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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한 수십편의 다큐멘터리를 했지만 지루해서 다시보고 이런게 없었는데 이작품은 오늘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네요. 이상한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잘만든 것 같습니다. 30분 남짓한 이 다큐멘터리가 저의 인생도 바꾸고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자극과 영향을 주는것 그것은 제가 이것을 잘 만들었다기 보다는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작은 영상을 축사하셔서 나누어주신 것이라고 생각.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 은혜 가운데 이자리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최춘선할아버지는 사실 목사님. 와세다 대학 사학부를 나오시고 명지대학에서 신학하시다 교련을 거부하시고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학교를 그만두시고 김구선생휘하의 광복군에 들어가셔서 일제때 베이징 북경대대에서 여러일하시고 임시정부에서 재정부장을 하시고.. 왜냐하면 그 아버님이 북경에서 큰 사업을 하고 계셨기에 .. 김구선생과 함께 해방군으로 한국에 들어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해방이후에 큰일하시고 많은 집회, 외국인 부흥사 목사님들의 통역을 하시고 김포에서 굉장히 많은 땅을 625이후 실향민들에게 나눠주시고 하루에 2000명 넘는 분들 먹이시고 또 길거리 버려진 노숙자들이나 어린아이들을 먹이시고 매일 데려오시고.. 그래서 그 분 자녀들도 그 고아들과 다 똑같이 컸답니다. 머리를 빡빡밀고. 그 아들이 목사님이
되셨는데 최바울 목사님. 얼굴에 살이 많이 찌신것 같아서 물어보니 폭식을 해서.. 고아들하고 같이 크셨기때문에 먹을 것이 있으면 서로 먼저 먹어야해서 미리 고생을 많이 하셨음. 가족들이. 저런 가장을 둔 아버지밑에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습니까. 저는 서른 될때까지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주님앞에 너무 부끄러웠고 주님을 부르기 조차 부끄러운 삶이었습니다. 어렸을때는 열심이 있었다. 중학교때는 기도회를 조직하고 중3때는 선교회를 조직하고 축구팀도 만들고. 중3때 워치만니의 영에 속한 사람의 책에 심취해 에이든 토저 미우라 아야꼬 등의 책을 수업시간에 교과서 안에 감추고 봤습니다. 그 영에 속한 사람들을 보고는 제가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중3때 알고는 굉장히 방황을 했습니다. 겨울방학때 눈내린 산에 올라가서 십자가 눈위에 그려놓고 눈위에 구르기도 하고 나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워치만니는 옛사람을 죽이고 파쇄하라고 그러는데 저는 아무리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아 방황하고 우여곡절들이 많았죠. 열심히 주님앞에 기도하고 고2를 넘으며 그것을 극복한 것은 로이드 존스의 책의 로마서강해를 읽으며 워치만 니를 극복하고.. 옛사람은 이미 죽었고 로마서 강해3권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었어요. 주님이 너무 좋았고 기도굴에 들어가 박치기 하면서 복음을 사수하게 해달라고 진리를 사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만큼 열심히 특심이었고 하나님앞에 제가 그런 존재이기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진리를 사수하겠다는 저를 절망의 골짜기
로 보내셨습니다. 알수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누님은 정신 질환인지 영이 들었는지 미쳐서 날뛰고 식당을 했는데 갈비탕 뜨거운 것을 손님들 머리에 붓고 칼들고 벽을 쑤시고 매일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저는 기도해도 안되니까 그것을 제압하기 위해 머리 끄댕이를 잡고 패대기치고 발로 짓밟고 포박하고 하지 않으면 진압이 되지 않는 이상한 현실들이 왜 진리를 사수하게 해달라는 저에게 일어났는지.. 그래서 그런일들이 계속되면서 저는 결국 저자신이 너무 무기력하고 부끄럽고 견딜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그냥 방황하게 되었죠. 그렇게 헤매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고 불려지지 않았음.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같은 신세가되어 홍길동의 마음이 헤아려졌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수 없는 일이 제 인생에 일어났습니다. 주일이면 겨울에 빈 밭 한가운데 앉아있고 혼자 떠돌아다니고 책을 보고 그런 가정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도망도 다니고 그렇게 하다가 다원주의에 강하게 빠져 헤엄치고 그런 시절. 그러다 20대 후반에 도저히 견딜수 없어서 성탄절 그 전야에 주님을 불러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서 주님의 지혜를 좀 주셨는지 24일 밤에 티비에서 하
