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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아와 그의 가족이 세례를 받다
행 16:11-15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행 16:11-15 / [루디아의 개종]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다가 12) 거기서 드디어 빌립보에 도착하였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국경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위치한 로마의 식민지였다. 우리는 거기서 며칠을 지냈다. 13) 안식일이 되자 우리는 사람들이 기도하러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교외의 강가로 갔다. 그리고 거기 모인 여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14) 그들 가운데는 두아디라 시에서 온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라는 여자도 있었다. 그 여자는 오래전부터 하나님을 공경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루디아가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에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셔서 바울이 말하는 것을 다 받아들이게 하셨다. 15) 루디아가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침례를 받고나서 말하였다. `만일 저를 주님의 충실한 신도로 여기신다면 제 집에 오셔서 머물러 주십시오.' 그 여자가 무척 간곡하게 청하였으므로 우리는 그 초대를 받아들였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유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이들에게 하나님은 귀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빌립보에 도착하다(11-12) 바울 일행은 드로아를 떠나 마게도냐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사모드라게로 직행했습니다. 드로아에서 네압볼리까지는 250km 정도 됩니다. 순풍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6절을 보면, 훗날 바울이 빌립보에서 거꾸로 배를 타고 돌아올 때 닷새가 걸린 항해 길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바울 일행에게 순탄한 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 일행이 무사히 빌립보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입니다. 빌립보는 기원전 167년에 마게도냐가 4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졌을 때 마게도냐 도시 중에서 빌립보가 제1지역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빌립보는 행정적인 부분에서 제1구역에 속해있었고 신앙적인 의미에서도 유럽에서 첫 번째로 복음 전도가 이루어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루디아를 만나다(13-15) 바울과 그 일행은 빌립보에서 여행의 피곤함을 잠시 회복한 후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아 나섭니다. 그 때 일행의 눈에 강가에 앉아있는 여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앉아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서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를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는 여자가 복음을 듣게 됩니다. 두아디라는 헬무스 계곡과 카이쿠스 계곡을 연결하는 소아시아의 국경의 요새였으며 이 곳은 전통적으로 염색, 의복 등의 제조업이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옷감 장사를 생업으로 하며 살아갔습니다. 루디아는 자주색 비단을 팔았는데 이 비단은 값이 매우 비싼 옷감이기에 그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는 부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또 바울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는 것으로 보아도 넓은 집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온 집안 식구가 세례를 받고 또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하는 중요한 결정을 혼자 하는 것을 보면 과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귀한 여인인 루디아가 어떻게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고 했습니다(14).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 겁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지만 그 결과를 책임지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 앞에서 우리가 더 겸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적용: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순종했던 경험을 나누어 보십시오.
한 수학자가 쌍둥이 딸을 낳았습니다.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두 아이는 모두 수학에 비범한 소질을 보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두 아이에게 "오늘 간식은 맛있는 케이크야. 수학 문제를 먼저 푸는 사람에게만 이 케이크를 모두 줄 거야." 두 아이는 열심히 문제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언니가 먼저 문제를 풀자, 울상이 된 동생을 바라보던 언니는 케이크를 뚝 잘라 절반을 동생에게 주며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이 케이크를 내가 전부 가지면 +1이고 동생이 못 가지면 –1이에요. 그러면 결국 제로(0)가 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이렇게 둘이 절반(0.5)씩 가지면 +1이 되는데 이쪽이 이득 아닌가요?"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딸들을 안아주면서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했습니다.
< 설 교 >
축복의 통로가 되라
이한규 목사
힘들고 외롭고 다급할 때는 잠깐의 좋은 만남과 휴식조차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살다 보면 가끔 절박한 상황에서 좋은 만남으로 고독감이 사라지고 큰 힘과 위로를 얻고 다시 일어설 때가 많다. 지치고 힘들고 고독한 사람에게 기쁨과 위안과 행복을 주는 만남 대상이 되라.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은 누군가를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일이다. 본문에는 바울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한 여인이 나온다. 바로 루디아다. 루디아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주일을 지키라
어느 날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 소아시아(터키)의 끝 부분인 무시아에 이르렀다. 거기서 선교 전략에 따라 소아시아 북동쪽의 비두니아로 가려고 할 때 성령님이 그 길을 막으셨다. 할 수 없이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유럽의 마게도냐 사람이 환상 중에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했다. 그 환상에 이끌려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떠났다. 그리고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했다.
며칠 후 안식일에 그들을 회당을 찾았다. 유대인은 어디서든지 남자 10명 이상 모이면 먼저 회당부터 세웠다. 회당이 없으면 대개 강가의 기도처에 모여 안식일을 지켰다. 그때 바울 일행은 빌립보 지역에 회당이 없음을 알고 회당 대신 기도처가 있을까 해서 문밖 강가에 나갔다가 거기 앉아서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때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였던 루디아였다. 그날 복음을 전하는 플러스 극의 바울과 복음을 받아들인 마이너스 극의 루디아가 만남으로 유럽에 엄청난 영적인 불꽃이 점화되었다.
루디아는 오늘날로 말하면 ‘부산댁, 목포댁’이란 호칭이다. 그녀의 출신지인 두아디라가 속한 지역 명칭이 리디아였기 때문이다. 그 지역 이름을 따서 사람들이 ‘루디아’라고 불렀는데 본명은 유오디아나 순두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빌 4:2). 바울이 빌립보서 4장 3절에서 언급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네게”라는 표현을 두고 루디아가 나중에 바울과 결혼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주장이다.
루디아는 직조와 염료 산업이 발달한 두아디라에서 생산한 값비싼 자주 옷감을 유럽에 파는 총판 역할을 했다. 당시에 왕족이나 귀족이 입던 자주 옷감 장사를 하려면 자본이 많아야 했기에 루디아는 상당한 여성재력가였을 것이다. 어떻게 그녀가 유럽 최초의 교인이 되었는가? 안식일을 지키려고 바울이 기도처를 찾아 강가로 나갔고 그녀도 강가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키려는 열심이 빚어낸 필연이었다. 그처럼 힘들어도 주일을 힘써 지킬 때 하나님도 그 사람의 축복을 힘써 지켜주실 것이다.
2. 즉시 실천하라
루디아 일행은 안식일마다 강가 기도처에서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 목자 없이 지내는 저희 형편을 아시지요? 저희를 불쌍히 여기셔서 좋은 목자를 보내주소서.” 하나님이 그 기도 모임을 긍휼히 여기셔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바울에게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여주고 바울 일행이 루디아 일행을 찾아오게 하셨을 가능성도 있다. 기도는 사람의 진로를 바꾸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놀라운 힘이다.
그때 바울은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면서 궁금했을 것이다. “도대체 그 환상에서 보인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다가 안식일에 빌립보의 강가에서 여장부처럼 생긴 루디아를 본 순간 그녀가 비록 남자는 아니었지만 “환상에서 본 사람이 저 사람은 아닐까?” 하는 직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신기하고 복된 만남이었다. 그 만남도 결국 기도의 열매였다. 기도가 가져다주는 핵심 축복은 ‘좋은 만남’이다. 그 만남이 역전 인생과 비전 성취의 시발점이다.
루디아는 부자였어도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안식일마다 강변 예배 및 기도 모임을 주도했다. 그녀는 기도하는 부자였다. 그처럼 어떤 경우에도 기도의 줄을 놓지 말라. 기도는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기도가 풍성해지면 영혼과 삶도 풍성해진다. 그런데 왜 많은 기도가 열매 없는 공허한 기도가 되는가? 기도에 따르는 순종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기도를 위한 기도’가 아닌 ‘순종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사람 앞에서 기도를 열심히 많이 한다는 기록을 남기는 ‘기록적인 기도’가 아닌 기도를 실천과 순종으로 연결시키는 ‘실천적인 기도’에 탁월하게 되라. 루디아는 말씀을 듣고 감동이 생기면 즉시 실천으로 연결시켰다. 그래서 바울이 루디아 일행에게 복음을 전할 때 주께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시자 그녀는 즉시 바울의 말대로 세례를 받고 자기 식구도 다 세례를 받게 했다. 대단한 결단력과 실천력이다. 선한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기도하고 어떤 감동이 생기면 즉시 실천에 나서는 사람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
3. 자기를 드리라
선교하려는 마음에 선교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진 것은 큰 축복이다. 루디아는 바울을 만나면서 자신의 부와 관련해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때를 위해 내게 물질을 주셨구나.” 그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위해 나의 소중한 것을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된다. 헌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게 동참해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라.
나를 통해 어디선가 선교의 문이 열리기를 소원하라.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나?”라고 생각하지 말라. 헌신하는 한 사람의 힘은 작은 힘이 아니다. ‘작은 것’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으면 ‘큰 것’이다. 신실하게 헌신하면 누구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왜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가?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다. ‘선교사 바울’도 위대한 존재지만 바울을 기도와 물질로 도운 ‘후원자 루디아’도 위대한 존재다.
