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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감기와 사투중이다. 이유는 뻔하다. 여행지와의 날씨 차이와 무리한 일정 덕분에.
잠깐, 며칠 전에 태백 여행을 다녀 온 것도 기억하지 못한, 더구나 배낭 여행하기엔 생각보다 쉬운 나이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또 얼마 전에 발가락을 겹질렀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그저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들떴었다.
그것도 한참만에 갖는 딸과의 자유 배낭여행이라니 얼씨구나, 그냥 아무 생각없이 "오케이, 떠나고 보는 거야. 가자고 가..." 였지만
결과는 체력의 한계만을 느끼고 돌아왔다는 사실과 나이 들어 배낭 여행은 무리요 괜한 욕심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서글픈 현실 뿐.
예전에 어른들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를 왜 그리도 외쳤는지를, "다리에 힘이 있을 때 다니라"는 말을 이번 여행을 통해 더욱 더 절실하게 알 수 있었다는.
또 "나이가 들면 하루 하루가 다르다"는 말도 피부로 와 닿았으니 이번 여행을 통해 앞으로는 패키치 여행을 즐기겠다는 것과
뭐 여행을 한다면서 굳이 전투적인 자세로 다닐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사실 여행의 원래 목적은 집을 떠나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며 여유롭게 자신을 돌아보고자 함이나 왜 현장에만 가면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해서 안달인지.
그 많은 것을 보는 것 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기어이 눈에 담고 카메라로 담겠다는 옥심만 느는지,
비우고 산다는 말은 여행길에서도 완전체로 드러나야 하는 법인데 어쩌자고 길만 떠나면 취재 기자 시절로 돌아가듯이
전투 자세가 되는지, 정말 직업은 못 속이겠다 싶게 자초한 대만 여행길은 피곤했다.
그러니까 늘 부르짖던 모험, 도전 , 호기심 천국 따위가 이번엔 걸림돌이 되었으며 나이 들어 분, 초를 다투는 배낭여행을 계획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번 대만 자유 여행이 성공하게 되면 스스로 자주 독립하여 배낭 여행을 즐기려던 것을 전면 백지화 하면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여행 코스를 밟는 것이 낫겠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여 느꼈다는 것인데 강철인 줄 알았지만
아, 별 볼일 없이 무력해진 체력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딸과의 자유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 이긴 하나 여행하던 시절이, 나이가 다르다 보니 그런대로 강인하다 싶을 정도로 패기 넘치고
체력이 남아돌던 시절과는 완연하게 다른 체력으로는 정말 무리였다는 것.
게다가 아나로그 세대로서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해결되는 여행길을 접하고 보니 언어는 물론이요
완벽한 스마트폰 점령기가 가능해야만 길을 찾아도 찾겠다는 것과
특히 구글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고 돌아오니 전 세계가 하나 권이라는 사실도 절감하겠다.
구글이 없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서 새삼스럽게 몇년 전에 직장 동료와 단둘이 대만 여행을 떠나 구석구석 발품을 팔아
대만을 완벽하게 점령하고 온 딸의 능력에 감탄을 하고 더불어 그 옛날 "김찬삼"씨는 어떤 마음으로 전 세계를 온 몸으로 찾아다녔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역시 시대를 앞서 간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새삼스럽게 여행하는 내내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했다.
딸이 십 여년 전에 남의 나라로 대학 생활을 하러 떠나고 나서 시작된 웬만하면 일년에 한 번은 나라 밖으로 나가보자를 실천하긴 했지만
이번 여행만큼 쥔장의 능력에 대해 많은 것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한 경우는 드물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쨋거나 이번 4박 5일 대만 자유여행은 빡빡한 일정으로 숨가쁘게 달리면서도 볼 것, 먹을 것, 누릴 것은 죄다 섭렵하며
그야말로 빡세게 마치 9박 10일을 다녀 온 듯 다녀 왔다.
와중에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하고 겹질렸던 발가락이 반란을 일으키고 마지막 날에 가서는 무릎 관절이 삐딱선을 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파스를 붙이고 다니기는 했어도 나름 즐겁고 재미난 그러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배낭 여행을 해보겠나 싶은 흡족함으로 기꺼이 다니긴 했지만
나이 든 엄마를 보살피며 일일이 건사해야 했던 딸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몇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딸이 다시 해외로 나가게 되거나 국내에서 취직을 하게 되면 함께 여행 떠날 일이 요원할 것 같아
무작정 딸이 저질러 이뤄진 급조된 여행이었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완벽하게 준비한 딸 덕분에 행복했다 뭐 그런 말이기도 하다.
자, 이제 슬슬 인천공항으로 고고고.
