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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0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마르코.1,14-20
믿으면 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사람 낚는 어부는 세상에서도 존경받는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런 나라는 세상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선 ‘회개’란 우리가 추구하는 ‘재물에 대한 욕망, 육체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 힘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 의미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 방향을 새로운 욕망으로 트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들이 ‘나의 생존을 위한 욕망들’이기에 새로운 방향은 ‘이웃의 생존을 위한 욕망’, 곧 ‘사랑’밖에 남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기에 나를 위한 삶이 ‘땅’을 향하는 삶이었다면 하늘로 오르는 삶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노랑 애벌레는 고치를 거쳐 노랑나비가 됩니다.
노랑나비가 되니 모든 애벌레가 나비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봅니다.
모든 애벌레 속에서 자신과 같은 나비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애벌레들은 각기 ‘세속-육신-마귀’를 쫓는 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들을 모른 체할 수 없습니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비가 되었다면 나를 위한 삶이 가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더는 개인적인 욕심을 추구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면 남는 일이 다른 애벌레들도 나비가 될 수 있음을 알리는 일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일은 ‘선교’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세례받으면 누구나 가정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선교사가 되어야 하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내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도 그 영혼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이 우선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세상에서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어른’ 프리미엄 특강쇼에서 김경일의 인지심리학자는 전국 석차 0.1%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은 ‘착한 것’이라고 합니다. 2010년에 EBS ‘학교란 무엇인가 – 0.1%의 비밀’이란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다급하게 김경일 교수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분명히 이 프로그램은 공부를 잘하는 수재들의 비밀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전혀 그 비밀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이큐, 부모님 학력과 소득, 사는 지역, 특목고 여부까지 다 조사했는데 특징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경일 교수는 이들이 분명히 착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그들의 일상을 찍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더 많은 친구에게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물론이요, 공부를 아주 많이 못 하는 아이들에게까지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저의 교수님도 “구체적으로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주지 못하면 그건 네가 모르는 거다”
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남에게 가르쳐주면서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은 본인들이 잘 알고 있다고 믿거나 혹은 알고 있는 것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외롭다, 외롭다’를 반복할 때 한 친구가 “예수님이 너와 함께 있는데, 뭐가 외로워!”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철저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아이큐가 98이고 쉬는 시간마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그 친구에게 가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공부 못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등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친구는 서울대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착해지면 잘 안 될 수가 없습니다.
‘디팩 쵸프라’도 자녀들을 그렇게 교육했습니다.
“너희는 남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만 생각해라. 나머지는 아버지가 다 책임질게.”
남을 많이 도와주었던 큰아들은 인도에서 큰 사업가가 되었고, 다른 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던 둘째는
아버지처럼 하버드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사랑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랑으로 살면 오히려 잘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려고 한 것인데, 심지어 이 세상에서도 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면 나머지도 덤으로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하는 자는 자기가 가졌다고 믿는 것마저 빼앗기게 된다는 말도 이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교안은 초등학교 대상이었습니다.
이때 수녀님은 하나하나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쓰지 못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 소외된 이들을 도우려 하면 더 발전하게 됩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사람이 ‘스티브 사쏜’이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코닥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필름 카메라를 설명하다가 그 필름을 어린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하는 순간에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필름을 보통 “빛에 노출되면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화학 반응하는 물질”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쏜은 “필름은 그릇이다”라고 말을 바꿔봅니다. 그렇다면 그릇이 굳이 필름일 필요는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는 카세트테이프에 이미지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만듭니다.
그렇게 조금씩 디지털카메라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0.1%의 비밀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서로 사랑하라’로 가게 합니다.
이웃 사랑을 위해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을 버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웃을 사랑해도 세상에서 저런 것들을 추구하는 이들보다 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래야 성공합니다.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성공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성공하게 됩니다.
도와주다 보면 내가 공부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도와주려고 더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성장합니다.
진정한 사람 낚는 어부는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누리는 방법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은퇴했음에도 전 세계 운동선수 선행왕 4위에 자리매김한 적이 있습니다.
2017년까지 기부액이 56억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이며 김수환 추기경의 바보 장학회 홍보위원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믿으면 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됩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다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 살기 때문에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존경받습니다.