루디아는 바울의 신실한 선교 동역자였다. 그녀는 바울 뒤에서 조용히 후원하며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 저도 전방 선교사가 되어야 하지만 대신에 저는 열심히 사업해서 선교를 후원하는 후방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저의 사업체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 사업체가 하나님 나라 확장의 귀한 도구가 되게 하소서.” 얼마나 복된 기도인가? 결국 그녀를 통해 유럽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다.
사도 바울과 루디아의 모습을 보면 한 사람의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롭게 깨닫는다. 한 사람이 변하면 많은 것이 변한다. 바울도 강가의 기도처에서 만난 여인 한 명이 그렇게 큰 역할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낯선 지역인 유럽에 아무런 배경이 없었던 바울에게 그녀의 헌신은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바울은 그녀를 만나고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 이런 귀한 만남을 허락하셔서 선교 동역자로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것은 루디아 같은 은밀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루디아를 찾으신다 >
1991년 필자가 미국 기독교선교연맹(C&MA) 소속 목회자로 귀국할 때 많은 선배 목사들이 적극 반대했다. “왜 이미 상당히 복음화 된 한국으로 가려느냐? 아무런 배경도 없이 한국에서 어떻게 목회하려느냐?” 현실적인 충고였다. 그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아무 배경도 없는 모국으로 들어갑니다. 한국인은 C&MA를 잘 모릅니다. 배경은 없지만 유럽으로 건너간 바울에게 루디아를 예비하신 것처럼 저에게도 루디아를 예비하소서.”
결국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과감히 귀국했지만 바울처럼 며칠 만에 루디아를 만나는 기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많이 외로웠다. 가끔 교단을 옮기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필자도 청년 때 장로교회를 섬겼고 평범한 스타일의 목회를 하니까 교단을 옮기기는 쉬웠다. 그때마다 미국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C&MA 소속의 얼라이언스 신대원(ATS)로 가게 된 상황을 기억했다. 결국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에 그냥 있자고 결심했다.
그 후 어려움도 많았고 물질 문제로 막다른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신기하게 루디아 성도를 예비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복음 전파와 선교를 위해 자기를 드릴 루디아를 찾고 계신다. 잘 선교하려면 지금 하는 일에서 성공하고 그 성공을 가지고 선교해서 축복의 통로가 되라. 물론 성공한 사람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늘 선교 비전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러면 드릴 것이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드릴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 무엇보다 기도할 수 있다. 선교 사역자들은 누군가의 기도 후원이 없으면 복음 전파 사역과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월간새벽기도> 문서 선교 사역도 매월 책을 읽고 감동한 누군가의 기도와 후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하나도 그냥 있게 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있게 해서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고 작은 책 한 권도 그냥 있게 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있게 해서 행복의 도구로 삼으신다. 얼마나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인가? 어떤 만남도 우연이 아니다. 만남들 중에는 우연으로 가장된 아주 특별한 만남도 있다.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감사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멋진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실 것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축복의 통로가 되라. 줄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자세히 꼽아보면 줄 것이 많다. 적어도 기도해줄 수는 있다. ‘인터넷(internet)’만 가까이하지 말고 ‘인터세션(intercession,중보기도)’도 가까이하라.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할 때 주신 성령님의 특별한 감동을 힘써 실천으로 연결시키면 인생의 비애는 사라지고 그때부터 인생의 비상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도 당대의 루디아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나를 기쁘게 드림으로 루디아처럼 멋진 축복의 통로가 되라.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양향모 목사
사도행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을 해서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계속 서진하였습니다. 그 복음이 근 2천여 년이 지난 후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오게 되었고 그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왕성하게 전파되는 이 특별한 시기에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우리들에게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런 오랜 세월 동안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때나 어느 곳이나 그냥 우연히 쉽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조정을 하시고 특별한 사람들이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사용이 됩니다. 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먼저 우리가 이 귀한 복음을 듣게 되고 이 위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베풀어주신 은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잘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그 복음의 중요성을 잘 모르니까 엉뚱한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옛날 시골에는 수도가 없고 동네에 우물이 몇 개 있어서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먹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더러운 잡탕물들이 우물에 들어가서 오히려 그 우물물을 마실 수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삽니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사실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설교나 성경공부는 흔하지 않습니다. 거짓선생들이, 잘못된 신학을 배운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설교들이 복음과 다르고 오히려 복음과 반대방향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이 왜 이 귀한 복음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지 왜 엉뚱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바른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심
본문 13-14절에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성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라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을 드린 대로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했는데 성령님께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와서 유럽의 첫 관문인 네압볼리라는 항구에 도착을 하게 되고 육지로 좀 더 들어가서 빌립보지방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빌립보를 마게도냐의 첫 성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당시에 그 지방에서 제일 유명하거나 큰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빌립보는 지금의 그리스에 속한 도시로서 유럽지역의 첫 교회가 설립된 곳이고 바울이 쓴 빌립보서 즉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유명한 교회가 세워진 곳입니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기대와는 달리 참으로 망망했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왔는데 그 환상에 보인 사람은 없고 아무도 그들을 반가이 맞이해주지도 않습니다. 어디에 가서 복음을 전할 만한 곳도 없어서 며칠 동안을 여기저기 배회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뜻밖에 성 밖에 가서 거기 있던 여인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 중에 루디아라고 하는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할 전초기지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는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회당을 세울 수도 없었고 마음대로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드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도시 외곽으로 나가서 기도를 드려야 했고 안식일이 되면 성 외각을 흐르는 강가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참석자들은 주로 여자들이었는데 바울은 이 안식일 모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참석한 루디아라는 여인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여인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알아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 특별히 준비된 루디아
루디아라는 여인은 유럽지방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고 그의 집이 빌립보지방의 첫 기도처소가 되었고 빌립보지방에 복음을 전하는 전진기지가 되었습니다. 그 루디아가 특별히 준비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특별히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똑똑하고 뭔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사람으로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되는 사람이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히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두아디라 시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두아디라는 유럽이 아니고 소아시아에 있는 도시입니다. 나중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하나가 이 두아디라에 세워졌습니다. 유럽에 와서 유럽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했는데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한 아시아 사람이 거기에 와서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듣고 자기 자신만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유럽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크게 쓰임을 받았고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서 두아디라에 교회가 세워지는 일에도 일조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말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은 아니면서 하나님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그냥 많은 신들 중에 한 신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신으로 섬기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복음을 더 잘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이런 잘못된 지식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전에 섬기던 잘못된 종교관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그저 세상 복이나 주시고 몸이나 아프지 않게 해 주시는 분으로 알기 때문에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녀는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색 옷감은 자주 빛을 내는 옷감으로 당시에는 귀한 고급 옷감이었습니다. 그녀의 고향인 두아디라가 상업의 도시였고 이 자색 옷감을 생산하는 도시였기 때문에 고향에서 하던 장사를 유럽까지 와서 확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이익을 위해서 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직업에 속합니다. 장삿속을 가진 사람들이 목회를 하면 교회가 이익추구 집단이 되게 만들고 장삿속을 가진 사람들이 교인이 되면 세상 복을 받는 것이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 보다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업을 하고 영업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런 상업적인 것이 신앙에까지 교회에까지 침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교회되는 일을 방해하고 참된 신앙을 가지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루디아의 이런 출신성분을 살펴볼 때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만한 선한 것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복음이 전해지는 곳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이 전해지는 이곳에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 곳에 여러분이 있었다면 여러분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복음 잘못된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있었다면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 잘못된 복음을 듣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2)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심
하나님께서 그녀를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와있게 하시고 바울의 발걸음을 그것까지 인도해 주신 것도 아주 특별하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복음을 듣고 있을 때 성령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는다고 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에 있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때 성령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실 때만 바른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루디아에게는 복음을 믿고 따르기 보다는 부정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더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그냥 자신을 보호하는 신으로 알고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장사를 하는 장삿속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날 거기 기도하는 것에 온 것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보다는 여인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여인들에게 자주 옷감을 팔기 위해서 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분석을 해 보면 그녀가 복음을 한 번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서 복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귀에 들리지도 않았고 그 복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실 때 비로소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이 전파되는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으시면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에도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인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순수할 때는 그래도 쉽게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마음이 복잡해지고 온갖 죄악된 것들이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다 타락하여 죄악 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있습니다. 그 타락한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이 주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대부분이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고 자기 이익을 위한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고 교만하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두고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남들 보기에 교회에 다니는 것 같고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믿음일 뿐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실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서 깨닫게 하실 때만 가능합니다.
