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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츄리안 캔디데이트
원제 : The Manchurian Candidate
케이블 TV 방영제 : 그림자 없는 저격자
감독 : 존 프랑켄하이머
원작 ; 리처드 콘든
출연 : 프랭크 시나트라, 로렌스 하비, 자넷 리
안젤라 랜스베리, 헨리 실바, 제임스 그레고리
레슬리 패리쉬, 존 맥가이버, 제임스 에드워즈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은 미국 영화계에 1960년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적 감독이었습니다. TV 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27세의 나이인 1957년 '젊은 이방인' 으로 극장용 장편 극영화에 데뷔흘 했고 60년대에 정말 놀라운 수준의 영화들을 연달아 감독했습니다. '알카트라즈의 조류가(61)' '맨츄리안 캔디데이트(62)' '5월의 7일간(64)' '대열차 작전(64)' '세컨즈(66)' 이렇게 60년대에 발표한 5편, 그의 나이 31세 부터 36세 사이에 이루어낸 성과는 정말 놀랍습니다. 이 5편의 영화는 모두 무거운 사회물이고, 흑백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이름 높은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했고, 30대 초반의 이 젊은 감독은 이런 이름 높은 유명 배우들을 잘 활용하여 뛰어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버트 랭커스터는 '알카트라즈의 조류가'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의 안젤라 랜스베리는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5월의 7일간'의 에드먼드 오브라이언은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30대의 젊은 감독이 흑백영화를 고집하면서 다소 딱딱한 사회물을 만들었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배우들을 잘 활용한 것입니다. 감독으로서의 초기의 성과만 따진다면 지금쯤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윌리암 와일러, 존 포드 급의 인물이 되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참 알 수 없는게, 이렇게 30대 초충반 나이의 천재 감독으로서의 성과를 보인 그는 36세에 연출한 '그랑프리' 부터 다소 영화가 평범해지더니 그저그런 70년대를 보내며 빨리 잊혀졌습니다. 그가 90년대에 연출한 '지옥의 일요일(91)' 이나 '닥터 모로의 D.N.A(96)' 를 보면 안스러울 정도지요. 나이가 들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우디 알렌, 리들리 스콧 처럼 무르익어 가는 연출가가 있다면 조기 쇠락하는 인물이 있는 것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70년대에 연출한 작품들과 존 프랑켄하이머의 초기 5편의 수준을 비교해보면 완전 존 프랑켄하이머의 압승인데.....
오늘은 존 프랑켄하이머의 초기 걸작 5편 중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기 걸작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의 평생 최고 걸작 5편이 그 작품들이죠. 평생 30편 넘게 연출한 감독의 제일 잘 만든 5편이 초기 60년대 연속되는 5편이라니 참......
1952년 6.25 전쟁 당시 한국 술집을
구성한 모습
비호감 넘치는 한국인으로 등장한
헨리 실바(오른쪽)
영웅이 되어 귀국하여 환영을 받는 레이몬드
하지만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다.
지치고 상처 받은 참전군인을 여기한
프랭크 시나트라
'맨츄리안 캔디데이트'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할 1001편의 영화' 에도 포함되어 있고, 다수의 평단에서 꽤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그럴 만한 요소가 있지요. 우선 칼라영화가 보편화된 60년대였지만 '흑백' 영화이고, 사회물이고 유명 배우가 나오는데 그럼에도 한동안 거의 안 알려진 영화입니다. 덜 알려진 이유가 프랭크 시나트라가 판권을 인수한 이후 관련 문제로 인하여 거의 공개가 중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거의 묶여있었지요. 우리나라에는 당연히 개봉이 안되었는데 우선 한국전쟁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게 다루어졌고, 한국인 역을 한 헨리 실바의 이미지도 비호감이었고, 공산당이 거론되지만 당시 투철한 반공국가였던 우리나라에서 바라는 내용은 아니었고, 더구나 근친상간, 패륜 같은 내용이 나오는 '무거운 사회물'이니 절대 개봉될 리가 없지요. 존 프랑켄하이머의 5대 걸작 중 우리나라에 개봉된 영화는 '대열차 작전' 1편 뿐입니다. 그 5편 외 영화 중 그나마 나은 편인 '디제스타' 도 아주 우여곡절 끝에 개봉되었지요. 60-70년대 우리나라는 유명 스타가 나와도 '딱딱한 사회물'은 상영하기 어려웠지요. 이런 비주류 감독의 덜 알려진 작품이니 평단에서 끌어올리기 딱 좋은 영화였습니다.