세상은 반드시 내가 주는 대로 되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그렇게 되도록 가르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월10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1사무엘 1,1-8 마르코.1,14-20
단순화시킬 때 명품이 탄생합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출발선상에 서 있습니다.
교회 전례력 안의 여러 전례 시기들 가운데 가장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연중시기를 시작합니다.
연중시기가 있기에 사순․부활 시기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연중시기가 있기에 대림․성탄시기가 더욱 풍요롭습니다.
이처럼 연중시기는 다른 전례시기의 배경이자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한 시절을 매듭지을 때 마다, 그리고 새로운 절기를 맞아들일 때 마다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이 세상에 와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그것은 엄청난 고통일 것입니다.
한번 만개한 꽃이 시들지 않고 계속해서 피어있는 것도 무척 어색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네 사랑에 이별이 있고,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다는 것, 시절의 끝자락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입니다.
인생에도 저무는 황혼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황혼 속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착해지기 때문입니다.
연중 제1주일 월요일 아침,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 하루로 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낼 이 하루는 우리네 인생 여정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금쪽같은 하루이기에
허투루보내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전례력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반복해서 축제를 되풀이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우리들의 시간 속에 항상 현존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도 불멸을 추구해야겠습니다.
영원 속에서도 순간의 기쁨을 만끽해야겠습니다.
이 연중시기의 첫날,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처럼 기쁜 마음으로,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주님과 함께 힘찬 항해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첫사도단을 부르시며 이렇게 외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생업인 고기잡이에 전념하고 있던 첫 사도단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생계의 소중한 도구인 배도, 그물도 버립니다.
아버지도 삯꾼들도 뒤로하고 즉시 스승님을 따라나섭니다.
참으로 큰 버림이요, 큰 도전이요, 큰 투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버림’, ‘비움’이란 말이 재해석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들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비우면 채워지고 버리면 얻게 된다!”
기업 컨설팅 전문가들도 외칩니다.
“장래성이 없거나 본질에 맞지 않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의류 디자인 전문가들도 강조합니다.
“옷을 디자인할 때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버릴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옵니다.
단순화시킬 때 명품이 탄생합니다. 버린다는 것은 다른 말로 기본에 충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사도들께서 크게 버림으로 인해 크게 얻었음을 기억합니다.
오늘 우리들 삶의 목록에서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2022년 1월 10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사형수에 관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형 집행 날짜를 모르는 사형수는 너무 불안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반면 자신의 죽을 날짜를 알고 있는 사형수는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을 반성하며 슬퍼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삶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분명한 진실은 우리 모두 예외 없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죽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날짜를 몰라서 지금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며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셨습니다. 회개는 곧 자기반성입니다. 자기반성으로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 뜻만을 내세우는 삶이 아닌, 하느님 뜻이 드러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부르듯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면서 “나를 따라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이에 대한 제자들의 모습을 우리가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시몬과 안드레아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부모를 떠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세상의 일과 가족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따르는 일임을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보여줍니다.
불의의 사고로 하늘 나라에 간 언니의 유품을 정리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짐이 없어서 유품 정리할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정리할 짐들이 너무나도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언니보다 훨씬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하나 사들였던 물건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정작 하늘 나라에 들어갈 준비는 하지 않고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죽음 뒤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들을 애지중지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세상의 일이 제일 중요한 것 같지만 죽음 뒤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과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해집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힘센 분이시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합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굳세게 밀고 나가라(로잘린 카터).
칭찬합시다.
오클랜드 대학교 교수 피터 다우릭은 신체장애가 있는 청년들과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2주 안에 조립을 완수하는 조건으로 청년들은 두 집단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집단은 자신의 작업 모습을 녹화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실수하는 장면이나 작업 속도가 더딘 장면을 지운 영상이었습니다. 다른 집단은 작업량이 10% 늘 때마다 성과보수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업 영상을 본 집단의 생산성은 15%, 성과보수를 받은 집단의 생산성은 3% 증가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 최고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고의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의욕을 얻어서 생산성 높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보다 최고의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의욕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하는 칭찬이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칭찬을 많이 해야 합니다. 칭찬이 전혀 없고 다른 이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많은 공동체는 절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