제가 목회를 한지도 꽤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우리교회에서 오랫동안 함께 제 설교를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제 설교를 들으면서 알게 모르게 신앙관이 많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저는 설교에 대한 것은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늘 바른 설교를 하고 늘 여러분들이 잘 알아듣는 설교를 하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최근에 와서 더 깨닫는 것은 그런 저의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바른 설교를 하고 재미있는 설교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백퍼센트 여러분에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으면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으시면 그런 노력이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설교 준비와 함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옵소서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시고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어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엄청난 자리에 매주 와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이렇게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영양실조에 걸리다니요? 이렇게 좋은 보약을 앞에 놓고 병들어서 죽다니요? 안줘서 못 먹고 없어서 못 먹어서 탈이 나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고서도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이고 정말로 불쌍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보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의 귀를 열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하소서 하나님 이 십자가의 복음이 나의 믿음이 되게 하소서. 이 귀한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본문 15절에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루디아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녀의 행동을 간단하게 한절에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복음을 듣고 깨달은 후에 그녀 자신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집안 모든 식구들이 다 예수님을 믿게 하고 함께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만 믿고 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가족이 이 복음을 믿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가족 간에 사랑이 옛날과 달라서 좋은 것이 있어도 가족과 나누지 않고 자기 혼자만 누리는 사람도 혹 있다고 합니다. 로또 복권이 당첨이 되면 가족도 다 버리고 혼자 가지고 도망을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나누어가져도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것입니다. 또 로또 복권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좌우 하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함께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은 자녀들이 부모님 말을 안 듣는 시대이기 때문에 자식이라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지 이 신앙을 물려주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강권하여 모셨습니다. 그냥 단순히 집에 모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을 복음의 전진기지로 삼게 했습니다. 거기가 기도처소가 되고 거기서 교회가 시작되게 했습니다.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장소가 되게 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그 집을 시작으로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일을 함에 있어서 강권하면서 했다고 했습니다. 의무적으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강권해서 그 일에 헌신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헌신의 힘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루디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배려로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고 그녀의 집에 바울 일행을 머물게 함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귀한 믿음을 우리의 가족에게도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루디아의 집
정필도 목사
오늘은 우리 수영로 교회가 28주년 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그 당시 교회 건물이 지어지지 않아서 태창목재 건물의 한 켠을 빌려 두 가정과 오영섭 전도사님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지 어느새 2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가정 교회가 수천 수만 명의 예루살렘 교회로 부흥 발전되고, 오늘날과 같이 전세계로 전파되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심하게 핍박하였고, 나중에는 로마황제까지도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영화 ‘쿼바디스’에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로마 정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화형시키기도 하고, 사자굴에 던져 굶주린 사자들의 밥이 되게 하기도 했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기독교인을 말살시키기 위해 온갖 핍박을 다 가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인들은 계속 늘어나 교회가 더욱 부흥 발전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이르러서는 기독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자유롭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과연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아무리 교회가 핍박을 당해도 교회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매우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 와도 약해지거나 흔들리지 않았으며 끝까지 승리한 교회였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큰 핍박으로 인해 사도들 이외에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으나 이들은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전하므로 해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안디옥 교회와 같은 큰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해서 천국복음이 힘차게 전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 당시 두 가지 교회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가의 집에서 모인 가정교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늘날의 대형집회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숫자를 삼 천명이라고 했고, 사도행전 4:4에서도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다고 했으니,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하면 적어도 몇 만 명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사도행전 6:7에서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라고 한 것을 보면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도저히 숫자를 기록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기독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하기까지는 모든 교회들이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교회 형태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라오디아 교회는 눔바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루디아는 사도 바울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자마자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자기 집에 사도 바울을 모시고 예배드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많은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골로새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빌레몬서 1:2을 보면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빌레몬의 집이 바로 교회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교회였습니다.
오늘날도 중국은 기독교를 핍박하고 있습니다만, 모택동 시절에는 모든 교회들이 철저히 폐쇄되었고, 선교사들은 모두 강제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의 기독교는 끝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이 죽은 후 다시 중국이 개방되었을 때에, 기독교인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하교회를 통해 더욱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그 당시 3백만 명 정도의 교인이 최소 5천만 명에서 최대 8천만 명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처소교회 또는 지하교회라고 하는 가정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경책도 없고 교역자도 없었지만 한 가정 혹은 두세 가정이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사랑방’과 같은 가정교회를 통해 계속해서 부흥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이 에티오피아에서 메노 나이트 교회를 개척한지 오래지 않아 5천 명 이상 모이는 대교회로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에 정치적인 위기가 왔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나라 전체를 장악한 것입니다. 뒤이어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교사들은 모든 일을 내려놓고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교회건물은 압수당하고 지도자들은 투옥되었으며, 교인들간에도 접촉이 금지되었습니다. 자연히 교인들은 모두 지하로 숨어들었으며, 10년이나 감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드디어 에티오피아에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그후 교회에 남아있던 지도자들이 예전의 교인들을 다 모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십여년 전에 5천명으로 끝났던 교회가 자그마치 5만 명으로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동안 공식적인 집회도 없었고, 성경도 목회자도 없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학자들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 결과 소그룹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메노 나이트 교인들은 나라가 공산화되자 공식적인 모임을 다 내려놓고 그들 가정으로 들어갔습니다. 5~6명씩 모여 과거 교회에서 훈련받았던 내용들을 기억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며 또 다른 사람을 전도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건강한 교회가 되고 또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계속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이 사랑방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으로 무장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행전 2:46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성전에서 모이고 또 각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성전에서 모이는 대 집회와 평일에 모이는 사랑방과 같은 소그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개 주일에 성전에서 모이는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의 80% 이상은 구경꾼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다만 20% 미만의 성도들 만이 찬양대원, 교사, 차량봉사, 안내위원, 헌금위원 등으로 교회의 일군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방 모임에 참석하는 성도들은 90% 이상 일군이 됩니다. 섬김이, 이끔이, 찬양 도우미, 행정 도우미, 선교 도우미, 기도 도우미 중에 한가지씩 맡게 되기 때문에 구경꾼 신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방이 서너 개 모이면 한 조가 되고 또 다시 각 조들이 모여 마을이 되고, 목자인 평신도 사역자들이 이 일을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공 예배에만 나오지 않고 가정에서 모이는 사랑방 모임에도 참석한다고 하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어떤 환난과 시험이 와도 이기며 계속 부흥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사실 성도들이 사랑방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돕고 사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갈 6:10).
우리 성도들이 가장 위험한 때는 혼자 되는 것입니다. 이때 집중적으로 사단의 공격을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와도 아담과 같이 있지 않았을 때 사단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만일 둘이 같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TV 프로그램 중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들이 먹이를 사냥할 때에, 사자들의 출동을 눈치 챈 초식동물인 얼룩말이나 누(gnu)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강한 사자라 해도 절대로 초식동물들의 무리 속으로 돌진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뿔에 받히거나 다리에 걷어차여 자칫하면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자들은 무리로부터 이탈되어 혼자된 놈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잡아먹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신앙의 동지들과 떨어져 혼자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몇 해 전에 전쟁 중 포로가 된 적이 있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언제 포로들의 사기가 가장 저하되는지 조사했습니다. 이때 구타당하고 고문당할 때보다 독방에 감금하거나 혹은 동료들로부터 따로 격리시켰을 때 큰 두려움을 느낀다 고 답했습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저와 여러분을 혼자가 되게 만들려고 합니다. 성도들이 교역자들과 연락하지 않고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도 없이 혼자될 때 가장 신앙이 약해지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혼자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다니엘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은 신앙의 동지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반드시 신앙의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서 4:9~12에서도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전쟁할 때 비록 힘이 약해도 전체가 하나로 뭉쳐 죽을 힘을 다해 달려들면 이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숫자가 많고 힘이 강해도 혼자 살려고 제 각각이면 무조건 패합니다.
영적전쟁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몇 가정이 한 주일에 한두 번씩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한 주간 있었던 일들을 서로 나누며 함께 기도하게 되면 모두가 한 가족이 됩니다. 영적인 형제 자매 부모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돕는 가운데 친밀한 관계가 이어지면 모두 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 사랑방과 같은 모임에 신혼 때부터 참여하여 십 년이 된 분이 “이 모임은 우리의 삶 가운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공동체”라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모임을 가질 때마다 말씀과 일주일의 삶을 나누면서 삶의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그룹 모임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되고 한 주간 동안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날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1. 예배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 사는 동안 시험과 유혹에 믿음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일에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받으면 쓰레기가 밀물에 쓸려나가듯이, 예배를 드리는 중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면 새 힘을 얻고 기쁨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2. 봉사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구제와 나누어주는 일에 힘쓰는 사람들의 신앙이 건강합니다.
3.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방 모임과 같은 모임을 통해 성도간의 교제를 잘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건강합니다.
4. 교육과 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주님의 신앙과 인격을 닮아가게 됩니다.
5. 전도생활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의 신앙을 얼마나 건강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사랑방을 통해하는 전도가 가장 자연스럽고 열매도 큽니다. 이웃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다 보면 자연히 친해지고 전도도 하게 되어 새로운 사랑방 식구가 늘게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 성도들이 이 다섯 가지 일들을 열심히 하다보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46~47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도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난 것입니다. 이때는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사도들만이 전도한 것이 아니라 스데반 집사도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심지어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 성에 큰 환난이 일어났을 때에, 성도들이 이 환난을 피해 두루 흩어지면서도 열심히 전도를 하여 많은 영혼들을 구원했습니다.
요한복음 15:16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고, 8절에서도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택하시고 예수 믿게 하셔서 구원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열매맺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은 구원의 열매입니다. 나로 인해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계속해서 늘어나 열매를 많이 맺게 될 때,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어 구원얻도록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도 아낌없이 드리고 심지어 목숨까지라도 바치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29~30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이 마지막 때에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모두 다 사랑방 모임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방을 통해 복음을 전하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좋은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수영로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구경꾼 신자가 하나도 없게 하여 주옵소서.
