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89]‘애먼’ 중국-일본인 겨냥한 인터넷 바둑
바둑은 소싯적부터 나의 오랜 취미(趣味)였다. ‘아마추어 바둑의 꽃’이라는 3급은 되니 바둑이 무엇인지는 안다 할 수 있다. 고향집 리모델링을 할 때 신경쓴 것이 본채 앞 툇마루였다. 툇마루에서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면서 막걸리잔을 기울리는 게 버킷리스트였다고 할까. 뜻맞은 친구와의 수담(手談.바둑)은 얼마나 고상한 취미인가. 그런데 바둑을 두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 도시에도 기원(棋院)을 찾기 어렵다. 심심하다. 슬픈 일이다. 그래서 인터넷바둑을 둔다. 근 30년 전이었을 것이다. 아이디가 ‘관전전문’인 친구를 바둑을 두면서 사귀었던 것도. 까마득히 잊어먹은 그 친구가 <인간극장 2>를 보고 전화를 해왔다. 참,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첫 번째 직장(동아일보)을 다니며 인근 기원이나 동료들하고 바둑을 둘 때, 나의 별명이 ‘광화문 겐까도리 3급’(일본어로 투계鬪鷄, 즉 싸움닭을 말한다)이었다. 몇 수(數)앞을 내다봐야 하는 싸움바둑을 즐겼기 때문이다. 무슨 한맺힌 사람처럼, 무조건 끊고 막고 상대방 돌을 잡아먹기에 그야말로 혈안(血眼)이 돼 있었다. 신선들이 즐기는 점잖은 마인드스포츠(뇌담腦談)를 사생결투하듯 두는 바둑은 잘못 배운 탓으로 나쁜 버릇이다. ‘무조건’이라고 하지만, 대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몇 수 앞’은 본다는 자신이 있지만, 고수(高手)나 상수(上手)을 만나면 번번이 개작살난다. 불계선언 아니면 대승이다. 수계산이 하기 싫은 까닭이다. 하수(下手)하고도 대패(大敗)할 때가 많다.
오늘 새벽 4시부터 글을 쓸까하다가 인터넷바둑을 뒀다. 지금까지 전전은 4757판 승리, 4636판 패배. 이제껏 1만국에 조금 못미치는 9393국을 둔 것이다. 한때 컨디션이 좋을 때는 <오로바둑>에서 아마6단도 됐지만, 금세 5단으로 미끄러지고 만다. 아무튼, 1만대국이 될 때는 나홀로 자축이라도 할 생각이다. 얼마 전부터는 대국 대기자 ID 옆에 국기(國旗) 표시가 돼있는 것을 알았다. 하여, 무조건 일본인에게 먼저 신청한다. 호승심(好勝心)이 발동한 때문이다. 한일전(韓日戰) 구기종목에서 일본에게 지면 유난히 더 기분이 더럽던 기억이 많이 있을 터. 나도 마찬가지로, 상대가 일본인이라면 기를 쓰고 이기려 한다. 일본인 신청자가 없으면 중국인에게 도전한다. 이제는 국내 동포들과는 두지 않을 생각이다. 별 것도 아니지만, 바둑이라도 이기면 ‘약소국의 비애’를 조금은 가라앉힌다고나 할까.
킬링 타임, 시간 보내기는 최고다. 밤을 꼬박 새운 적도 많다. 나는 아주 빨리 둔다. 속기(速棋)다. 상대방이 나의 속도를 따라온다면 그만큼 승률(勝率)이 높다. 그만큼 머리가 좋다는 얘기일까? 그것은 아니다. 멍청한 머리로 생각한다해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둔다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나의 스타일을 두고 ‘논두럭 깡패 바둑’이라고 한다. 별별 조폭들도 많았지만, 논두럭 깡패에게 제대로 걸리면 죽는다. 그들은 무서운 것 하나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날카로운 농기계, 예를 들면 쇠스랑, 조선낫 등을 갖고 덤비니 그들을 만나면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 바둑을 지면 만신창이로 기분은 나쁘지만 다행히 육체적으로 손해볼 것은 없다. 좀 침착하게 둘 필요가 있는데, 나는 스트레스를 속기바둑, 쌈바둑으로 푸는 것같아 자주 반성도 한다.
지근지근 밟아대는 상대방의 기분도 고려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반대의 경우, 지근지근 밟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온다. 스트레스를 풀려다 되레 쌓일대로 쌓여 식식대기 일쑤다. 악취미(惡趣味)이다. 그쯤 되면 같은 급수라도 금세 치수가 고쳐져 2개, 3개 접바둑을 둬도 진다. 마인트 컨트롤이 안된 까닭이다. 마음 수양이 안된 탓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기도(棋道)라고 했을 터. 이제는 AI바둑시대이니, 우리같은 하수가 무엇을 안다고 바둑을 운운할 것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늘도 인터넷바둑을 둘 것이다. 수많은 대기자중 일장기와 오성기가 앞에 표시된 상대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우리 국가의 명예를 걸고 “한 판 때리자” 도전한다. 하지만 국가 체면이 있으니 기본 에티켓은 지켜야 한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9로(路)의 세계, 바둑 삼매경(三昧境)에 빠진다. 좋은 취미인지 나쁜 취미인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한 권 더 읽으면 교양과 지식이라도 쌓이련만.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손자도 말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그러니 흥분하지 말고(Calm down) 침착하게 한 수 한 수 뇌를 써가며 수담을 나누자. 놀러오라.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