는 성탄 축하쇼를 보고 있는데 저희 어머님이 담아논 과일주가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아.. 저걸 먹으면 저힘을 빌리면 주님을 불러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모과주를 잔뜩 쳐먹고 술기운에 술의 힘을 빌어 주님을 불렀습니다. 좋드라고요. 술을 마시니까 용기가 생기고 콧김이 팍팍나고 예수여 이렇게 반말이 나오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성경에 나오지 않았소? 이러면서 지금이 그 사랑을 증명할때요! 이렇게 반말 짓거리로 떠들어 댔습니다. 그리고 너무 취해서 잔 것같은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이 날 사랑하심인데 그걸 빗대어 표현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소. 나 좀 살려주시오. 그것을 술먹고 그렇게 취기로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주기도죠. 술 주자.. 그 다음날 응답이 되었습니다.제가 갈 곳이 없어서 성탄절에 교보문고에서 가서 책을 보려고 45번 좌석버스를 탔는데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날나리 친구. 고고장 다니던 친구고. 어딜가냐 물었더니 내수동교회를 간다고. 깜짝 놀랬죠. 왜냐하면 제가 내수동 교회를 다녔거든요. 그 사이에 신학생이 되어서 선교사 후보생이 되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이놈이 변화된 것 보니.. 너 왜 교회 안가냐고 교회를 같이가자고 했습니다. 이게 주님이 응답해주신 거구나. 못이기는 척 끌려갔죠. 그래서 다시 주님을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이기회를 놓치면 안되겠구나 싶어서. 술쳐먹고 객기에 반말짓거리는 기도였는데 응답해주셨어요. 우리주님 그런 분이십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어떤 형식과 행색과 형태를 가졌던 간에 그 안의 진실과 중심을 보시는 주님. 그때 주님을 다시 발견하고 너무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주님을 부르고 네비게이토 교재로 구원의 확신부터 다시 겸손하게 시작해서 영접기도도 다시 하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른이 되어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이렇게까지 주님을 부르게 되었고 서른이 되었는데 정말 너무나 아무 열매가 없네요. 저도 주님처럼 서른살이 되었으니 공생애를 한번 살게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하도 특이했던지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게 응답이라고 믿습니다. 여러가지 경로와 가정을 통해서 미션이라는 것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영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확연하게 저에게 영상을 해야한다는 벅차오르는 봄날의 이 핫한 기운같은 그 보다 더 어떤 그것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영상을 해야한다는데 저는 그것이 영화인지 뭔지 잘 모르죠. 다큐멘터리 이런 생각도 없이 90년대 초반이기때문에 어디서 뭘 배우는 것도 아니고 다시 연극영화과에 들어갈 수 도 없고 그 영상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중고 8mm 비디오 카메라를 샀습니다. 사서 그날저녁에 청계천 가로등 비추는 곳을 흑백 디파인더로 보면서 찍을 줄도 모르는 놈이 찍었는데 얼마나 그 밤 늦게 돌아다니며 찍었는지. 그러나 뭘 찍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제가 이상한 기도를 잘하고 그래도 주님께 끈질기게 의뢰하는 그런 습성이 있었나 봅니다. 제가 어렸을때부터 그런 체질이었습니다. 주님. 저에게 영화 영상 연출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면서 농담인지 모르지만 주의 영화로우심을 보라 뭐 이런 것도 떠오르고.. 그런 엉뚱한 짓을 했습니다. 기도가운데 주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 여기 있는 네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라.. 그전에도 그말씀을 읽었는데 그말씀이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그것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영화 연출 교수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깨달음이 왔습니다. 제가 뭘 거창하게 그게 아니구나. 그냥 여기 있는 내 삶가운데 있는 앞에있는 지극히 작은 자하나를 내가 찍으면 되겠구나. 그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주님께 한것이다. 똑같은 가치 매김을 맺는것이구나. 와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저에게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에는 막 나같은 놈이 뭘해 뭘해야할지 모르고 무슨 주님의 사역을 해야하나 얼마나 제가 그 과정에서 저의 우상은 자기 정죄였습니다. 