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이 비록 중국 송나라 시대에 창안된 수행법이라 할지라도 그 공부 방법은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와 ‘중도’를 깨닫는 것이다. 중도(中道)란 대립하는 양변을 여의되,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중도의 이치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부득이 ‘중도’라고 하는 것일 뿐이다.
간화선의 화두란 바로 이 중도의 구조와 직결되어 있다. 화두를 참구한다는 것은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를 말길(言路)과 생각의 길(思路)이 끊어진 화두를 통하여 체험하는 것이다. 화두 참구와 중도의 구조가 얼마나 유사한가 알아보자
어느 스님이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묻자, 조주 선사는 "없다(無)'고 답했다. 이때 이 '없다'는 말은 ① 있다 ② 없다 ③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④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등의 네 가지 답으로 이해하면 모두 어긋난다. 이 네 가지 유형의 사유를 불교에서는 사구(四句)라 한다.
이 사구는 사유의 모든 유형을 망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구를 통해서는 사태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이 사구를 떠나 중도에 서야 한다고 불교는 강조한다.
간화선에서 화두의 구조는 사구 분별을 떠나 어떤 사유 분별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유 분별을 떠나 직접 체험할 따름이다. 물이 뜨거운지 차가운지는 오로지 직접 마셔봐야 아는 것과 같이, 선은 화두를 통하여 진리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그 진리를 체험하는 길은 중도의 구조처럼 모든 사유의 출로를 차단한다.
이와 관련하여 《육조단경》에 중요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육조 혜능 선사는 스승인 홍인 선사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해가 미칠 것을 우려하여 깊은 밤에 도주하듯 절을 빠져나갔다. 이를 눈치채고 추적해 온 한 스님이 혜능 선사에게 깨달음을 열어 보여 달라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너의 본래 면목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가사를 빼앗으려 한 것은 악(惡)이며, 법을 받으려고 한 것은 선(善)이다. 그런데 혜능 선사는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고 하였다. 중도로서 생각의 길이 끊어진 길을 제시한 것이고, 바로 화두를 제시한 것이다.
이렇게 중도의 구조는 본래 화두와 궤를 같이한다. 간화선의 화두는 부처님께서 강조한 중도의 실천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