아무튼 평단에서 꽤 호평받고 있는 작품인 이 영화를 저는 좀 다르게 들여다봅니다. 논란이 된 소설의 영향인지 좀 과대평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영화 이후 계속 몇 편의 걸작을 연달아 내놓은 감독에 대한 영향도 있었다고 보여지고요. 지금 수평적으로 그의 이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몇 가지 결정적 문제도 보이고요.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럭셔리한 꿈 장면의 묘사가 특징
걸려 있는 사진만 봐도 우리나라에
개봉하기 딱 어려운 영화.
암살자로 조종 당하는 레이몬드
자넷 리와 프랭크 시나트라가 만나는 장면은
로맨스 코미디 영화에서 조차 무리한 설정이라고
느껴지는 다분히 남자 입장에서 '비현실적이고
판타스틱한' 장면. 그래서 자넷 리의 캐릭터에
뭔가 부여되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냥
흐지부지 되어 버린다.
잭 팔란스의 뒤를 잇는 악역 배우로 개성을 보인
헨리 실바, 아주 비호감 넘치는 한국인 역할이다.
(당연히 전혀 한국인처럼 안 보임)
이 캐릭터도 아쉽게도 중반 이후 활용되지 못한다.
헨리 실바와의 긴 격투장면을 찍다가
손가락이 부러져서 오래 고생했다는 프랭크 시나트라
액션영화도 아닌데 왜 이리 격투씬이 길었을까?
어머니와 애인에 대한 레이몬드의 고통스런 고백
결론적으로 뭔 얘기인가 하면 뭔가에 세뇌된 레이몬드가 무의식중에 어떤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면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내용인데, 그가 그런 상황이 된 원인이 한국전쟁에서의 체포된 오프닝 장면과 연관이 있고, 그를 몰래 조종하는 배후는 바로 그의 사악한 어머니 엘레노어 였습니다. 제목 '맨츄리안 캔디데이트'는 직역하면 만주인 후보자 이지만 '조종 당하는 꼭두각시'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평소 멀쩡하던 레이몬드는 포커 게임용 카드의 다이아몬드 퀸 만 보면 정신이 이상해집니다.
자 그럼 이 정도 이야기에서 이 모호하고 심오하고 깊이있는 걸작으로 칭송받은 이 영화의 결정적 단점들이 하나하나 드러납니다. 우선 레이몬드를 완전한 주인공으로 써먹어야 하는 영화에서 불필요하게 마코에게 더 많은 비중을 할당하면서 영화가 엇나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마코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지니는 자넷 리 라는 유명 배우를 캐스팅했지만 거의 없어도 되는 캐릭터로 낭비됩니다. 인상적인 비호감 악역인 헨리 실바는 초반부에만 잘 활용되고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어 버립니다. 이 개성파 배우를 말이죠. 더구나 그는 전혀 한국인 같지 않습니다. (당시에 그런 190cm에 가까운 한국인이 있었을 리도 없고) 아무리 아내에게 조종당하는 무능한 정치인이지만 엘레노어의 남편 역은 마치 술취해서 횡설수설하는 사람처럼 연기를 합니다. 액션 영화도 아닌데 프랭크 시나트라와 헨리 실바의 격투 장면이 너무 쌩뚱맞고 길어요. 그리고 이건 당시의 검열 문제도 있었겠지만 소설에서는 베드씬까지 나왔다는 엘레노어와 레이몬드의 근친 장면은 아쉽게도 생략되었습니다. 물론 둘이 키스하는 장면 정도로 타협하고 있습니다. 그냥 아들에게 엄마가 키스하는 자연스런 장면으로 연출하지만 볼이 아닌 입에 대고 하지요.(약간은 검열 문제에 대한 존 프랑켄하이머의 시위적 연출 같이 느껴집니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프랭크 시나트라
로렌스 하비)의 공통점은 곤란한 상황을 겪을 때
알아서 미녀가 앞에 나타나서 도와주고
애인이 된다. 비현실적 남성적 판타지.