너무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존재. 저는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극히 작은 자 어디있나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누나. 여전히 영적으로 회복이 안된 맨발로 도망다니는 누나. 폭식을 해서 살이 찐 누나가 지극히 작은자로 보였습니다. 그 분을 그렇게 찍으면서 나의 지극히 작은자. 사랑이 생겨요. 이상하게. 그 누나한테 늘 얻어맞고 팔다리 부러지고 눈이 멍들어 있는 저 칠순 노모 우리 어머니. 아버지 일찍 여의고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신 우리 어머니. 그분이 저 변두리에서 잡초밭을 호미질하는 것을 찍으면서 지극히 작은 자 우리 어머니. 몇개월 지나니까 어머니께서 호미질 하신 밭이 텃밭이 되는 거에요. 거기에 싹이 나는 것도 다찍었습니다. 저 어머니의 소망의 호미질을 내가 잊을수 없는 거에요. 나도 열심히 이지극히 작은 자를 찍다보면 내 작은 텃밭이 생기고 조그만 열매들이 나겠지 이러면서 나레이션 하는 겁니다. 제가 반지하에 살았는지 식당들이 망하고 변두리에서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주인이 밥도 안주며 괄시하고 개에게는 눈물자국이 막있고 제가 너 지극히 작은 자구나. 너 쇠사슬에 묶여 있는 너의 모습이 나의 영혼의 모습이구나 하면서 밥도 주고 찍고 피조물이 탄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래. 오늘 내가 너를 위해 나타났다 이러고. 쇼를 했습니다. 하루종일 담배꽁초를 찍은 적도 있습니다. 누가 밟아버린 너 내장이 터져버린 너. 지하철 타면 구걸하는 분들이 팔리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다니다 저 구로 공단 2호선 같은 곳에서 저 마을 도시를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분의 담배연기를 찍으면서 팔리지 않는 물건을 팔러 다니는 저사람들의 마음의 존재의 이면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다가왔습니다.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이런 것보다 찍은 것. 그렇게 찍고 찍다가 다시 제가 다니고 있던 내수동 교회에서 지극히 작은 자하나를 만났는데 별명이 니코틴 정이에요. 뇌성마비 친구인데 교회옆에서 담배피우고 있습니다. 교회 성경 공부시간에. 그러니까 10살이 넘어 겨우 문밖에 나간 친구입니다. 그 친구를 저의 친구로 삼았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이니까. 그 내수동 교회 성경공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성경공부를 가지 않으면 죄짓는 줄로 아는 우리 동포들.. 그 친구를 두려워하는 거에요. 장애인이고 담배피우고 하니까 그 친구를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못해요. 저는 그런 친구들 하도 밑바닥에서 아주 못난이도 그런 못난이가 없었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했으니까요. 얼마나 부끄러우면.. 그 친구에게 야 너 누가 너 찍어준 적있냐. 그랬더니 없어! 그래서 그럼 내가 지금부터 너 찍어줄까? 이러면 좋다 야! 그걸로 캐스팅한것이죠. 그래서 그 친구를 10년이 넘도록 찍었습니다. kbs인간극장에서 하도 해달라고 졸라서 그 친구 이야기로 광화문 연가라는 제목으로 광화문에서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며 시를 쓰는 그 이야기를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한 적이 있죠. 그렇게 살아가다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잘 모르지만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지만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찍습니다. 그러나 제 소망이 있다면 주님이 정말 하시고 싶으신 일들이 있다면 제가 너무나 부끄럽지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제가 작은 도구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이 정말 자랑스러워 하고 주님이 찍고 싶어하시는 드러내고 싶어하시는 존재가 있다면 제가 찍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 사람을 제게 소개 시켜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찍었습니다. 저는 그 전에는 어떤 진리가, 부산에 누가 말씀을 잘전하고 그러면 고등학교때 쫓아가고 그런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뭐냐면 로이드 존스 프란시스 쉐퍼 저는 책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복음을 깨닫고 진리를 파헤치는 맛들 좋아했지만 그 밑바닥을 거치고 나면서 성경을 다시 읽는데 정말 주님을 닮고 싶은겁니다. 그런 것들이 아무리 있어도 저희집에 누나에게 그런 일이 딱 벌어지니까 제가 아무것도 아닌것. 그러니까 못난이죠. 저에게는 그렇게 제가 탐닉했던 그런 진리의 체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나 밑바닥에서 복음서를 보니까 주님을 닮고싶은데 주님의 시선을 찬찬히 다시 보니까 그분은 지극히 작은 자들의 친구로 사셨다는 것. 