타이중 공항에서 쥔장은 짐을 찾아 나오고 딸은 그동안에 4박 5일 대만 일정에 길잡이가 되어 줄 스마트폰의 유심을 대만 것으로 갈아 끼우고
프리 가이드북을 입수한 뒤 일단 대만에 발을 디딘 기념 삼아 한 컷...초겨울 복장을 그곳 우기 날씨에 맞춰 갈아입었다.
이즈음 대만은 우기이므로 우비와 우산은 필수, 언제 어디서 비가 올지 모른다는 정보에.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첫날 숙박지 호텔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6,70년대 서울 하고도 양남동, 양평동 같은 우중충한 무채색의 도시를 지나야 했으며
외제차로 도배된 대만의 도로, 그중에서도 거리에 보이는 차마다 죄다 일본차 일 정도로 거리를 누비는 차량들 틈새로
눈 씻고 보아도 보기 힘든 대한민국 차량이 눈에 뜨여 반가운 마음으로 한 컷 날리면서 전 세계에 몇 안되는 차량 생산국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다시 한번 현대 그룹 정주영 회장의 미래를 보는 눈에 대해 찬탄을 하였다.
타이중의 첫인상은 매력적인 도시라는 별명과 어울리지 않아 보여 " 아, 타이완의 3대 도시가 맞아?" 였다.
어둡고 한가한 도시, 질주하는 운전 기사들과 목숨 내놓고 달리는 오토바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며 곡예 운전하는 운전 기사들의 능력이 놀라워
감탄을 하면서도 사고라도 날까 겁에 질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는 첫날의 위협은 별 것이 아니라는 듯 여행하는 내내 감당하게 되는 광경이었다.
아, 팁 하나 알려드린다면 타이중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무조건 미터기 꺾고 500원이면 충분하다는 것-한국돈 2만원 가량-.
역시 우리도 500원으로 흥정하려 했지만 강력하게 "노우" 하는 바람에 600원에 호텔로 이동을 하였다.
굳이 더 이상 실랑이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오만 불손한 횡포 때문이기도 하고 함께 택시를 같이 타자고
미리 전언을 해온 일행이 있어 그래 두팀이 아닌 한팀으로 계산하면 그래도 300원씩이니 남는 장사지 싶어서였다.
허나 공항에서 시내, 시내에서 공항은 500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바가지 썼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하며
어느 나라나 여행객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상습범들은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에 웃고 말았지만 그 대상이 우리였다는 사실에 씁쓸.
어쨋거나 숙소에 짐을 풀고 일 분 일초를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야 했지만 시간이 늦기도 하고 아직은 버스권을 구입하지 않은 상태라
바로 택시-두 집이 나눠 내니 시간 절약도 되고 버스비와 계산해도 거기서 거기-를 타고 그 유명한 타이중의 명물 무지개 마을로 휘리릭.
그 버스권- EASY CARD-은 버스는 물론 지하철이나 고속철도, 일반 철도와 물건 구입에도 사용가능하며 언제든지 충천을 하여 재 사용이 가능하다.
100원 미만으로 남겨진 카드는 환불되지 않으며 계산을 잘하여 마지막에는 20원이 남은 고로 다음에 대만 여행할 사람에게 건네주기 위해 들고 들어왔다.
우연히 공항에서 만나 한 팀 인양 택시 동승을 하고 한 호텔에 머물게 된 자매간의 여행을 즐긴다는 송자매.
그중에서도 왼쪽의 동생은 어찌어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중에 살고 있는 쥔장의 친구와 같은 모임 회원이라네.
아,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사실.
사람들이 떠나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 쥐안촌은 지금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무지개 마을로 거듭 태어나 날이면 날마다 북적이는 발길로 인산인해.
한 사람의 작은 힘이 관광지로 변모되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 우리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쓸데 없는 것으로 온갖 축제라 이름 붙여 허울 좋은 일만 벌이는 지자체들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할아버지가 날이면 날마다 변모하는 세상이 두려워 근심 걱정을 덜기 위해
눈 만 뜨면 자신의 집에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 날 인가 부터는 온 동네를 도배하듯 그림을 그려놓은 덕분에
세상에 둘도 없는 명물 무지개 마을이 탄생 하였다....아저씨가 기거하는 집.
그 아저씨씨는 이제 유명 인사가 되어 전 세계인들로 부터 사인 공세를 받기 일쑤요 이제는 은근히 세상으로 부터 받는 관심을 즐기는 듯.
쥔장 역시 남들하는 대로 기념 엽서를 사서 사인 한장 받았지만 사인의 의미, 평화를 사랑하고 행복을 갈구하고 안정을 원한다는 메시지에 더 주목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가 그린 그림으로 생산되는 티셔츠, 우산, 엽서 등 기념품이 즐비하니 이제는 어엿한 사업가 쯤 되시겠다.