엄마에 의해 암살자로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레이몬드
레이몬드를 조종하는 도구가 되는 다이아몬드 퀸
이 장면에서 두 사람간의 불길한 미래가 감지된다.
참 사랑스런 모습의 세련된 30대 미인의
모습으로 등장한 자넷 리 였지만
첫 등장 시의 예상과 달리 버려진 캐릭터가 된게 아쉽다.
결정적으로 영화가 지금 시점에 와닿지 않는 부분은 세뇌당하여 조종되는 원인인데 이건 뭐 특급 최면술도 아니고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 영화의 장르를 'SF 판타지' 로 정의한다면 이해가 되요. 그런데 '드라마' '스릴러' 장르로 한정해 놓고 이런 비현실적 세뇌를 다루었는데 걸작이라고 하는 건 모순입니다. 더구나 과학기술이 훨씬 지금보다 낙후된 60년대 영화였는데. 2004년 리메이크 된 영화에서는 아마도 의도적으로 이런 단점들을 보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악몽을 꾸는 레이몬드나 마코의 세뇌를 그들 머리에 칩을 넣은 것으로 합리화를 시켰고, 아무 역할도 없었던 유지니는 김시자 캐릭터로 설정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2004년 영화가 걸작으로 칭송받은 건 아니지만 최소한도의 모순은 보완한 셈이죠. 아무리 강력한 세뇌나 최면을 건다고 해도 다이아몬드 퀸을 보고 지시자의 명령만 받으면 최첨단 알파고처럼 정확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하다뇨. 이런 건 전문 SF 영화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는 황당한 설정이지요.
즉 냉정히 말하면 이야기 구조의 설정상 상당한 단점을 가진 영화지만 세련된 화면과 매카시즘 광풍에 대한 은연중의 조롱, 물 흐르듯 풀어나간 장면들 등 장점도 많은 영화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캐릭터의 제대로 된 활용은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일본 개봉제와 우리나라 케이블 방영제는 '그림자 없는 저격자' 인데 이 제목도 상당히 어울립니다. 적어도 오역인 '만주인 후보자' 보다는 훨씬 낫지요.
소설에서는 세뇌된 아들과 베드씬까지 갖는 근친적
내용이 노골적으로 나온다지만
검열 문제인지 키스하는 장면으로 타협했다.
키스 장면도 오른속으로 가리는 연출을 한다.
모녀로 나왔지만 안젤라 랜스베리의 실제 나이는
로렌스 하비 보다 불과 3살 많을 뿐.
