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맣 / 박소미
심상숙 추천
맣
박소미
누군가에게는 노을이 화상이다
속이 타들어 가다 어스름에 수장되어버린,
반지하
잦은 비 예보가 틀린 적 없는 살기(殺氣)가 될 때
어제의 저물녘이 고추잠자리 붉은 꼬리에서 잉잉 거린다
감전처럼
[맣]
단음절에 겹겹 수피(水皮)를 끌어 덮고 잠든
아홉 살 아들과 반신불수 모자가 축약된다
신에게도 굴진하는 계단이 있다면
먹구름 아래로 내려보낼 텐데,
돌멩이처럼 가라앉는 방
이불을 내다 말릴 사람 없는 빨랫줄이
물을 뚝뚝 흘린다 늦은 조문처럼
바람이 다녀가셨다
청맹과니처럼 눈만 끔뻑이는 내게
맣은 장마야,
구름을 토템 삼던 시절에도 순장은 슬펐다고
지문 많은 유리창이 반뜻거린다
노을 비치는 천장 아래
천사가 목을 못 가누는 신생아처럼
날개를 태우고 있다
(『김포문학』 41호 142쪽, 2024, 한국문인협회김포지부 )
[작가소개]
박소미 《국제신문》시 부문 당선(2021) 등단. 김포문인협회 부회장. 목포문학상 본상. 김포문학상 우수상. 장애인 문학상. 시산맥 투고시 선정(2024), 김포예총 예술인의 밤 시의회의장상 수상, 〈서울〉, 〈달詩〉, 〈시품〉동인, 공저 『우리들의 겨울』『바퀴벌레조차 귀여울 때가 있을까』와 〈달詩〉시선 『척尺』『시차여행』『꽃을 매장하다』『 무화과 서약』『오로라를 보러 가는~』이 있다
[시향]
시인이 여름철 장마에 희생된 모자를 응시한다. 축약된 사회를 고발한다.
신에게도 굴진하는 계단이 있다면
먹구름 아래로 내려보낼 텐데,
돌멩이처럼 가라앉는 방
이불을 내다 말릴 사람 없는 빨랫줄이
물을 뚝뚝 흘린다 늦은 조문처럼
바람이 다녀가셨다
여름 장마철도 아닌데, [맣]이라는 장마의 옛말로 소재는 시작된다. 이는 미리 주변을 돌아보고 열악한 환경을 대비하여 기후 이변으로 인한 후환을 줄여야 할 시절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참혹한 슬픔에 눈 마주치기가 어렵다. 희생된 모자는 우리의 이웃이다. 아무리 천사가 찾아왔을지라도 너무 일찍 올 수밖에 없도록 들여다보지 못하고 내버려 둔 우리 모두의 방심이고 방치인 까닭이기 때문이다.
글 : 심상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