성도 한 분 한 분이 열 명, 백 명, 만 명을 구원하는 일군신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면류관을 받는 성도들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타이밍
오정호 목사
개인의 인생사와 인류역사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시간(Kairos Moment)이 있습니다. 우연으로 이루어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타이밍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타이밍은 다음의 세 가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1.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때입니다(10절).
사도바울은 아시아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마게도냐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6절).
우리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내 마음이 원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제2차전도여행을 시작할 때 성령께서 더 이상 아시아에서 복음 전함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게도냐 지역, 즉 지금의 유럽을 복음화시키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는 환상을 밤에 보았습니다(8절).
하나님의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소원을 담아주십니다.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심이 있을 때에 그 사람과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어느 때에 하나님의 타이밍이 드러납니까? 순종하기를 마음에 소원할 때입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마게도냐 지역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순종했습니다(10절).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먼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편견과 생각에 묶이지 말고 주의 뜻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 할지라도 순종하면 하나님의 타이밍이 드러나게 되고 지나온 일을 돌아볼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마음 열어 기도할 때입니다(13절).
바울일행은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의 첫성 빌립보에 들어갔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유대인들은 남자 열명만 모여도 회당을 짓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성에는 아직 그러한 회당이 없어 기도하기 위해 강가로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타이밍이 맞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뜻을 분별합니까?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을 비우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신앙의 인물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춰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선입니다.
바울일행이 당도한 강가에는 마침 기도하기 위해 모인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지는 그 첫 현장의 타이밍은 놀랍게도 기도하는 가운데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입니다(14절).
성령께서 모인 여자들 가운데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타이밍에 꼭 맞는 복된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은 함께 역사하십니다. 성경을 덮고 기도하지 마시고 성경을 펴서 말씀의 약속과 소망을 따라 기도할 때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고 말씀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깨달아 집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열정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선교의 영이십니다. 다른 영혼을 구원하고 가정을 말씀으로 세우며 내 삶이 가장 아름답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우리의 심령에 큰 은혜를 베푸실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깨달은 후 루디아와 빌립보 교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첫째, 영적인 눈이 열렸습니다(15a절).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루디아와 그의 집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15절). 은혜받으면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 은혜에 대하여 사모하는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은혜받는데 선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받는 일에 욕심을 내야 합니다. 쇠가 달구어져 있을 때 두들겨야 하는 것처럼 성령의 감동과 말씀의 깨달음이 주어질 때 순종하면 그 때 삶이 변화되는 줄 믿습니다.
루디아 한사람의 변화로 온 집안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은혜받은 루디아처럼 새천년 가을 부흥사경회를 통해 주실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은혜받게 하십시오. 어릴 때 부터 은혜의 맛을 알게 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은혜받아 한평생 깨끗한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둘째 섬기는 삶을 시작합니다(15b절).
은혜받은 루디아는 바울일행이 자신의 집에 머물기를 간청했습니다. 은혜받으면 삶이 변화됩니다. 그녀의 마음의 문이 열리자 가정의 문도 열렸습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가정을 기꺼이 열어 형제들을 섬겼습니다. 대접하는 성도, 대접하는 교회는 힘이 있습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도와야 합니다. 루디아는 형제들을 간청하여 자신의 가정에서 섬기는 배포있는 성도였습니다. 후에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나왔을 때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 형제들을 만나 위로하였습니다(40절). 빌립보 교회는 섬김을 받고 또한 위로를 베푸는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은혜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습니까? 은혜받은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마시고 오늘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깨달은 루디아와 빌립보 교회는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마게도냐 지역의 첫 열매가 되었고, 빌립보 교회는 유럽을 변화시키는 어머니 교회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깨달은 사람들은 은혜받을 뿐 아니라 섬기는 삶을 삽니다. 성도가 성도 다워지고 교회가 교회 다워지려면 은혜받을 때가 언제인지, 주앞에 헌신할 때가 언제인지,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생애가 하나님의 거룩한 작품으로 빚어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를 사용하셨듯이 우리 교회를 사용하셔서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영적인 만족과 기쁨과 은혜를 끼치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루디아의 가정신앙
박종순 목사
바울이 빌립보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온 집안이 세례를 받고 바울을 자기 집에 초청한 후 계속 머물도록 요청했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그녀의 직업은 자주빛 비단을 파는 것이었고 다른 가족들보다 먼저 예수를 믿고 자기 가족을 다 구원한 사람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어떤 여인이었으며, 어떤 신앙을 가졌기에 가족을 구원했는가 본문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루디아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4절을 보면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였다고 했습니다. 주경가들은 루디아는 자주옷감을 팔아 큰 돈을 벌었다고 해석합니다.
모리, 협잡, 사기, 횡령, 부정축재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번돈은 쉽게 없어집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일하고 근검절약해 돈을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모 증권회사에서 팀장, 과장, 부장을 20여년 맡았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증권전문가들도 증권에 투자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돈을 버느냐"고. 대답은 "증권전문가라도 90% 이상은 집 날리고, 땅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행히 집을 날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증권전문가들은 어느 주식이 오르고, 어느 주식이 떨어질것인지 그 동향을 예측할 수 있느냐"고. 그 대답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살기 편한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그리고 일단 돈을 벌었으면 나를 위해 쓰는 돈보다 남을 위해 쓰고 주님과 교회를 위해 쓰는 돈이 더 많아야 합니다.
루디아는 부지런히 일하고 성실하게 돈을 모아 그 당시 그 동네에서 부자로 소문나게 되었습니다. 잠언 31:10-31을 보면 어떤 여인이 현숙한 사람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남편에게 선을 행하는 여자,
둘째, 부지런히 일하는 여자,
셋째, 가난한 사람을 돕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루디아는 잠언 31장이 말하는 현숙한 여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2. 다른 사람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13-14절을 보면 안식일에 예배드리고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그 동네 여자들이 모였는데 루디아도 거기에 참석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이미 루디아는 여성 실업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보나마나 옷감장사였기 때문에 그녀가 입고 다니는 의상은 최고였을것이고, 확인된 바는 없지만 얼굴도 미인이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돈도 많았습니다. 그쯤 되면 목에 힘을 주고 거들먹거리며 살수 있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얕잡아보고 잘난척하며 살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안식일에 성전건물도 아닌 강가에 모인 예배에 참석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잘살든지 못살든지, 학벌이 좋든지 안 좋든지, 사는 동네가 부자촌이든지 달동네든지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함께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 성경대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잘산다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도, 못산다고 앙심을 품고 잘사는 사람들을 증오하는 것도 모두가 비정상입니다.
요즘 대통령후보로 뽑힌 사람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자기는 서민이고, 가난했고, 고생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 대통령은 반드시 서민만을 위한 대통령이어서는 안됩니다. 한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의 성분은 중산층, 서민층, 무산층, 지식층, 무식층, 사용자, 노동자등 각계 각층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을 함께 포용하고 다독거릴 수 있는 통전적 지도자라야 대통령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철저한 농민, 그것도 아주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제가 섬기는 충신교회는 농민만을 위한 교회가 아닙니다. 누가와도 편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성경적 교회관인 것입니다. 국가도 예외가 아닌 것입니다.
루디아는 어울릴 줄 아는 여자였습니다. 모든 사람과 어울리려면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야 합니다. 그 사람의 눈높이에 나를 맞춰야 합니다.
3.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공경하는 루디아"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어떤 경로를 통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만 이미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결혼식 때마다 신랑신부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을 바로 하라. 그것은 사람의 본분이다. 그리고 신랑신부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신앙생활을 바로 하라." 신랑신부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바로 섬기면 서로 믿고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양면성을 가진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권이 보장된 나라이면서 여기저기서 인권이 유린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또 전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을 돕고 지원하는가하면 자기네 국가 이익을 위해선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리고 세계 유일의 기독교 국가이면서 범죄와 타락이 있는 나라 역시 미국입니다. 히피 운동, 성개방 운동, 동성애 운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1세기에도 세계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정치, 군사, 외교, 경제등 모든 면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은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합니다. 그 뜻은 국가나 대통령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를 더 높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통령이 선서할 때 국민을 거명하고, 헌법을 들먹거립니다. 그러나 그 헌법은 정권잡은 사람들이 유리하도록 고치고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개인, 가정, 국가가 번영합니다. 복을 받습니다. 세계적으로 기독교국가의 경제력과 회교나 불교국가의 경제력을 비교하면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 12월까지 각 당의 대통령후보들의 언행을 지켜 볼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후보가 절간에 몇 번이나 찾아가는가? 하나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는가? 를 지켜보면서 내가 찍을 사람을 결정할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맡길 대통령을 뽑는 일이기 때문에 우상숭배자나, 반기독교적 인사나, 무당·점쟁이를 비호하거나 그곳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뽑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4. 말씀을 청종했습니다.
14절 끝을 보면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케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청종했다는 것은 바울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을 존경하고, 신뢰했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청종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의 경우도 같습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자를 신뢰하지 못하고, 존경심이 없다면 그 설교를 듣지 못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설교자가 싫으면 설교가 싫어지게 됩니다. 계속적으로 설교가 싫어져 듣지 않으면 영혼의 기근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대로 하겠나이다."
