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여, 사랑한다!

[탄천/이종학]

                                                              김치여, 사랑한다!

                                                                                                                      탄천 이종학

  김치 냉장고 ‘딤채’가 문제였다.

  늙으면서 집을 건사하기가 어려워 아파트 생활을 하기로 했을 때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것은 살림을 줄이는 일이었다. 꼭 필요한 세간만 가려 옮기고 장소에 맞게 가재도구의 덩치도 조절해야 한다. 쉽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아끼던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포기하는 데 그런대로 의견 조절을 잘해나갔다. 그러다가 끝판에 김치 냉장고에서 걸리고 말았다.

  냉장고 두 개에다 냉동고와 김치 냉장고(180L)가 있었는데 이 중에서 두 개는 버려야 했다. 자연히 냉장고 하나와 김치 냉장고가 포기 대상 1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다른 건 다 버려도 김치 냉장고만은 절대 안 된다고 선언했다. 하긴 김치의 소중함을 감히 누가 부인하겠는가.

  캐나다에 이민 오기 전에는 김칫독을 땅에다 묻고 천하의 특유한 김치 맛을 만끽하며 살았다. 겨울 동안 땅속에서 발효되는 김치의 특별함은 필설(筆舌)이 필요 없다. 이런 입맛이 캐나다에 와서 한동안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비록 이국땅이긴 해도  김장을 꼬박꼬박 챙기는 행운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무와 배추, 소금 등이 신토불이를 외면한 물건들인지라 김장 맛이 시원치 않은데다가 그나마 보관이 문제였다. 섭씨 영하 20도 안팎의 혹한과 폭설이 서너 달 가까이 계속되는 곳인지라 땅에 묻어 놓고 먹기가 어렵다. 상온 23도의 집안과 영하 20도인 문밖으로 김치통을 수없이 내놨다 들여놨다 법석을 떨어야 하니 신역은 고되고 김치 맛은 엉망일 수밖에. 더구나 푹 익어서 신맛 나는 김치를 싫어하는 나에게 있어서 캐나다산 김장김치의 수명은 한 달이 고작이었다. 김치찌개 감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절박한 처지에서 한국에서 날아온 김치냉장고는 가히 구원의 여신이었다. 한겨울 김칫독을 땅 속에 묻었을 때와 같은 상태인 0도 수준으로 내부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서 아삭아삭하고 싱싱한 탄산미가 살아 있는 김치 특유의 맛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더구나 이런 김치를 사시사철 먹게 되었으니 살맛나는 세상이다. 이 같은 행복 제조기를 아내가 포기할 리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서 등장한 작자가 바로 새롭게 개발된 딤채이다. 딤채는 일반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공존할 뿐만 아니라 입체식이어서 공간의 여유가 부족한 아파트생활에는 최적인 이점을 갖고 있다. 3천 불이라 경제적 부담을 있지만, 여전히 김장김치를 살림밑천으로 꼽는 우리는 결국 딤채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

  ‘딤채’는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다는 의미의 ‘침채(沈菜)’ 혹은 ‘팀채’에서 발음되어 온 말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말이 구개음화로 인해 ‘짐치’로 불렸다가 오는 날의 우리나라 특유의 발효식품인 ‘김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가 되고 있는 김치는 이제 세계적인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김치는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큰 마트의 진열대에서 김치 상품을 흔히 볼 수 있고 큰 호텔 뷔페에도 김치는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농산가공품 직매장인 파마 마켓에서는 김치가 불티나듯 팔리고 다민족 문화행사나 음식 페스티벌에서도 김치와 불고기는 큰 인기를 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집에 설치한 TV안테나가 말썽 부려서 수리공을 불렀다. 젊은 백인이었는데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게 딱해서 콜라 한 병을 내놓았다. 그랬더니 이 젊은이가 미안해하면서 김치를 줄 수 없겠느냔다. 뜻밖이었다. 김치쯤이야, 하고 한 접시를 내주었더니 매워 호호거리면서 콜라 한 병과 함께 김치 한 접시를 거뜬히 해치우는 것이었다.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 속으로 저 뱃속이 온전할까? 슬며시 걱정되었다. 아니다 다를까, 오래지 않아 젊은이가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맵고 짠 김치와 냉콜라가 갑자기 뱃속으로 들어갔으니 편할 리가 없다. 결국 그 젊은이 쇠진해서 일을 중도이폐하고 말았지만, 더 기막힌 일은 배를 움켜쥐고 돌아가면서도 집에 가서 와이프하고 같이 먹고 싶은데 김치를 좀 줬으면 고맙겠단다. 김치에 인이 박인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닌 성싶다.