화면의 구도나 흐름, 장면의 세련됨 등 멋지고 근사한 연출의 바탕하에 상황 설정에 대한 타당함과 구성은 많이 빈약한 영화입니다. 최소한 세뇌되어 행동하는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는 좀 더 설득력이 필요했고, 각색을 많이 하더라도 유지니나 마코에 대한 캐릭터에는 좀 더 의미가 부여되어야 했습니다. 유지니 캐릭터에 대해서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그냥 흐지부지 된거라고 합니다. 마코 역시 레이몬드에 대한 관찰자 이상의 역할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가장 재미난 캐릭터는 안젤라 랜스베리가 연기한 엘레노어 역인데 거의 장희빈을 능가하는 악녀지요. 실제로는 무능한 정치이인 남편을 쥐고 흔들며 영부인의 꿈까지 꾸고(말이 영부인인지 실제로는 대통령을 조종하는 실세), 아들을 세뇌된 암살범으로 훈련 시켜서 써먹고,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인물은 모두 공산당으로 치부하고(이건 명백히 매카시즘 광풍에 대한 조롱이지요) 당시 아직 37세 밖에 안된 안젤라 랜스베리가 50대 여성 역을 자연스럽게 해냅니다. 그녀의 아들이자 주인공인 레이몬드 역의 로렌스 하비는 딱딱해 보이는 외모라서 세뇌되어 무감정한 연기에 딱 맞더군요. 프랭크 시나트라와 자넷 리는 앞서도 말했듯이 그냥 낭비된 느낌이고요. 다만 자넷 리는 30대 중반 여성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긴 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 토니 커티스와 이혼이 진행중이라서 그런지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로맨스 연기가 더욱 적극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열차 안에서 불안정한 모습으로 안절부절 하는 남자에게 이런 미모의 여인이 갑자기 접근하여 친절을 베풀고 나중에 애인까지 된다는 건 의도적인 접근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유지니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 못한 게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헨리 실바는 예의 그 사악한 모습을 참 잘 활용했는데 왜 중간부분 부터 쏙 빠졌는지 모르겠고.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저는 존 프랑켄하이머의 60년대 5대 걸작중 이 영화를 가장 아래로 평가합니다. 나머지 4편은 정말 '거장'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싹수가 보인 대단한 영화였지요. 워낙 그 4편이 강렬해서 상대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 덜 감흥이 온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명백히 단점이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절대적인 찬양만 할 영화는 분명 아닙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이 영화는 공중파 방영도 될 수 없는 내용인데 만약 방영이 되려면 마지막의 패륜 장면이 삭제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엄마와 아들' 인데. 더구나 그 장면은 세뇌의 영향도 아닌 제정신으로 행한 내용이라서 더욱 그렇죠.
ps2 : 원작자이 리처드 콘든은 '프리지스 오너'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ps3 : 대통령 후보 암살 계획을 다룬 내용인데 프레드 진네만의 '자칼의 날' 에서 좀 비슷한 설정이 보여지지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이 영화 공개 후 1년뒤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참 아이러니한 영화가 되어 버렸어요.
ps4 : 자넷 리의 유지니 캐릭터는 프랭크 시나트라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자기 전화번호와 주소를 마치 암기시키 듯 대뇌이고 있습니다. 분명 의도적으로 역할이 부여된 캐릭터이고 장면인데 나중에 무슨 이유인지 흐지부지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도 재촬영 되거나 했어야 하는데 이런 언밸런스한 부분에 대한 냉정한 '혹평'이 이루어지지 않고 호평 일색으로만 평가되는 건 분명 모순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문란한 여자라도, 그리고 아무리 설령 첫눈에 쏙 받했다고 억지 설정을 부여하더라도 (담배에 불도 제대로 못 붙이는 왜소한 중년 남자에게 첫 눈에 반하는 세련된 미인은 없겠지만) 열차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강제로 주입 시키듯 자기 집 주소와 전번을 외우게 강요하는 여자가 있을리가 없죠. 더구나 그 남자에게 첫 연락을 받은게 난동을 피운 뒤 부상을 입고 경찰에 연행되어 연락한 상황인데 너무 반가워하고 애인이 되어 준다니... 이건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도 불가능한 설정입니다. 남자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판타스틱한 로맨스 구성이지요. 주요 캐릭터 몇을 활용 못하고 낭비한 설정이 버젓이 나오는 영화를 무조건 걸작이라고 칭송하는 평단도 문제라고 봅니다. 영화속 로렌스 하비처럼 세뇌된거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이 영화게 제대로 집중적이고 압축적인 걸작이 되려면 엘레노어 캐릭터를 주연급으로 높이고 마코의 캐릭터를 줄였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