이 믿음과 태도로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건강하게 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5.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15절을 보면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8:38을 보면 그 당시 에디오피아 장관이 빌립의 전도를 받고 현장에서 세례를 받았고, 사도행전 16:33을 보면 빌립보 교도소에서 바울의 감방을 지키던 간수가 예수믿고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받아도 그만, 안받아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이며, 예수 믿고 영생을 얻었다는 증거이며, 충신교회 정식교인이 되었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루디아의 경우 온 가족이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가족을 구원한 것입니다.
미래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쓴 글을 읽었습니다. 미래 사회는 인간이 첫째, 신세대형, 미래인간형으로 바뀔 것이다. 둘째, 가속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셋째, 기술산업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넷째, 최첨단 정보사회가 될 것이다. 다섯째, 새로운 우주관이 형성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21세기가 되면 새로운 신세대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신세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첫째, 개인적이다.
자신의 삶의 질을 최대한 존중하고 부부간에도 서로 침해 받기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딩크족(DINK)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딩크란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자로 "수입은 배, 얘들은 없어야 좋고"라는 뜻입니다.
둘째, 흥미본위이다.
형이하학적인 것, 횡경막 아래의 것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것이 그들의 삶을 지배합니다. 용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유흥비 때문에 강도짓을 합니다.
셋째, 성별구분이 모호하다.
남자도 긴머리, 귀걸이, 목걸이, 팔찌, 성형수술, 미장원 출입, 성전환 수술 등 남녀 성별이 모호해져 버렸습니다.
넷째, 자연적인 것을 좋아한다.
탈조직, 탈구조, 남의 이목을 개의치 않고 좋다고 여기면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이 든 해냅니다. 옷도 편하게, 사는 것도 편하게가 유행합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입니다. 신세대 자녀들, 젊은이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루디아는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가정, 가족은 혈연 공동체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태초에 가정이 있었습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까?
먼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란 밑에서는 것입니다.
둘째는 서로 책임지는 가정입니다. "내탓이오,. 내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하오,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이런 가정이 행복가정입니다.
셋째는 함께 예수 믿고, 한 교회를 다녀야 합니다.
개성존중시대랍시고 아버지는 불교, 아내는 기독교, 큰아들은 천주교, 딸은 회회 교, 며느리는 일본천리교 시위는 파룬궁. 이건콩가루 집안입니다.
가족구원과 신앙을 위해 기도합시다. 루디아처럼 가족을 구원합시다.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만나고
함께 교회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그날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오고, 함께 가고..
이런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돈 잘 쓰는 사람
조상호 목사
지난주에 조선말기의 여성사업가 ‘백선행(白善行, 1848년~1933년)’이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읽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4세에 결혼했으나, 2년 후에 16세라는 젊은 나이로 과부가 될 만큼 인생을 불행하게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평양을 대표할 만큼 큰 갑부가 된 입지전적인 여인입니다. 그녀가 재산을 모은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근검절약하는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 앞뒤 마당에 봉선화를 심어 꽃을 따고, 씨를 받아 5일마다 장터에 내다 팔았습니다. 질동이를 머리에 이고 음식점을 돌아다니면서 음식 찌꺼기를 얻어와 돼지도 길렀고, 뽕나무를 가꾸어 누에를 치고, 목화씨를 발라 기름을 짜고, 물레와 베틀을 마련해 밤새도록 무명과 명주를 짜서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푼 두 푼 번 돈은 절대로 허투루 쓰지 않고 알뜰살뜰 모았습니다. 그녀가 갑부가 된 두 번째 단계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과 원칙을 지키는 강한 성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녀는 일본인들이 석회석이 많이 나는 땅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고, 경성을 돌아보고 온 다음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시멘트에 필요한 원료인 석회석이 대량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한 일본인 사업가가 황무지 돌산을 사려고 하자, 거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는 판단과 배짱으로 협상하여 처음에 구입한 가격 보다 몇 십배 높은 가격으로 일본인에게 되팔아 큰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백선행이라는 여인을 통해 도전을 받은 것은 그녀가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그녀는 당시 평양YMCA 회장이던 조만식 장로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전재산을 사회사업에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그 흔한 환갑잔치도 벌이지 않고 가난할 때처럼 소박한 식사를 했습니다. 한번은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의 무덤을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마을에 들렸는데, 다리가 없어 마을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특별히 기독교계 학교에 많은 기부를 했습니다. 선교사가 세운 광성보통학교에 전답 14,000평(오늘날 화폐가치로 약 13억 원)을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광성학교에 추가로 13만원(오늘날 화폐가치로 약 130억 원)을 기부함으로, 일본총독부의 조선인 사립학교 설립방해를 극복하고 재단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장로교에서 운영하는 숭현여학교에 전답 26,0000평(오늘날 화폐가치로 약 30억 원)을 기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로교 계통의 창덕보통학교에 6,000원(오늘날 화폐가치로 약 6억 원) 상당의 땅을, 숭인상업학교에도 13,0000원(오늘날 화폐가치로 약 13억 원) 상당의 땅을 기부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녀가 기부한 돈은 당시 18만원(오늘날 화폐가치로 약 180억 원)이라는 거액이었는데도, 아무 조건 없이 학교에 기부하였습니다. 평양에 있는 기독교계 학교들이 거의 모두 백선행의 기부금으로 운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학교 경영권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고, 일본의 조선총독부에서 상을 주려고 했지만 그 상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백선행’이라는 여인은 멋진 부자였습니다. 그녀는 돈은 많지만,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세상의 시시컬렁한 부자와 달랐습니다. 그녀는 물질을 의미 있게 사용할 줄 아는 돈 잘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잘 쓰는 사람’을 ‘돈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돈 많이 쓰는 것과 돈 잘 쓰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쓴다 할지라도 돈을 잘못 쓸 수 있고, 반대로 돈을 적게 쓴다 할지라도 돈을 잘 쓸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돈 잘 쓰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돈 잘 못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 우는 아브라함은 부자였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또 욥도 그의 말년에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후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많은 부자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돈을 잘 쓸 줄 아는 부자’와 ‘돈을 잘 쓸 줄 모르는 부자’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는 돈은 많았지만,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부자였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 집 대문 앞에서 고생하는 거지를 돌보지 않고,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사치하고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는 돈은 많았지만, 그 돈을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돈을 잘 쓸 줄 아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루디아라는 이름의 여인입니다. 그녀는 부자였습니다만, 세상의 시시컬렁한 부자와 달리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멋진 여자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돈을 잘 쓸 줄 알았던 루디아에 대해서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짧지만, 본문을 통해서 그녀의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생활력이 강한 돈 많은 여자
첫째로, 그녀는 생활력이 강한 돈 많은 여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와 동행하고 있는 일행들과 함께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배를 타고 빌립보에 도착했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니아 지방의 첫 번째 성입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바울 일행은 그 성에서 수일을 머물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일행은 그곳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해서 빌립보까지 왔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냥 시간만 보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다가 안식일이 되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회당이 없었습니다.
아마 들어보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시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이민을 가면 제일 먼저 중국집을 열고, 일본 사람들은 이민을 가면 제일 먼저 회사를 세우고, 한국 사람들은 이민을 가면 교회를 세운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끼리 서로 연합을 못하는 것이 사실이고, 사명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기보다 분열이 되어 교회가 세워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아무튼지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대부분 한인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대단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도 우리 민족과 비슷합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남자 10명 이상이 모이면 회당을 세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회당에 모여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자녀를 말씀으로 교육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만약 회당이 없으면, 일반적으로 강가나 바닷가의 한적에 곳에 모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배를 드리며 안식일을 지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도하려면 어디로 갑니까? 산으로 갑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지 않고, 강가로 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빌립보에 머무르게 된 바울 일행은 그곳에 회당이 없다는 것을 알고 기도할 장소를 찾아 강가로 나갔다가,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다같이 14절을 보겠습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녀는 두아디라 성 출신입니다. 당시 두아디라 지역은 천을 짜는 직조업과 천에다 칼라를 입히는 염료업이 발달했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지역에서 생산한 자색, 즉 Purple 칼라 옷감을 다른 지역에 가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1세기 당시 자색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왕족이나 신분이 높은 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비싼 옷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색 옷을 파는 장사를 하려면, 상당한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루디아는 꽤 돈이 많은 부자였음에 분명합니다. 또한 여자의 몸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남편이 없거나 남편이 있다 할지라도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든 것을 보면, 생활력이 매우 강한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글에 보니까 요즘 남자들은 ‘생강녀’를 좋아하고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생강녀’라는 의미를 아십니까? 생활력이 강한 여자를 ‘생강녀’라고 부릅니다. 마냥 순수하다보면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요즘 남자들은 순수한 여자보다 ‘생강녀’를 좋아하고 한다고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섹시하거나 순수한 여자보다는 생활력 강한 여자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특히 결혼적령기에 다다른 남자일수록 생활력에 높은 점수를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강녀’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고 여러분들이 ‘생강녀’인지 아닌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평생 직업을 갖고 있다. 둘째로 꾸준히 적금 부은 통장을 서너 개 갖고 있다. 셋째로 사막에 떨어뜨려 놔도 먹고 살 수 있다. 넷째로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다섯째로 상설할인매장, 쇼핑몰은 꿰고 있다. 여섯째로 다양한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일곱째로 옷이나 물건 등 한 번 쓰면 오~래 간다. 여덟 번째로 재활용이 생활화되어 있다. 어떻습니까? 여러 자매님 여러분! 여러분들은 ‘생강녀’입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루디아는 ‘생강녀’였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자색 옷을 파는 장사를 한 것을 보면, 생활력이 매우 강한 돈 많은 부자였음에 분명합니다.
