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正見] (267) 공부 하다보면 변한다?
마음은 변하나 본성은 변치 않는다
마음은 늘 본성에 의지하므로 본성에 밝다면 마음의 체험이나 존재상태도 좋아질게 당연하다 /셔터스톡
공부를 하다보면 자기가 변하는 걸 느낍니다. 예전에 분별하던 게 이젠 보이고 그동안 자기 생각과 감정에 푹 빠져서 살았다면 이제는 점차 그런 거로부터 벗어나 평안하게 되면서 밝은 안목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공부과정은 거시적으로 보면 인지-감성-의식정화의 3단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히 이런 자기 변화의 체험이 있긴 한데 이것은 진리인 성품자리는 항상 하며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우리 상식과 서로 모순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요? 변하고 발전하는 것이냐 변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이냐? (며칠 전 정견특강 후 누가 질문을 해오셨기에 오늘 여기에 답변을 공유합니다) 이것은 사실 변화의 주체에 대한 착각 오해에서 오는 질문입니다.
개체마음(에고, 육식활동의 내용물)은 공부하면 할수록 좋은 경계를 체험합니다. 분별을 벗어나는 걸 [인지정화]라고 하는데 분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기준을 따라서 공부하면 나타나는 마음현상에 대한 분별을 정화(淨化)라고 표현한 말입니다.
하지만 본래 성품자리는 본래 청정함 자체이니 정화되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즉 정화되기 이전의 삶도 이것이며 정화되는 체험도 이것이며 정화된 이후의 밝고 청정한 마음의 체험현상도 다 이것(성품)에 의지하여 생멸할 뿐입니다.
고로 육식활동에 의해 체험되는 마음 현상은 정화되기도 하고 타락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의지하는 본래성품자리는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본성자리는 변치 않지마는 마음은 자꾸 변하다보니 정화됨을 체험하곤 좋다고 붙드는 거지요.
그러니까 감성정화나 의식정화도 마찬가지로 개체마음의 체험일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과 외도를 구분하는 기준은 성품자리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는 공부냐 아니면 좋은 마음의 체험들을 따라가느냐에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마음은 늘 본성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본성에 밝다면 자연히 마음의 체험이나 존재상태도 좋아질게 당연한 거지요. 그러므로 이둘을 대립시켜 놓고 흑백논리 속에 둘중 하나만을 따라가는 공부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자기 미세한 생각분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부를 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즉 인지-감성-의식정화가 되더라도 그 역시 [그럴 뿐이다]하고 누리면 되는 것이지 그걸 따라가거나 반대로 자기 법상(法相)속에서 부정하면서 거부하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위 질문엔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요? [변하지만 (본질은) 변치 않는다]해야 할까요? 흑백논리에 친숙한 생각으론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공부하지 않는 공부]란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가르침임을 보신다면 곧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