한 사람의 힘은 정말 놀랍고도 놀라워 천천히 음미하며 돌아보아도 짧은 시간이면 끝나지만 그의 사업 확장은 놀라운 세로 증가할 듯..
한참을 무지개 마을을 서성이며 하나하나 구경을 하다보니 어둠이 내려온다.
하여 타이중에서 가장 크며 외국인 내국인 할 것 없이 사랑한다는 펑자대학교 교문 앞 야시장으로 바쁘게 옮겨 갔다.
대학가 앞이다 보니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넘쳐나는 온갖 로컬 음식들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거의 밀려다닌다고 하여도 무방하겠다.
뿐만 아니라 대만인이 사랑하는 간식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나라의 다양한 음식들도 접할 수 있어 대만 길거리 음식에 질린 사람들이 기꺼이 찾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들어서는 입구에서 부터 전해져 오는 대만 향신료 향내가 에워싸는 공기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길거리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숩성으로 인한 고통도 만만치 않아 식탐에 일단 먹었다가 탈이 나는 경우도 있었으니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특히 대만의 물 사정은 더욱 더 좋지를 않아 기본적으로 집에서는 반드시 5분 이상 끓여먹어야 하고 호텔의 물도 장담할 수 없으니
꼭 사서 먹으라는 정보를 잊고 갈증 난 김에 호텔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가 탈이 난 장과 마주하는 것. 웃긴 일이었지만
그만큼 무설재는 주변 환경과 공기와 물이 탁월하고도 뛰어난 곳이라는것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한국 음식점을 보면서는 반갑기는 했지만 굳이 대만까지 와서 우리네 입맛을 찾기 보다는
배가 아플지라도 기어이 대만 음식을 고수하는 어리석음을 남발하면서도 무척이나 즐거웠다는.
워낙 기름진 음식이 많은 고로 차 茶는 필수.
참으로 많은 길거리 음식들 고기 야채말이, 만두, 돼지고기찜, 글전, 오리고기, 오징어 볶음, 쌀적, 돼지고기 수프 등등을 제끼고 선택한 닭 꼬치구이.
정말이지 닭으로 만든 요리가 넘쳐나도록 많기만 하고 번번이 선택한 가게마다 번호표 받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또 왜그리 많은지..그러나 기다릴만 했다.
반찬 종류도 워낙 많아서 집에서 만들기 보다는 사서 들고 가는 사람들로 가득가득.
함께 다닌 자매 여행객이 꼭 먹고 싶었다는 엄청나게 큰 호떡은 실제로는 왕만두 같은 것으로 갖은 야채로 무장된 맛.
가격들은 얼마씩 이었는지 하도 많이 먹어서 무엇이 얼마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체로 한국돈으로 2천원에서 8천원 가량으로
길거리 음식치고는 별로 싸지 않았다는 개인적인 생각.
주머니 가벼운 샐러리맨들이나 데이트족이나 서민층이 많이 애용한다고 해서 무척이나 싼 줄 알았더니만 역시 관광이라는 것이 붙으니 그다지 저렴하다는 생각이 안들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예상치 못한 돈들이 휘리릭 날아가버린다는 말씀이니 계산을 잘할지어다...
오토바이가 존재하는 이유가 가장 중요한 곳이 아시아권이라고 한다면 그중에서도 대만이 압권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 곳을 가던 그들의 몸과 하나가 되어 움직일 뿐만 아니라 무지하게 달리는 듯하여도 일단 정해진 공간에 파킹을 하게 되면 질서정연.
대만 여행 중에 가장 눈에 많이 뜨인 것이 맥도널드 간판과 세븐 일레븐 되시겠다.
도대체 그 둘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해결 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었어도 더러 눈에 띄는 독특한 상점들이 있어서
구경하기는 아주 좋았고 덕분에 저렴하고 편한 운동화를 구입해주는 센스.
어둡고 우중충한 도시 야경 속에서 겨우 눈에 뜨이는 야행성 불빛.
휘황찬란과는 거리가 먼 네온사인이지만 그나마 불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 컷, 찰칵.
너무 혼잡스럽고 진한 대만 음식 향내에 질렸던 터라 나름 우아한 곳이라 일컬어지는 카페거리를 찾았다.
역시 야시장에 비해 호객 행위나 싼티 나는 무질서가 아닌 손으로 직접 수공예를 전문으로 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도 존재하고
길거리 리어카이지만 품위가 있고 나름 격이 있게 존재 한다.
야시장에서 한참을 걷기도 하고 음식 냄새에 격한 거부가 있었던 터라 바깥에서 보아 쾌적해 보이고 조용한 카페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나름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그려 올린 그림의 모양새가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카페의 바리스타 솜씨가 좋은 듯 하여 한컷.