2. 규칙적으로 기도했던 여자
둘째로, 그녀는 규칙적으로 기도했던 여자였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루디아는 왕족이나 신분이 높은 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자색 옷을 파는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만 되면 유대인의 관례대로 다른 여인들과 함께 강가에 나가 기도를 했습니다. 사실 여자 몸으로 가정 살림을 하면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루디아는 여자 몸으로 가정살림을 하면서도 사업을 크게 했습니다. 아마도 사업을 하는 다른 남자들보다 몇 배나 바빴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바쁜 중에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빠뜨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다같이 13절을 보겠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기도할 장소를 찾아 강가에 나갔던 바울 일행은 그곳에서 몇 명의 여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여인들 역시 안식일이 되어 기도하기 위해 강가로 나왔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루디아라는 여인은 기도를 쉬지 않는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규칙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지난 7월초 청(소)년 부흥축제 강사로 오셨던 홍민기 목사님이 쓴 <정면승부>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쳥년이 일자리를 구하려고 현장 감독을 찾았다. 할 일은 도끼로 나무로 쓰러뜨리는 일이었다. 현장감독이 보는 앞에서 청년은 힘을 자랑하며 나무를 쓰러뜨렸다. 당장 일을 맡게 된 청년은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졌다. 유심히 살펴보니 열심히 일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어느 날 현장 감독이 찾아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청년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현장감독이 다시 물었다. ‘도끼는 매번 갈고 있나?’ 청년은 바빠서 한 번도 안 갈았다고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누구보다 많이 일하는 것보다 도끼의 날을 날카롭게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기도는 도끼의 날과 같다. 바쁘면 바쁠수록 그리고 힘들면 힘들수록 도끼의 날이 날카로워야 문제를 헤져 나갈 수 있다. 어떤 친구들은 정말 시간이 없어서 저녁도 제대로 못 먹는 걸 보았다. 그래도 기도는 해야 한다. 식사야 김밥 같은 것으로 때울 수도 있지만, 기도는 다른 방법으로 때울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바쁘다고 기도를 쉬어서는 안 되는 줄로 믿습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더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위에 보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쁠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쁘다는 것은 일이 많다는 것이고,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나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바쁠수록 기도의 시간을 늘리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었던 ‘존 와나 메이커’는 그가 가진 백화점만 해도 160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안 바쁘면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하고, 바쁘면 두 시간씩 기도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 세 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공부와 직장 일로 바쁘십니까? 사업과 자녀교육 때문에 바쁘십니까? 바쁠수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찾으시기 바랍니다. 루디아는 사업을 하느라 바빴지만, 규칙적으로 기도했습니다.
3.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여자
셋째로, 그녀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여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하러 강가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루디아 일행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루디아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4절 하반절에서 “루디아라는 한 여자가 바울의 말을 청종하였다‘(개역개정판에서는 ‘따랐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루디아는 다른 여인들과 달랐습니다. 똑같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는데 다른 여인들은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반해, 루디아는 그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다같이 15절을 보겠습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자기 혼자만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결국 루디아의 온 가족이 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침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이 머물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내 놓았습니다. 당시에 바울 일행은 선교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두 다리 뻗고 잠잘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루디아는 바울 일행이 휴식도 취하고, 기도도 하고, 복음도 전할 수 있도록 자기 집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6장 40절 말씀을 보면, 바울 일행이 머물 수 있도록 내어준 그의 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풀려난 후 찾아간 곳이 다름 아닌 루디아의 집이었습니다. 루디아의 집은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는 장소였는데, 나중에는 그곳이 빌립보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와 아덴과 고린도 등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선교할 때 지속적으로 후원을 했습니다. 그 결과 사도 바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루디아라는 한 여인을 통해서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지고, 유럽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루디아는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빌립보 성을 복되게 하고, 마게도니아 지방과 아가야 지방과 유럽을 복되게 한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루디아를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루디아와 같은 축복의 통로를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지난주 주보에 언급한대로 지난주 수요일 저녁 한인장로교회에서 교민연합집회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집회여서 홍보가 부족해서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 집회는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예배>였습니다. 언뜻 들으면 뉴질랜드와 전혀 상관없는 예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국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우리가 사는 뉴질랜드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래 한국은 쇄국정책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소수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평양과 서울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1889년 33살의 ‘Joseph Henry Davies‘ 선교사가 호주 멜본에 있는 청년연합회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선교사로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한지 6개월 만에, 인천과 서울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폐렴에 걸려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아무 열매도 얻지 못하고 그가 희생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오히려 호주교회로 하여금 한국 선교를 계속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그래서 호주에서 한국선교를 위한 조직이 구성되고 수많은 헌금이 모여지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파송되었는데, 총 126명의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부산, 마산, 창녕, 진해, 등의 남부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Joseph Henry Davies‘ 한 사람을 통해 한국에 복음이 전해졌고, 그리고 그 복음은 저와 여러분들에게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호주 멜본에서 파송을 받았지만, 사실은 뉴질랜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북섬 왕가레이에서 9남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후, 4살 때 부모를 따라 멜본으로 이주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에 들어간 최초의 호주 선교사 ‘Joseph Henry Davies‘는 호주 사람이 아니라, 뉴질랜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얼마든지 호주에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커서는 멜본 대학을 졸업한 후 투락 칼리지 교사를 거쳐, 나중에 명문 사립학교가 된 코필드 그래머 스쿨을 설립한 후 7년 동안 교장으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는 좋은 가문의 아들로써, 존경받는 교장으로써 얼마든지 편안한 길을 갈 수 있었지만, 그 길을 멀리하고 한국에 선교사로 온 것입니다. 그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 젊음을 불살랐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Joseph Henry Davies‘와 같은 축복의 통로를 찾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빌립보 교회를 세우도록 자신의 집을 내놓았던 루디아,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던 루디아와 같은 축복의 통로를 찾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안에 ‘Joseph Henry Davies‘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원합니다. 루디아와 같이 돈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의 시시컬렁한 부자와 달리, 물질을 의미 있게 사용할 줄 아는 멋진 부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록펠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록펠러는 뛰어난 사업가로서 24살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33살에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고, 43살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53살에 점차 그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여 머리카락이 문어처럼 거의 다 빠져 버렸습니다. 소화도 안 되어 세계 최고의 갑부인 그가 하루에 우유 한 잔, 비스킷 몇 쪽밖에 못 먹고 불면증에 시달려 잠도 못자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연히 성경을 읽다가 누가복음 6장 38절을 보고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그는 이 성경을 읽고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을 반성하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아, 돈이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이 더 중요하구나.” 이렇게 깨달은 후로는 재단을 만들어 남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개발도상국가의 유능한 인재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장학금을 주며 공부를 시켰습니다. 이렇게 돈을 쓰다 보니 그 자신 스스로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건강도 회복했습니다. 53세에 다 죽게 될 지경에 놓였던 이 사람이 98세까지 살았습니다. 록펠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돈 잘 쓰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돈 잘 쓰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8절을 보니까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부자는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돈 잘 쓰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아직 돈을 벌지 않는 학생들이나 젊은 청년들은 돈 벌기 전에 먼저 돈 잘 쓰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돈이 없을지라도 미래를 바라보며 먼저 돈 잘 쓰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돈 잘 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결코 물질을 주시지 않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자녀가 돈 쓸 줄도 모르는데 자꾸 돈 달라고 할 때, 부모님들은 어떻게 합니까? 자녀에게 돈을 주겠습니까? 돈 쓸 줄 모르는 자녀에게 돈을 주면, 자녀가 망할 것이 뻔한 데 자녀에게 돈을 주겠습니까? 제대로 된 부모라면 함부로 자녀에게 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돈 쓰는 방법을 깨닫게 되면 그 때 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돈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돈 쓰는 방법을 위해 기도하시고, 돈 잘 쓰는 방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물질을 많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물질을 잘 사용하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재물이 생명을 살리고 교회를 부흥시키며, 인재를 키우는데 사용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재물의 청지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서 루디아처럼 돈 잘 쓰는 멋진 부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에서의 루디아 전도
김영규 목사
바울의 행로
오늘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본문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장면과, 유럽 최초로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전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0절부터 유명한 “우리”란 표현(‘we’ section)이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바울 일행에 포함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부터 바울 일행은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까지 기본적으로 총 네 명이 됩니다.