또 그들과 더불어 살고 그들가운데 말씀을 전하시고 그냥 단순하게 그것이 들어왔습니다. 정말 주님을 닮고 싶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진리가 필요했던 것이죠. 복음이. 복음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는 바로 주님을 닮는 실제를 위해서 그 주님을 닮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그전에는 그게 그렇게 어려웠는데 주님을 닮으려보니 정말 그 밑바닥에 그 노숙자들 그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에요.그렇게 다가가지고 만나지고 그 촬영이라는 매개체로 그것이 가능해졌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그렇게 가다가. 정말 특이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만났는데. 그 분이 아까 본 바로 그 할아버지입니다. 95년 7월입니다. 그분을 만나서 제가 할아버지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지나가는데. 미친 노인네죠. 맨발로 이상한 행색에. 그 할아버지에게 제가 어디에 다녀오는데 오후 3시에 거기서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되게 느낌이 좋았습니다. 제가 오후3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교대역에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저희가 친구가 되었죠. 할아버지를 옛날 촬영한 것을 보면 이게 미완의 작품인데 이것이 나누어 질거라고 생각을 안하고 하루만에 거칠게 만든겁니다. 그리고 그분이 굉장히 어떤 말씀이나 이런 것을 많이 하셨는데 저는 이것을 크리스천들하고 나눈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누구나와 나눈다고 생각해가지고 그런 관점에서 편집이 된 경향이 있습니다. 굉장히 저는 이분이 특이했습니다. 말씀하시는 것도 특이하고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 대화를 해보니 매우 자상하시고 따듯하셨다. 제가 그전같았으면 이분 무시하고 지나갔을텐데 완전히 밑바닥에서 못난이가 되가지고 지극히 작은 자하나를 탐닉하기 시작하니까 이 분이 저에게는 너무나 자연 스러운 거에요. 체질의 변화가 온것이죠. 그래서 이 분이 축복 많이 해주셨는데 이분은 율무차도 많이 뽑아주시고 용돈을 많이 주셨어요. 3000원씩 만원씩. 막 쥐어주십니다. 그러면 제가 할아버지 제가 드려야하는데.. 선교헌금! 딱 말씀하시면 선교헌금인데 제가 선교하는것도 아닌데 그러면 아닙니다. 지금은 촬영하시는게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솔직히 그런생각도 안했지만요. 그러면서 북한가서 급식소 소장되시고 선교회 회장되시고 축복을 해주시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선생님은 빛난 얼굴 김구주석 꼭 닮았어. 미스터 코리아! 저는 해당이 안되는지 그런얘기 한번도 안해주시고.. 북한가서 급식소 소장되시라고. 저는 그게 노인들이 흔히 그리고 이분이 완벽한 분도 아니고 문제가 많은 분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그분안에 있는 진실을 알고 느꼈기에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라고 생각했기에 즐겁게 지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그분이 너무 좋았고 따뜻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이분이 5개국어를 하고 옛날에 자동차를 5대 굴렸고 이런 이야기 하시며 같이 la 북경 동경에도 전도여행을 가자는 겁니다. 저에게는 촬영을 하고. 저는 정말 재미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이분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다 잘하세요. 그래서 그 나라말로 하면서 맨발로 다니면 주목할 것 아니에요. 이것참 재미있겠다. 어떻게 경비를 마련하지 이런 생각도 하고. 율무차를 서로 사주겠다고 다투기도 하고. 꼭 제가 졌지만. 충무로역에가면 미스터 코리아 이순신 이러시고. 이 할아버지가 뭔가 영악하신 분이다. 루어의 그림의 나온 변방의 그리스도의 그 거친 질감. 황혼이 깔린 그 느낌. 이게 낙원이구나. 하는 즐거움. 이 분과함께하는게 즐겁고 했습니다. 나중에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을 가졌던것이아니구요. 그런데 제가 이분이 예언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민족 복지재단(북한의 아이들에게 빵과 급식을 해주는 단체,쓰나미 일어났을때도 가장 먼저 달려갔음.)의 김영석 대표께서 만나자고 하시는데 저 높으신분이 왜 나를 만나시려고 하나. 팔복 책을 보시고 만나기를 원하셔서 어디나가고 하는 것을 극히 꺼리는 성향이라서 안나가고 그랬더니 팔복 공연을 할때 영상의 마지막에 나오는 음악 오직 주의 사랑의 매여 고형원 선교사가 영적으로 힘든 가운데 있다가 이 영화를 보고 회복이 되었는데 중국의 수용쩌 형제(윈형제의 스승)가 한국에 왔을때 홍성사에서 같이 팔복을 보게 되었을때 같이 보았다. 중국의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 앞에서 영상을 소개했다. 