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10%의 표면의식으로서,
오관을 통해서 판단하기 때문에,
차원이 다른 세계를 아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현상계는,
물질과 생명이 불이일체(不二一體)의 세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물질적 현상계는,
열, 빛, 전자력, 중력의 에너지 입자가 집중된 질량과,
분산된 공간으로 된, 에너지의 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다.
실재계,
즉 천상계에는, 의식이 90%나 표면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100%)해득되어 버린다.
그런 만큼 실재계에 있어서는,
‘수행’이라고 하는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육체주(肉體舟)를 타고 나면,
장님같은 의식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마음속을 알려주는 일이 적고,
스스로의 마음세계에서, 올바르게 판단하여 행동을 해야한다.
따라서 우리들의 혼의 수행 장소로서는,
실재계에 비해서,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차원이 다른 세계로부터 오는 통신을,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 따라서는 수신할 수도 있으나,
보통은 대단히 곤란하다.
그것은 이 현상계라고 하는 3차원의 장(場)에서 보면 명확할 것이다.
거울이나 스크린 속의 사람에게,
우리들이 통신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다.
2차원의 세계이므로, 3차원의 현상계에서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역으로, 4차원의 세계에서 이 현상계를 보는 것은 쉽게 되지만,
현상계에서 직접 통신하는 것은,
3차원의 영위기가 정묘하게 되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 할 수 있다.
영화 스크린과 대화하는 길은,
필름이나 토오키에 취입하는 방법이외에는 불가능하다.
저 세상과 이 세상과는,
이와 같이 먼 곳이기도 하고,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의식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현상계에는, 우리의 육체주(肉體舟)를 보존할 수 있는, 환경의 일체가 제공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마음, 곧 자비와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환경에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 감사의 마음을,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로서 보답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결국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생활이 가능하다면,
족(足)함을 알고, 남는 여분은, 사람들을 위하여,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로서 나타내어야 하는 것이다.
혼의 향상은,
마음의 평안이며,
객관적으로는, 집착이 적은 정신 상태이다.
마음의 평안은 조화이고,
조화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이 지상은, 평화로운 유토피아로, 정묘화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저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해보면,
저 세상, 곧 내세(來世)란,
어차피 우리가 육체주(肉體舟)를 버리고, 광자체(光子體)로 되어 돌아가는 세계이다.
우리의 지금의 육체주는,
부모의 연(緣)에 의해서 주어진 원자세포의 육체이다.
그리고 이 원자세포로 된 육체주를,
감싸듯이 광자체(=영)가 있고,
광자체(=영)에 우리의 의식, 즉 혼이 있어서, 육체주를 지배하고 있다.
원자체(原子體), 광자체(光子體), 영자체(靈子體;혼의 중심인 마음)의 삼체(三體)가
하나로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생명체인 것이다.
원자체(=육체)와 광자체(=영), 영자체(=혼)는,
영자선(靈子線)이라고 하는 선으로써 이어져 있다.
죽음은, 원자체와의 결별인데,
영자선이 끊어져 버렸을 때이고.
영자체(=혼)는, 광자체(=영)라고 하는 배를 타고
차원이 다른 저 세상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광자체나 영자체는,
우리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으나
마음이 조화된 사람들의 심안에 의하면,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본연의 자세를 파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반성하는 일도 아주 어려운 것이다.
천국에서의 생활은,
이세상의 생활에 비해서 기쁨에 찬 것이고, 반성의 정도가 빠르다.
악(惡)의 부조화한 상념에,
자기의 마음을 더럽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옥에 떨어지면, 의식의 파동이 어두워,
상념은 사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즉시, 악의 부조화한 상념이 자기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곳은, 좀체로 반성할 겨를도 주어지지 않는 세계이며
스스로의 마음이, 신의 빛을 가로막고 있다.
만약 그곳에 떨어진다면 몇백 년이고 같은 장소에서,
괴로움으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지상에서의 생활을,
어떤 사람이, 자아아욕, 그대로 인생을 마쳤다고 하자.
그 사람은, 틀림없이 지옥계로 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연속된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그 사람이 지상에서의 생활을 욕심대로 살다가 마치면,
그 의식을 가진 그대로, 저 세상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배를 타고 있는 동안에는,
좀체로 본연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육체의 배에서 떠나면, 의식의 파동은 민감하게 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즉시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러기에 살아 있을 때보다, 그 반성은 훨씬 더 어렵고 준엄하다.
(부연 설명 ;
육체를 갖고 있는 동안에는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려면,
무거운 몸을 써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 은 동작으로 나타내는 중이라도
잘잘못을 다시 생각할 여유가 있어서,
하다가도 중지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육신이 없는 영의 세계에서는
생각이 즉시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잘잘못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육신의 세계에서는 생각 ≠ 행동
영의 세계에서는 생각 = 행동 )
P36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