이 깊고 따뜻한 동물이었군요
너무너무 재밌고 또 감동있는 산행기...
엄지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