이 분이 주인공이 아니고 이 다큐멘터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알아주지 않는 삶의 풍경을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진실과 충성을 붙들고 살아가는 그 사람들. 그런 노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인의 그 중심을 정확히 보시는 우리 하나님. 그리고 그 발걸음과 더불어 뜨겁게 동행하셨던 우리 하나님. 바로 그분이 주인공입니다. 이 세상 어느구석에서 어디있든지 어떤 삶의 형태로 살아가든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진실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바로 그 진실 섬김과 헌신을 우리 하나님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결국은 열매 맺는다는 것. 이 다큐멘터리의 메시지입니다.그때 고형원 전도사님이 이 말을 듣고.. 표정을 보니까 갑자기 앉았다 일어났습니다. 그때 감동을 받았다고. 자신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간증을 했습니다.고형원 전도사님의 사모님이 팔복 공연때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이곡을 부르셨는데 여기에 한민족 복지재단의 실장님을 보내 다시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제가 거절 할 수 없어서 갔더니 그 분이 제게 무슨 말씀하신줄 아세요? 북한가서 급식소 소장해라.. 대단하십니다. 북한에 가자는 겁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황해도 지역의 급식소에. 지난 주 금요일 수원의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분은 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몇달을 모시고 계셨는데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장애인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입니다. 그 분이 이 할아버지의 아들과 방위 친구랍니다. 한 번은 최목사님이 짜장면을 너무 폭식을 하셔서 채하셔서 숨이 넘어가시게 생겼는데 집에 모셔가니까 할아버지가 기도하시더니 나았다. 그때 이 할아버지가 축복기도를 해주시는데 우리 아들 바울이는 평양가서 선교를 할 것이고 너는 가서 농아인 사역을 해라 그랬답니다. 교회를 다녔지만 이분은 신학하는 분도 아니고. 그분은 뒤늦게 서른이 넘어 장애인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야간신학을 하시고. 자폐증 환자 치매노인 돌보고. 그런데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서류를 내라고했는데 자기는 지방신학교나와서 자격이 안된다고 했지만 냈는데 와서 수락이 되서 가보니 농아인 사역을 하라고..그 간증을 하셨습니다. 20년 전에 자기보고 농아인 사역을 하라고 했던 그 말이 생각났답니다. 그분이 저에게 주고 싶으셨던게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거기서 부르시던 찬송가입니다. 그 찬송가 가사에다가 글쓰는 것. 그특이한 전도지를 써놓으셨어요. 9월 8일 망. 여러메모를 써놓으셨는데 주님품에 안식하고 돌아가실것을 알고 8월중순부터 장례찬송에 그렇게 메모를 해놓으셨습니다. 개사를 하시고 번역을 하시고 나의갈길 다가도록은 새롭게 5절까지 가사 써놓으시고. 주의 얼굴 뵈오리 거기 찬송에도 그렇게 써놓으시고. 이 분은 주님의 얼굴만 바라보는 그날만 바라보시며 사셨습니다. 근데 거기보니 천국을 사모하는 자들. 거기에 9월 8일 한문으로 망이라고 써놓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9월 8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주님품에 갈 것을 알고 계셨던 분이셨어요. 겉으로보기에는 참 이상한 분인데 이해할 수 없는 그 영적인 경지와 지평은.. 저는 그 분에 대해서 굉장히 일부분만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만났던것은 드문드문 그분의 마지막 생애의 7년 정도의 기간. 방송을 하면서 틈틈히 만났는데. 저는 그런 영상을 만들어 올려놓은 것 뿐입니다. 그것이 갑자기 나눠지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 이런 분도 있다고 나누기 시작했는데 갓피플 닷컴에 개시 2달쯤 되었는데 조회수가 130만건. 댓글이 1800건. 이상하게 이영상을 보고 자기를 회개하고 자기의 부끄러움을 하나님께 내놓고 정말 주님앞에 헌신하겠다 그런 장문의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 영상을 보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저도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이 영상을 만들어놨는데 영상으로는 그 할아버지가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아서 주변의 요청에 의해 부담이 많았지만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연재를 했는데 일주일만에 책한권이 쓰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안했는데 그래서 책이 되었는데 2달만에 책이 3만권이 나갔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젊은이들 집회에 가서 나누고 했는데. 