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소유권 — 경제적 소유권을 말한다.
요즘에 경제적 소유권이 확고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는 것은
가정이 너무 쉽게 깨어지기 때문이다.)
*소유권 문제를 조금 더 보면
왕의 사생아로 태어나면 왕좌를 물려받지 못했다.(소유권이 없다)
그러나 왕족의 혈통은 인정받아서 성적 소유권은 인정 받았다.(좋은 가문에 시집, 장가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결혼이란
이전에는 전통적으로 가문과 가문이 연결하는 것이므로 집안에서 정해주었는데, 이제는 개인이 각자 자기의 짝을 찾는 체제로 바뀌었다.
결혼시장도, 일반 시장에서 상품을 고르듯이 활짝 열려있다. 상품 구입에는 필수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결혼시장도 돈이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혼시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나는 돈을 밝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결혼 시장이 가문과 가문이 아니고 개인이 자기의 짝을 구입하는 구조로 바뀐 것을 ’빅토리아 혁명‘이라고 말한다.
이제 ‘빅토리아 혁명’을 정리하여 공부합시다
개인이 자기의 짝을 구입할 때는 사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랑이란 두 사람이 서로 소유의식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사랑은 일종의 개인적인 미니 종교이며, 그 안에서 부부는 각자
상대방에게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이유로
(가정의) 울타리 밖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추문이다. 특히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는 사회에서 추방당한다.(옳은 자식의 대우를 못 받는다는 뜻)
성적 관계는 반드시 부부간에 이루어져야 하며, 매춘은 배제했다.(그렇다고 하여 없어진 것은 아니다.)
빅토리아 혁명에서는
결혼을 할 때도 성적 요소는 언급하지 않는다. 오로지 순수한 사랑만으로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배제했다.
여성에게 혼전 성교는 큰 추문이었으므로 남자들도 혼전에 성관계를 요구하지 않았다.(신사도이기도 했다.)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이 크나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것은 빅토리이 시대의 성문화 때문이다. 사드나 카사노바가 활동하던 시대에서 빅토리아 혁명을 겪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혁명은 성공을 거두었다.
(성공으로 이끈 것은 강한 도덕심 때문이 아니고 매독이 만연하였던 사회적 분위기라고도 한다. 최근에 AIDS가 유행할 때 성 질서가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