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가 된 도둑 <임실 서당재> <임실 서당재> 때는 조선조 초엽. 지금의 전북 임실군 삼계면 서당재의 조그만 암자에 한 비구니 스님이 홀로 수도를 하고 있었다. 20세 안팎의 이 스님은 고려말 귀족의 딸로서 멸족의 화를 면해 입산 출가했다는 소문이 마을에 파다했다. 밤이면 호랑이 늑대 소리가 들려도 젊은 스님은 염불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던 스님은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하얀 백발 노인이 근엄한 표정으로 스님 앞에 나타났다. 『아니…?』 『놀라지 말아라. 나는 이 산을 다스리는 신령이니라. 이제 그대에게 자식 하나를 점지해 주려고 이렇게 찾아왔노라.』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다. 소녀는 계율을 수행의 첫 덕목으로 삼으며 공부하는 불가의 비구니이옵니다.』 『이 산의 정기를 그대 몸을 빌어 자식으로 태어나게 할 것이니라.』 『신령님! 산 아래 마을에는 자식이 없어 애태우는 사람들이 많사온데 왜 하필이면 소승의 몸을 빌리려 하십니까?』 『다 뜻이 있어서 그러느니라. 이제 그대에게 점지할 아들은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정결한 그대를 선택한 것이니 그리 알라.』 말을 마친 노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노인이 사라짐과 동시에 스님은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중천에 두둥실 떠 있던 보름달이 하강하더니 스님의 입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스님은 경악해서 질렀는데 그만 그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주변을 둘러보니 불공을 올리다 잠이 든 모습 그대로였다. 『별란 꿈도 다 있네.』 그러나 스님은 그 신기한 꿈을 꾼 지 10달이 지난 후 달덩이 같은 옥동자를 산고도 없이 낳았다. 아기는 날이 갈수록 영특하고 총명해졌다.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르 ㄹ바라볼 때마다 스님은 착잡한 상념에 사로잡혔다. 『그렇지. 아무래도 예사 아이는 아니야. 훌륭히 키워 보자.』 스스로 다집한 스님은 아들이 커 갈수록 마음이 든든해졌다. 『어머니!』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부르라고 했지 않느냐?』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는데 뭔가 잘못이에요?』 『하지만 난 다른 어머니와 달리 출가한 여승이 아니냐. 그러니 앞으로는 꼭 스님이라 부르거라.』 『우리 아버지는 누구세요?』 퉁명스럽게 묻는 아들의 말에 스님이 대답이 없자 아이는 골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왜 말을 못하시고 숨기세요? 어머니가 스님이 되신 곳도 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세요?』 『그런 것이 아니란다.』 『그럼 왜 말씀을 못하세요?』 『네가 좀더 크면 말하려 했는데 정히 네가 원한다면 내 오늘 다 말해 주마. 한 가지 약속할 것은 내 말에 의심을 갖지 말고 믿어줘야 하느니라.』 스님으로부터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했다. 자신의 출생 동기를 알게 된 그는 이대로 집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결심했다. 『어머니, 저는 이제 어머니 곁을 떠나야겠습니다.』 『아니 어디로?』 『큰스님을 찾아뵙고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음, 그래 말리지 않겠다. 어디를 가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너는 예사롭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란 것을 명심하고.』 『네, 어머님 아니 스님.』 소년은 그 길로 무등산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대혜도사를 만나 열심히 수도하며 무예를 익혔다. 그렇게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소년은 20세의 천하장사로 성장했다. 하루는 대혜 스님이 청년을 불렀다. 『이제 나는 네게 더 가르칠 것이 없게 됐다. 그만하면 훌륭하니 그만 내 곁을 떠나도록 해라.』 『하오나 소생은 아직 미흡하옵니다.』 『아니다. 네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장사가 갖는 용마가 아직 없다는 것뿐이다.』 『용마라니요?』 『너는 명산의 정기로 태어난 장사음을 내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한데 아직 용마를 못 얻어 너 스스로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스님, 어찌하면 용마를 얻을 수 있을까요?』 『용마는 하늘이 주시는 것이니라. 허나 아직 하늘이 네가 용마를 주실 뜻이 없는 듯하니 대신 내가 말 한 필을 주마. 저기 마구간으로 가자.』 마구간 앞에 선 청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엔 청동의 황금 옷을 입힌 말 한 필이 있었다. 『너는 저 말을 능히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어서 끌고 가거라.』 그때였다. 『히-잉』 청동 마가 긴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허어 됐다, 됐어. 그 말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니 무슨 일이든 네 뜻대로 될 것이다.』 청년은 스승과 헤어져 청동 마를 이끌고 서당 재 암자로 달려갔다. 『아니? 이게 누구냐!』 10여 년 만에 아들을 만난 스님은 기뻐 눈물을 흘렸다. 실로 오랜만의 모자 상봉이었다. 그날 밤, 신기한 청동 마를 탐낸 도둑이 암자에 들었다. 『허허,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내가 갖게 됐구나.』 청동 마를 둘러메고 산을 내려오는 이름난 산적 두목 도포는 무거운 줄도 몰랐다. 방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청년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급히 나와 보니 청동 마가 보이질 않았다.
『앗, 내 청동 마를 누가 훔쳐 갔어요.』 『뭐라고. 그 귀한 말을 도둑맞았다고?』 『어머님, 소자는 용마를 얻을 때까지 더 수도하겠습니다. 청동 마는 저와 인연이 없는가 보옵니다. 그러나 소자는 도둑과 그 말을 바위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청년은 급히 종이에 주문을 적어 허공에 날렸다. 그때였다. 멋도 모르고 산속 어디쯤을 내려가던 도둑이 소리를 쳤다.
『으악! 사람 살려요.』 외마디 비명을 지른 산적 도포는 그 자리에 굳어 바위가 됐다. 그 후 서다 재에는 도둑 도포와 청동 말 형상의 바위가 생겨났고 지금도 그곳엔 서당 재 도둑 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청년 장사는 그 길로 산중 깊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장사는 용마를 얻지 못하면 세상에 나갈 수 없다」는 말을 입증이나 하듯. [출처] 바위가 된 도둑 [출처] 바위가 된 도둑 <임실 서당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