먼저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거쳐 간 중요한 경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11-12) 이 구절에 보면 바울이 거쳐 간 네 도시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드로아입니다. 드로아의 full name은 Alexandria Troas입니다. 드로아는 주전 4세기까지 그리스의 자유도시로 있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로마 식민지가 된 곳으로, 아시아와 마게도니아를 연결하는 아시아쪽의 관문입니다.(20:5)
둘째는 사모드라게입니다. 사모드라게는 드로아에서 네압볼리까지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에게해에 위치한 섬입니다. 해발 5000피트(약1500미터)에 이르는 산악으로 된 섬으로, 에게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경유지 겸 피난처입니다.
셋째는 네압볼리입니다. 네압볼리는 빌립보에서 16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빌립보의 외항입니다. 오늘날은 Kavalla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로마의 Egnatian Way(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육로로 잇는 로마의 도로)가 있었습니다. 이 길은 에게해 연안의 네압볼리로부터 시작하여 서쪽 아드리아 해 연안의 아볼로니아와 드라키움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드로아에서 네압볼리까지는 약 250km 정도 되는 거리인데, 이 거리를 단 이틀에 건너간 것은 대단한 순풍을 만났다는 뜻입니다. 20장 6절에 보면 역방향으로 네압볼리에서 드로아까지 닷새가 걸렸습니다. 닷새가 걸리는 거리를 이틀에 간 것은 아주 좋은 바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로 가기만 하면 가장 순탄한 길이 됩니다.
넷째는 빌립보입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마게도냐는 주전 4세기 경 빌립과 알렉산더 대왕 시대의 고향입니다. 빌립보의 본래 이름은 크레니데스(작은 우물)였는데, 주전 358년 알렉산더의 부친 빌립이 점령하고 자기 이름을 따라서 빌립보라 명명 했습니다. 빌립이 이 도시를 점령한 것은 이곳에 유명한 판게우스 산의 금광이 있었고, 또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주전 168년에 빌립보는 로마의 통치 아래로 편입되었고, 주전 42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후일 아우구스투스)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제압한 후에는 로마의 식민지로 만들고 많은 군 출신들을 이주시켰습니다. 주전 31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제압하고 또한 많은 이주민들을 이곳에 정착시켰습니다. 본문 12절에 보세요.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12) 여기 나오는 식민지(kolwniva)란 말은 오늘날 말하는 식민지하고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로마의 식민지(kolwniva)는 주로 로마인들이 이민하여 사는 지역으로, 자치권을 주고 로마법을 적용하고,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대부분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언급된 이 같은 로마의 식민지는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드로아, 고린도, 돌레마이 등이 있습니다.
누가는 빌립보를 마게도냐의 첫 성이라고 합니다. 당시 마게도냐 수도는 데살로니가였고, 암비볼리는 더 큰 도시였습니다. 그러면 첫 성이란 뜻은 뭘까요? 주전167년 푸드나 전투 이후 로마 원로원은 마게도냐를 네 개의 독립된 지역으로 분할했습니다. 아마 빌립보는 그 분할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라는 뜻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의 주관적 평가에 의해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첫째 도시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빌립보는 누가에게 각별한 인상을 준 도시였습니다.
누가는 빌립보에서 일어난 일 중에 특별히 세 가지를 기록했습니다. 첫째는 루디아를 전도한 일입니다.(본문) 둘째는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준 일입니다.(16:16-18) 셋째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을 구원한 일입니다.(16:19-34)
루디아의 회심
그러면 바울이 루디아를 전도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디서나 바울의 전도 전략은 동일합니다. 먼저 유대인에게 전도하고 나중에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순서입니다. 본문에도 그런 과정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유대인 회당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당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 남자 열 명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랍비 Halafta Ben Dosa의 가르침에 보면 어느 곳이든 유대인 남자 열 명이 살면 회당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100 명이 모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빌립보에 회당이 없는 것은 유대인 남자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기도처를 찾으려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빌립보에 인접한 Gangites라는 강입니다.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12)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13) 이 강가에 나갔다가 바울은 뜻밖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몇몇 여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주로 강가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모인 여자들은 유대인 여자들과 혹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알게 된 이방 여자들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렇게 모인 여인들에게 전도했습니다.
여기서 최초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바로 루디아입니다. 루디아는 여러 면에서 첫 번째 타이틀을 가진 여인입니다. 유럽 최초의 전도의 열매입니다. 유럽 최초로 사도 바울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유럽 최초로 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봤을 때는 남자가 손짓했는데 막상 처음 믿게 된 사람은 여자입니다. 마게도냐에서 여인이 처음 믿게 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마게도냐에서 여성의 위치는 상당했습니다. 개종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법률적으로도 부인의 요구로 한 일은 제재를 받지 않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경제 활동은 물론 개인 재산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비롯한 여인들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빌립보 교회에서 여성들은 많은 봉사를 했고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성경이 특별히 보장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빌립보 교회는 여성이 뛰어났던 교회입니다.
그러면 다시 루디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루디아(Ludiva :Lydia)란 이름은 고유명사인지, 아니면 루디아 출신 여자(the Lydian woman)란 뜻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성 출신입니다. 두아디라는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나오는 도시로 무시아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옛 Lydia 왕국에 속했던 곳입니다. 두아디라는 알렉산더 대왕 때에 그리스의 도시가 되었다가, 주전 190년 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카이코스와 헬머스 두 계곡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예부터 소아시아 염색 공업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purple dye (자주 염색) 천으로 유명했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특산물인 자주 색 옷감을 파는 여성 사업가로 부자였습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측되며, 사업을 하면서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루디아가 어떻게 유대인 여자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추측한다면 루디아가 두아디라 성에 살 때에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해 들었든지 아니면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해 듣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종교적으로 두아디라는 아폴로, 아테미스, 삼바다 등의 우상 숭배지로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계 2:20-21) 그런데도 그런 곳에서 자라난 루디아가 유일하신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게 된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루디아의 회심 과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복음을 듣고 경청했습니다. 복음을 듣는 것은 구원의 출발입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4-15,17) 보내심, 전파함, 들음, 믿음, 말씀의 중요한 단계들로 구원은 성취됩니다. 바울은 주님의 보내심을 받았고, 복음을 전했고, 루디아가 들었고, 믿었습니다. 둘째로,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첫째가 외적이고 인간적인 구원의 과정이라면 둘째는 내적이고 신적인 구원의 역사입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14) 말씀 경청과 성령의 역사가 연결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말씀은 성령의 역사로 심령에 전달되고 감화되고 결단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나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주님의 종 전파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로하여금 복음에 관심을 갖고 경청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마음을 열고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알게 하셨고, 믿고 결단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루디아가 받은 특별한 축복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루디아가 받은 특별한 축복입니다. 누구나 예수 믿고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얻지는 못하는 특별한 은총이 루디아에게 주어졌습니다. 무엇일까요?
1. 온 집안이 다 믿고 세례를 받은 일입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15) 가족 구원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사도행전에는 가족 구원을 이룬 사람들이 몇 차례 언급됩니다. 고넬료 가족(10:48), 루디아 가족(본문), 빌립보 간수장 가족(16:33), 고린도의 회당장 그리스보 가족(18:8) 등. 본문은 유아세례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노인에서 어린아이까지, 남자와 여자, 자유인과 노예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가 되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 나의 집안이 이렇게 다 구원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 구원을 위해서, 집안, 가문의 구원을 위해서, 목표를 두고 기도하고 전도하세요. 그래서 필경은 가족 구원 가문 구원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즉각적인 봉사와 섬김입니다.
누구나 예수 믿는 것이 아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누구나 다 봉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봉사하는 사람은 더 복된 사람입니다. 루디아는 믿은 즉시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루디아가 유럽 최초로 교회 역사에 세운 신기록입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15) 신앙의 확증은 이웃을 향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내 집에 들어와 유숙하십시오. 인사치례가 아닙니다. 강권하여 집으로 모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유럽 최초의 교회가 빌립보에서 루디아의 집에 세워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초대교회는 대개 개인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12:1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에베소의 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고전16:19) 라오디게아의 눔바의 집(골4:15), 골로새의 빌레몬의 집(몬2) 등이 다 개인 집에서 시작된 교회들입니다. 개인 집에서 교회가 시작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는 가족과 같은 공동체입니다. 결코 잘 짜여진 기업체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고도의 경영 기법으로 대형 유통업체처럼 운영됩니다. 전도는 마케팅이고 지체들은 비즈니스 팀으로 움직여집니다. 직분자들은 조직의 파수자들이고 지체간의 유대 관계는 별로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가 연결된 기본 정신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루디아의 섬김에서 빌립보 교회만의 좋은 전통이 세워졌습니다. 뭘까요? 빌립보서를 보세요.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5-19) 사도를 돕고 사역자를 돕는 전통입니다. 기꺼이 헌금하는 헌금의 전통입니다. 남에게 나눠주는 “주는 교회”의 전통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지속적으로 바울의 전도 사역을 도왔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로마 감옥에 있을 때까지, 시종 사도를 돕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정윤교회도 개척 초기부터 돕는 교회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도울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는 자는 항상 주는 축복을 받습니다. 받는 자는 항상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위축되고, 소극적이 됩니다. 루디아는 비즈니스 우먼입니다. 여성 사업가입니다. 돈 벌어서 뭐 합니까? 나중에 자식들에게 주려고 하십니까? 재산 잘 못 모아 놓으면 자식들끼리 싸우고, 못 된 자식은 부모 빨리 돌아가시라고 고사 지냅니다. 루디아는 주님을 믿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돈 버는 목적이 생겼어요. 주님 나라를 위해 쓰는 겁니다. 사업에도 목표가 없으면 허무합니다. 돈만 있으면 뭐합니까? 보람 있게 쓸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세상 부자들 보세요. 돈을 산더미처럼 벌어도 별 행복이 없어요. 그래서 번 돈으로 정치에 뛰어듭니다. 정치는 행복을 주나요. 진정한 행복은 돈을 모으는 데서 오지 않고, 돈을 보람 있게 쓰는 데서 옵니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쓰는 것이 행복합니다. 남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은 더 행복합니다. 루디아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 루디아처럼 행복한 부자, 행복한 사업가가 되시기 바랍니다. 돈 벌어 쓸 곳을 찾는 행복한 부자, 행복한 봉사자가 되세요.