두말 할 것도 없이 커피 맛도 일품이다 싶은데 쥔장은 더욱 근사하다.
대만 남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예쁘게 잘 생겼거나 중국인스럽다로 나뉘는데 바리스타는 전자에 속하니 마시는 커피와 차의 맛이 한결 플러스 알파.
게다가 이층에 올라가면 쾌적한 갤러리형 카페로서 넓은 공간을 마음대로 차지하고 앉아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며
만화 캐리커처로 도배된 벽면과 전시된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서 마음껏 눈을 즐겁게 하도록 배려를 해놓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래 위층을 모두 의자로 꽉꽉 채워 손님 받는 카페로 활용하지 않았을까 싶어 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 보이고 어쩐지 좋아보였다.
돌아나와 호텔로 걸어가기 위해 상점가를 구경하다 보니 마네킹에 입혀진 옷들이 마음에 들지만 언감생심..한때 저렇게 옷 모양새가 나도록 입고 다닐 때도 있었지 만 연발.
마침 그 거리가 1990년 뷰터 대만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국경을 넘어 한국까지 상륙한 버블티로 유명한 춘수당 본점이 있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도
본점에서만 맛 볼 수 잇는 기회를 놓치고만 우리는 또 뭐냐...별 수 없이 여행하는 동안 다른 곳에서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는.
엄청나게 긴 다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페달을 밟을 수 없을 것 같은 자전거 앞에서 자신의 발 길이를 대어보는 동행인의 동생.
에고고, 다리가 너무 짧아...웃다가 눈물 나더라는.
걸어서 얼마 되지 않는다는 블로거들의 말을 믿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가보려다가 낭패.
물론 타이중에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무슨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인지 걷는 것으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쥔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릴 거리들을 무슨 수로 걷는다는 말인지.
결국 택시를 타고 돌아와야 했는데 그 거리도 만만치 않았으니 검증되지 않은 혹은 잘못 전달되는 블로거들의 말에 현혹되는 일련의 사태들이
그 이후로도 종종 벌생하니 몇 번의 시행작오 끝에 결국엔 블로거들의 말을 믿지 않고 독자적으로 난관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러고 보면 여행이란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 경험해보고 느껴져야 함이 옳다는 말을 끝으로 하루치 일정은 여기까지?
아니다 호텔로 돌아가 잠깐의 쉼을 허락한 뒤에 다시 호텔 일대를 걸어다니며 상가를 구경하고 홀리듯 식탐에 빠져 몸과 눈을 혹사시켰다는 후문.
와중에 지금 대만은 선거 열풍으로 온 도시가 선거전 홍보판이 난무한다.
다음 편에도 나오겠지만 그 선거전의 홍보판이 참으로 어설프기 짝이 없어 우리와 사뭇 다른 양상.
어쨋거나 그들은 11월 29일에 시장을 비롯한 그를 도와 일할 일꾼을 뽑을 예정이라는 것이고
우린 또 내일의 일정을 위해 귀마개 힘을 빌려 숙면을 취하면서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조용한 곳에 사는지라 집 나오면 잘 자지는 못하지만 여행이기 때문에 거처지로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는고로 일단은 수면 부족을 참아낸다.
그리하여 늘 상관없이 수면 부족 상태로 다니긴 하여도 언제나 잠이 2프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어찌 어찌 여행을 마무리 하곤 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엔 딸이 준비해온 귀마개 덕분에 푹 잘 수는 있었지만 그 숙면은 얼마나 고달프게 걷고 지하철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다녀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 채 이뤄졌으니 오호 애재라.
첫댓글 오호~! 애재라~~~! 그래도 읽어지는 여행기글들은 참 재미있네요.
그 여행을 통해 쥔장이 어떤 고생을 했는지는 간과한채...
낮선 거리와 풍광은 역시 생경한채로 재미로 다가온다는...
나야말로 요즘 걷기에 자신감이 떨어져가고 있다오. 근족저염이라나 뭐라나... 끙~!
멋모르고 마구 걷다보면 발바닥 밑이 뜨끔거려서 깜짝 놀라곤한다오~! ㅜㅜ
에고고고...근족저염은 상당히 고생하더라만요.
낮은 신발은 신지말라고 하더라구요...발바닥에 탄력이 필요한 고로.
한동안 돌서지 농장 주인이 그때문에 잘 걷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괜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실내에서도 굽잇는 실내화를 신더라구요.
암튼 다녀와서 감기로 어제까지 고생하다 이제 좀 나아진 듯.
그래도 대만 여행은 생각할수록 엄청 재미있었어요...막판에 걷기 힘들어 고생은 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