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어 ROTC
저녁 무렵, 라티브 ‘폴바셋’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ROTC 선후배들이다. 오늘은 새로 입단한 한 선배님을 환영하는 자리였다. 평소에도 타운에서 스쳐 지나며 인사를 나누곤 하지만, 이렇게 한자리에 둘러앉으니 반가움은 훨씬 깊어지고 정은 더욱 따뜻해진다.
새로 함께하게 된 선배님은 3기로, 1965년 임관하여 나라의 전선을 지켜오신 분이다. 그 세월의 무게는 말로 다 담을 수 없지만, 그분의 눈빛과 말투에는 이미 긴 시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 모임은 1기 선배부터 18기 후배까지, 모두 11명. 여든을 훌쩍 넘긴 선배부터 일흔에 이르는 후배까지, 인생의 계절은 다르지만 ‘ROTC’라는 이름 아래 한 줄로 이어져 있다. 세월은 우리 각자에게 다른 흔적을 남겼지만, 이 인연만큼은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선배와 후배라 부르지만, 사실은 형님이고 아우다. 아침 체조를 하다 마주치면 괜히 더 반갑고,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도 한참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지금의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고 있다.
나는 13기, 1975년에 임관했다. 내 동기 중에는 정몽준이 있고, 3기 선배 중에는 민계식 선배님이 계신다. 두 분은 MIT, ROTC, 그리고 서울대라는 여러 겹의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인연이라는 것이란, 이렇게 겹치고 이어지며 예상치 못한 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민계식 선배님은 미국에서 돌아와 대우조선에 몸담았지만, 당시 쉽지 않은 상황을 겪고 계셨다. 그때 정몽준이 선배님을 찾아갔고, 그 만남은 결국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중공업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 되었다.
그 이후 선배님의 삶은 오직 하나, 우리나라 조선 산업을 위한 시간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던 분.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던 사무실은 그분의 또 다른 이름과도 같았다. 280여 편의 논문과 300여 건의 특허는 그 치열했던 삶을 조용히 증명해주고 있다.
이처럼 ROTC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또 다른 길로 이끄는 힘이기도 하다. 학계와 산업, 정치와 문화 곳곳에서 ROTC 출신들이 남긴 발자취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지금, 라우어의 우리도 이곳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서로를 기억해주고, 자주 안부를 묻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다.
인연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맺어진 인연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그 길 위에 함께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