그런 요청이 오는것이 자꾸 싫었습니다. 나가서 얘기하는게 부끄러운거에요. 그래서 그만하려고 했는데 거절을 또 잘 못해서. 이제는 그만해야지.하고 '애통하는 자'를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분이 찾아와서 새벽기도에 응답받았는데 하나님이 이 할아버지를 너무 자랑하고 싶으시다고 음성을 주셨답니다. 정말 이런 상황 벗어나서 난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이고 소재도 많았는데 이 일에 얽매여서 너무 나눠지고 이러니까 제 삶은 잃는.. 이해도 잘 안되고. 얼마후 이 할아버지 제자라는 분이 또 전화를 하셔서 말씀하시는데 멈추질 않으시는 겁니다.그래서 제가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가 없어하시는 것이 너무 숨넘어 가듯이 말씀하셔서 다음날 금촌역에서 만났습니다. 그분이 눈물을 글썽거리시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은 무심하지 않으시네요.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귀한 이 영혼을.. 이분을 드러낸 분은 정말 하나님이시라고. 아무도 그분의 가치를 몰랐다고. 다 그분을 미친노인네로 알았지. 이 분은 그 할아버지의 30년 제자로 계셨고 제자가 1000분이 넘는다고 하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이 1시간30분동안 저에게 쉬지 않고 이야기하시는데 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나중에 돌아오는데 기운이 다 빠지는 겁니다. 너무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서.
첫댓글 하도 올려주세요^^
그냥 정리도 없이 막 받아적어서 두서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나머지부분도 조만간 타이핑해서 게재할 예정입니다^^
귀한간증 감사합니다
제가 우연한 기회에 들은 메시지인데 나눌수 밖에 없는 간증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춘선님 김우현님 영심님 내려놓음님을 영광의 도구로 쓰셔서 저희에게 은혜를 허락하시는 내 주 하나님께 감사 찬송 영광을올립니다 할렐루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립니다.. 댓글이 저의 삶에 비추어보았을때 너무 제게 부끄럽습니다..이 오병이어의 소식을 나누게 하신 주님.
이 부족한 타이핑글을 통해 혹 몇분이라도 은혜를 받으시고 삶을 정비하신다면 제가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opklm님의 마음에도
최춘선할아버지를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인의 삶이 새겨진법이 되어 충성의 열매가 삶에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내려놓음♡아싸 아멘
김우현감독님 실제뵌적은 없지만 그분말씀과 책들을통해 깊은영성과 겸손함이 느껴졌었답니다ᆞ 이런간증들속에 묻어나는 깊음이 감동이되어 전해지는군요ᆞ글올려주셔서 정말감사드려요^^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선입견이라고 할까요..그냥 인터넷 여기저기서 돌아다니는 글들이 사람에 대한 판단을 어느샌가 흐리게 만들었나봅니다. 제게 이런 간증을 듣게 하셔서 저도 감사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의 친구가 되는 것... 그러면서 제 삶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일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후 타이핑한 부분에도 나올테지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아닌게 아니구나(말이 좀 우습지만..). 그저 주님을 위해 서있으면 그래, 하나님이 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나의소망님의 삶도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하는 예수님의 친구되시는 삶되시길 소망합니다..
@내려놓음♡아싸 아멘~~♡ 많은 말씀들과 많은 사역봉사들과 많은 신학교리들속에 포장되어 정작 주님의 눈과마음이 어디를 향하시는지 관심없는채 달려왔나봅니다ᆞ겉으로 드러난것들만 눈으로 보이는것들만 본것같아요ㅠㅠ
귀한 간증글 감사합니다. 후속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조만간 빨리 타이핑해서 올리겠습니다.
영상으로 대략적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찬찬히 읽으니 참 좋네요..타이핑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최춘선 할아버지 사연을 보며 눈물 많이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타이핑이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거라서 수고라고 생각하고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이 다음의 내용이 클라이막스인데.. 아직 타이핑을 못하고 있네요..
고다니엘님 승리하는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