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지의 낙신부도에서 보면, 산수는 인물의 배경일 뿐이다. 인물이 중심이니 인물은 크게 그리고,. 산수는 작게 그렸다.
산수화 이야기(1)
우리는 너무 ‘그림 보기’ 위주로 공부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중국화는 이론도 있습니다, 그 이론을 알아야 중국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감상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중국화의 주류는 아무래도 산수화와 사군자 등의 문인화 계통이겠습니다. 앞으로 몇 꼭지를 산수화에 대하여 기초만이라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산수화가 나타난 시기를 晉(265-420) 나라 때라는 것이 정설이다.
고개지가 이론과 그림을 남겼다. 고개지 이외에도 산수화를 잘 그린 화가가 있다고 하나 알려진 이름은 거의 없다.
이론으로는 고개지의 주장, 종병의 ‘산수화 서’ 그리고 왕미의 ‘서화’ 등이 있다. 이론서가 있다는 것은 그림도 그려졌다는 것을 말한다.
이후 정체기가 있었는데, 당나라 때에 다시 산수화를 그렸다. 중당-오대를 거치면서 산수화가 중국 회화의 중심을 차지하였다.
이때(초기의 산수화 –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볼 수 있다.)의 산수화는 사실적이지 않다. ‘역대 명화기’ 저자 장언원은 산수화를
‘사람과 말이 산보다 크고, 마차 안에는 열 개의 신이 들어간다.’라고 했다. 산수화는 마치 인물화의 배경처럼 그려져서 그림의 중심이 되지 못하였다.(이때는 그림이라면 인물화가이다. 화가도 인물화를 주로 그렸다.)
첫댓글 산수화의 유래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