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인류는 한 몸/ 한 뿌리에서 나온 영혼/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다.” 〈아담의 후예〉라는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디Saadi Shirazi의 작품이다. 그의 산문집 《장미의 정원》에는 자유인의 속성과 자질을 나무에 빗대어 쓴 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현자에게 묻기를, “지고至高한 신이 드높고 울창하게 창조한 온갖 이름난 나무들 가운데, 열매를 맺지 않는 삼나무를 빼놓고는, 그 어느 나무도 ‘자유의 나무’라 부르지 않으니, 어찌 된 영문이나이까.” 그러자 현자가 대답하기를, “나무란 제 나름의 과일과 철이 있어서, 제철에는 싱싱하고 꽃을 피우나 철이 지나면 마르고 시드는 도다. 삼나무는 어느 상태에도 속하지 않고 항상 싱싱 하느니라. 자유로운 자들은 바로 이런 천성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러니 그대들도 덧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칼리프들이 망한 다음에도 티그리스강은 바그다드를 뚫고 길이 흐르리라. 그대가 가진 것이 많거든 대추야자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어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되어라.”라고 하였다.
현자가 말한 ’자유인의 품성‘인 ‘아낌없이 주어라’, ‘자유인이 되어라.’의 이란어 원문의 영어 번역이 흥미롭다. 모두 ‘be liberal like a date tree’, ‘be liberal like the cypress’라고 다중적 의미 ‘liberal’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이 영어단어에는 ‘자유인의, 아낌없이 주는, 풍부한, 충분한’이라는 문자적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신과 다른 견해에 ‘관대하며 수용적인’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낌없이 준다는 사실’ 자체가 풍부함에서 비롯되었으니, 자신이 가진 것을 그렇게 처분함이 곧 ‘자유인의 모습’이 될 것이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그의 《자유론》에서 각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사회가 개인에게 강제나 통제를 가하지 못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단 하나의 예외는 개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때이다. 이 경우를 제외하고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각자가 주권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는 모두 개인으로서 ‘해야 할’ 자유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이로써 그의 자유론은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의 탄생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 시인이 노래한 ‘자유인의 속성’은 어떤 것일까. 시인 사디Saadi가 쓴 《장미의 정원》에는 ‘제왕을 위한 충고’의 내용이 많이 나온다. 1256년 몽골이 페르시아를 정복했다. 1258년에는 시인이 한때 공부했던 바그다드가 몽골의 침공으로 파괴당해 이슬람의 황금기가 종말을 당했다. 그는 고향에서 참혹한 전쟁의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의 ’자유인의 속성‘이 나오는, ’삶의 행동규범‘에는 격언과 훈계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 격언이 제왕을 위한 국가경영에 관한 충고라면, 그가 언급한 자유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시인은 몽골의 침공에서, 국가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국부란 제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으나 잎들은 이내 시들어 마르는 과실나무와도 같기 때문이다. 국가가 외부의 위험이나 환경에도 구속이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푸르른 삼나무와같이, 국민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 따라서 시인은 국가의 안전을 외부로부터 굳건히 지키는 것이 제왕이 행해야 할 첫 번째 책무임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국가가 부를 이루면 아낌없이 국민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눌 부가 없다면, 최소한 국민에게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자유에 관한 생각에서,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의 존엄성을 유지하려면, 각 개인에게는 ‘할 수 있는 자유’와 ‘어떤 상태로부터 구속받지 않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자유’가 선행되어야 함을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가끔은 현자가 되고 싶다. 현자란 오늘의 성지聖地 맘몬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물질의 허망함을 나보다 먼저 깨달은 자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도 잃을 것도 없어 두려운 것이 없기에 그는 자유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 양식 있는 자라면 누구나 자연법의 지배(Rule of Law) 아래 독립된 개인으로 한껏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원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유에 관한 궁극적이며 본질적인 물음을 묻고, 가장 선한 가치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시인 사디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란전쟁을 보면 어떤 시를 지어 자국민을 위로할까. 아낌없이 국부를 국민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면 자유라도 누리게 해야 할 텐데 언제나 고통은 민초들의 몫이어서 슬프다,
몽골 침공 당시 시인은 전쟁과 파괴 속에서도 평화와 용서를 강조하며 페르시아 문화의 회복력을 암시했다. 그가 쓴 〈아담의 후예〉는 이란의 초등학교 교재에 수록되어 있고, UN 본부의 한 건물에도 걸려있다고 한다.
인간은 모두 형제라는 그의 도덕적 교훈과 인간성 회복의 소망이 언제쯤에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담의 첫 번째 후예가 저지른 것이 형제 살해의 역사였으니 서로 자유인으로 살아가기란 지난至難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