본받을 만한 신앙
변영익 목사
여러분 ! 요즈음은 사람들이 두 세 명만 모이면 대화의 내용이 미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경제 이야기가 아니라 심각한 생존의 문제를 나누는 대화인 것입니다. 즉 장사하는 사람들은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수준을 넘어서 몇 달이나 더 버틸 수 있겠는가를 이야기 합니다. 정말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 !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가 망한 것은 경제적 불경기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넉넉한 가운데 타락하고 부패하여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므로 낭떨어지기로 떨어져 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 기독교 역사를 볼 때 복음이 흥황하던 저 유럽의 국가들은 모두 한때 하나님의 축복으로 넉넉함과 호화를 누리며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넉넉함을 인하여 죄 짖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될 때 그들의 영화는 모두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 여러분 ! 며칠 전에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그의 연설에서 말하기를 미국은 지금 심각한 질병에 걸려있다, 만일 빨리 치료를 받지 않으면 미국은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정말 오늘 미국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상의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니! 미국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느냐, 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여러분 !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미국이 과거 유럽의 국가들이 누렸던 세계적으로 넉넉함과 부를 누리며 살았는데 그것은 이 미국이 그 조상들의 청교도 신앙으로 살려고 할 때 받았던 하나님의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아졌는데 이 미국에서 넉넉함이 떠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로마와 같이 넉넉함으로 죄를 짖고 넉넉함으로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여러분 ! 미국이 다시 넉넉해지고, 미국이 다시 세계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살기좋은 나라가 되려면 경기부양 금으로 8천 9천억을 푸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다시 하나님과 가까워지며 이 미국의 조상들인 청교도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 이것은 단순히 목사가 하는 신앙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가 말하고 있고,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 미국을 보는 정확한 눈이라는 것입니다.
= 여러분 ! 하나님은 오늘 이 어려운 때를 살아가는 나와 여러분에게 본 받을만한 신앙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빌립보에 사는 자주장사 루디아라고 하는 한 여인입니다. 여러분 ! 이 빌립보는 로마에 식민지로 있는 도시이며 바울과 실라가 제2차전도 여행으로 처음 도착한 곳입니다.
= 바울은 빌립보에 도착하여 기도처를 찾기 위하여 강가를 거닐다가 강가에 모여 앉아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인들을 만나서 기도처를 묻는 가운데 인연이 되어서 루디아를 만나게 되었고 또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된 예배가 빌립보 교회를 탄생시키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되었습니다.
= 여러분 ! 오늘 본문은 자주장사인 루디아를 우리가 이 시대에 본받아야 할 신앙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 루디아는 ....
1, 생업으로 섬기는 자.
= 여러분 ! 본문 (14절)에 보면 <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 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 루디아는 여자요, 그의 직업은 자주장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주 장사라는 직업은 자주색 옷감과 물감을 팔아 돈을 버는 장사라고 합니다.
=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에 루디아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으로서 이 자주장사로 많은 돈을 버는 여성 CEO 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옷감이나 물감이 매우 귀한 때이므로 사치와 부를 누리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물건이므로 루디아는 많은 돈을 벌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 ! 오늘날도 돈 버는 사람들을 보면 부지런하고 근면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상한 아이디어로 하나로 엄청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대는 물이 날 때 까지 한곳을 파는 근면성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번득이는 지혜로 빨리 수도꼭지가 어디인지를 찾는 자가 물을 더 빨리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 저는 지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루디아가 번득이는 지혜가 있어서 자주옷과 물감을 팔므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루디아 에게서 본받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는 자주 옷을 팔고 물감을 팔아 하나님을 공경하는 본받을만한 신앙인 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많은 돈을 벌게 된 것은 그의 번득이는 지혜와 근면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돈을 벌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 요즈음 한국의 연예인들 중에는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연예활동을 하는 젊은 연예인들이 있어서 훈훈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떤 연예인은 자기 혼자서 100명도 더 되는 아프리카에 불쌍한 어린아이들을 후원하는 연예인도 있고 가수 김장훈 같은 사람은( 자기는 남을 돕는 것이 너무 좋아서 노래를 한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노래를 하니까 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며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 여러분 ! 루디아에게서 본받을 만한 신앙이 무엇입니까 ? 그는 돈을 벌되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돈을 벌므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가 망한 것은 불경기 때문이 아니였습니다. 그들이 넉넉할 때 그 넉넉함으로 하나님을 공경한 것이 아니라. 자기 향락에 빠지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질 때 로마는 말하게 된 것입니다.
= 여러분 ! 이 미국이 다시 넉넉해지려면, 또 나와 여러분의 가정이, 사업이 다시 넉넉해지려면 루디아의 신앙을 본받아 오늘부터 돈을 버는 목적을 바꾸셔서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기를 원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루디아에게 주셨던 넉넉함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루디아의 본받을만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말씀을 청종하는 자.
= 본문(14절하)에 보면 <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 ! 본문에서 주께서 그 마음을 열었다는 것은 그가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셨다, 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즉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심각하게 들을 때 성령께서 그 마음의 문을 열어 은혜 받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 여러분 ! 지난번 한국 국회에서는 국회 본 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 햄머로 문을 부수고 또 안에서는 소화기로 쏴 대는 난장판이 있었습니다. 정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망신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소학교 학생들만 못하고 신사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깡패들의 행동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욕을 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 ! 제가 하는 이야기는 정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성령님은 문을 부수고 들어 갈 수 있는 능력과 힘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 하나님은 인격자시며 또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 분이시므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스스로 문을 열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 (계3:20)에 보면 < 볼 찌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즉 이 말씀은 누구든지 말씀이 들려질 때에 그 말씀을 청종하게 되면 성령께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하여 성령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시므로 나에게 큰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 여러분 ! (롬10:17)에 보면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루디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 루디아는 아주 작고 평범한 장사꾼 여인 이었지만 그가 장사한 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므로 큰 은혜를 받아 빌립보 교회에 창립멤버가 되었고, 온 유럽을 복음화 하는데 역사적 인물이 된 것입니다.
= 여러분 ! 루디아에게서 본 받을만한 신앙이 무엇입니까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설교로만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하며, 지나가는 말로만 듣지 말고 루디아와 같이 말씀을 경청하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좋아하시며, 하나님은 그런 자의 속에 들어가셔서 그에게 큰 은혜와 축복주시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은 마지막 세 번째로 루디아의 본 받을만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3, 주의 종을 대접하는 자.
= 본문(15절)에 보면 루디아가 바울에게 큰 은혜를 받더니 루디아가 바울에게 극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 고 했습니다.
= 여러분 ! 루디아가 바울에게 은혜를 받더니 그의 온 가족이 모두 바울에게 세례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루디아는 이제 온 가족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루디아는 말하기를 < 만일 나를 주를 믿는 자로 알거든 내집에 들어와 유하라 >고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곧 나는 이제 당신과 남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으므로 나를 남으로 여기지 말고 우리집에 들어와 유하시라는 말씀입니다.
= 여러분 !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오는데 그중에 하나는 주의 종이 귀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루디아와 같이 존경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대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 루디아가 바울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인 것은 단순한 대접이 아닙니다. 루디아가 바울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임으로 루디아의 집은 보통 사람들의 집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가 되었으며 유럽의 첫 번째 교회가 탄생된 집이 된 것입니다.
= 여러분 ! 만일 루디아가 바울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모시는 일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면 아마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의 집이 아니라 다른 집이 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므로 그가 역사적인 인물로 축복을 받은 것은 주의 종을 귀하게 여기며 대접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축복이 돌아갔다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 ! 루디아의 세 가지 본받을만한 신앙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업을 자신의 영화의 도구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를 본받을 신앙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다가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그는 주의 종을 대접하므로 온 집안이 구원을 받고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 여러분께서도 오늘의 말씀과 같이 생업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며, 말씀을 청종하고 루디아와 같이 큰 은혜를 받으며, 또 주의 종을 귀하게 여기며 대접하시므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으시는 역사적 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