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하귀2리 1908-2번지 하귀초등학교 내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유형 ; 민속신앙(비보용 연못)
비보풍수는 자연의 지기가 허약하거나 풍수적인 결함이 있거나 불길한 점이 발견되었을 때 새로운 길지(吉地)를 찾지 않은 채 그 결함을 비보하고 부족한 지기(地氣)를 바꾸어 지력 회복을 통해 편안하고 안전한 땅으로 바꾸어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을 말한다.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보풍수의 역사적 기원은 나말여초의 도선(道詵 827~898)에게서 비롯한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이다. 비보의 용례는 『삼국유사』나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 고려 및 조선시대 관련 주요 문헌에 다수 나타난다.
비보 형태는 시대, 지역, 조성 주체에 따라 특징이 있지만, 사찰이나 탑, 숲, 조산 등이 일반적이었다. 사찰이나 탑은 주로 왕실이나 큰 고을의 비보 형태였는데, 그 조성과 운영에 많은 경제적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적은 비용으로 실질적인 비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숲 비보는 중·소읍이나 마을에서 많이 나타난다. 숲을 활용한 비보는 기능상 경제적·실용적이고 비보 효과가 좋아서 마을의 비보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특히 손쉽게 조성하여 신속하고 상징적인 부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조산(인공적으로 야트막하게 흙을 쌓아 올려 둔덕을 만들어주는 것)은 서민 마을의 대표적인 비보 형태였다.
그 밖의 비보 형태로서 상징조형물에는 선돌, 솟대, 장승, 남근석, 돌거북, 돌자라 등이 있는데, 주로 마을비보에서 활용되었다. 그리고 비보 못의 풍수적 기능은 화기(火氣)를 막거나 흘러가는 지기(地氣)를 머물게 하였다. 마을이 형성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 식수문제이다. 하지만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하여 샘물 또는 연못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연못을 파서 막고자 하는 재앙은 주로 화재를 말한다.
거북못 해설문을 그대로 옮긴다.
태고 적부터 이 땅에 사람이 살아오다 文明期에 이르러 지세가 거북이 같다 하여 지명을 귀리(龜里)라 명명되어 전해옴에 이것이 지명의 유래이다.
마을이 커지고 주민이 順和하였으나 화재가 자주 일어 災殃의 고충이 극심하던 차에 神眼을 지닌 행인이 지나가다 마을 사람들이 火魔에 시달린다는 말을 듣고 마을 형국이 龜形勢이니 거북 등이 마르면 열이 나며 열은 火를 이루니 사방에 못을 파서 상시 물을 고이게 하면 화재가 없으리라 하고 지나갔다 한다. 주민들이 행인의 말대로 곳곳에 못을 파서 물이 고이니 마을에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전하며 이 때 구축했던 못이 몇 곳 있었으나 모두 매립되었고 유독 이 못만이 남아서 구전되어 온 옛일을 증명하고 있다. 이곳 주위의 지명을 거북 형국의 머리 부분이라 하여 귀뚜목(귀뜬목)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못의 규모는 여러 못 중에서 제일 크고 넓었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서문 밭 머리에 있어 新作路가 開設되고 이 學校가 設立된 후 그 일부가 매립되었으나 상수도가 施設되기 이전에는 마을의 防火水로 학교와 학생들이 긴요히 사용했던 못이다.
이제 이 못을 修築하여 碑를 세움은 마을의 유래와 先住民들의 숱한 세월을 겪고 누렸던 喜悲의 역사를 照明하고 마을 사람들이 잦은 화재를 막기 위하여 못을 파는 役事를 素材로 한 걸궁놀이 작품으로 2003년도 제42회 耽羅文化祭에 출연하여 획득한 최우수상 수상을 기념하고 이 학교를 졸업하여간 학생들의 哀歡을 담아 오래 되새기고자 함이다.
《작성 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