  갑자기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 때가 생각난다. 일본인 교사 앞에 가면 다꾸앙 냄새가 코를 도려낸다. 그런데도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더니 학생들이 김치를 먹고 학교에 가면 구린내 난다고 머리에 알밤을 주곤 했다. 그런 일인 교사들에게 어머니 심부름으로 자주 김치를 들고 다녔다면, 누가 믿겠는가. 지금도 가끔 실소할 때가 있다. 우리 음식문화까지도 말살하려 했던 일인들에게 김치는 침략자처럼 군림했던 것이다.

  하긴 김치 나라에서 열등의식에 빠져 김치에 발암물질이 있다고 걱정하는 분들, 내 자식은 김치보다 치즈를 더 좋아한다며 대견해하는 어머니들, 수입 김치만 먹는다고 자랑하는 주부들도 있다니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캐나다에서도 김치 냄새가 이제 치즈나 카레, 죽순 같은 냄새들과 대등하게 취급 받게 되었다. 차제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이국에 사는 동포들이 비한인들과 함께 김치 담그기 행사를 열었으면 어떨까. 이런 이벤트를 통해서 한국의 우수한 식문화를 소개하고 김치 보급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김치냉장고 제조회사들과 공동행사로 마련하면 김치냉장고 판촉 효과도 얻는 일거양득이 되지 않겠는가.

  값싸고 포기가 좋은 배추가 도매상에 입하되었다는 전갈을 받았다. 아내는 아침도 먹기 전에 외출할 준비를 한다. 포기김치 삼십여 포기가 들어가는 딤채를 언제나 가득 채워야 안심하는 그녀의 김치 욕심은 이민살이 23년이 되고 식구야 많든 적든 조금도 변함이 없다. 식욕이 계속되는 한 김치사랑 또한 계속되리라.  

[랑랑]

선생님 글 반갑습니다. 김치 담그기 행사 좋아 보입니다. 고국이 많이 그리우시죠. 대한민국의 7월의 들판이 얼마나 기름지고 아름다운지 보여드리고 싶은정도 입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좋은 글 많이 발표해 주세요. 일등독자가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덕유]

" 이국에 사는 동포들이 비한인들과 함께 김치 담그기 행사를 열었으면 어떨까. 이런 이벤트를 통해서 한국의 우수한 식문화를 소개하고 김치 보급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김치냉장고 제조회사들과 공동행사로 마련하면 김치냉장고 판촉 효과도 얻는 일거양득이 되지 않겠는가. "

[임미옥]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글은 언제나 제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것이 감사 하고 한국민의 자부심을 상기시켜주십니다. 조국을 그리워시며 향수에젖어서 쓰신 글들이라서 그러하리라 여겨집니다. 네, 선생님 아무리 강조해도 김치는 세계최고 우리의 자랑이지요. 여기 사는 저희들도 땅속에 묻었다가 한겨울에 꺼내먹던 김치맛은 캐나다에 사시는 선생님이나 똑같이 이젠 추억속의 김치랍니다. 제작년에 저도 청주보다 기온이 항상 3도 가까이 낮은 시골집에 단지 하나 묻었었는데요. 딤채처럼 맛을 못내었습니다. 이젠 여기도 딤채시대랍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셔서 좋은글 많이 올려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샬롬.

[탄천/이종학]

댓글 주신 분들 김치만큼 소중하게 마음에 담아 두겠습니다.

[청옥당]

좋은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열린연못]

저도 우리 나라 음식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장아찌류를 좋아해요. 깻잎장아찌, 마늘장아찌, 매실장아찌, 무장아찌 이런 거요. 식사를 할 때마다 우리 음식을 예찬하며 먹는 답니다. 제가 또 좋아하는 것은 찰밥, 고등어조림, 갈치구이, 미역국, 삼계탕, 육개장, 잔치국수, 만두, 비빔밥, 감자전, 염소전골...엄청 많아요. 꿀꺽!

[소나기]

선생님의 고국사랑의 소중한 마음 담아갑니다

[좋은집]

남의 것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겠지만 우리것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임을 일깨워주시는 선생님의 조국사랑을 가슴으로 느낌니다. 선생님의 글을 대할때 마다 감사가 넘쳐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