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묻은 손을 애정으로 씻어다오
원제 : Kiss the Blood Off My Hand
1948년 미국영화
감독 ; 노만 포스터
음악 : 미클로스 로자
출연 : 버트 랭커스터, 조안 폰테인, 로버트 뉴튼
'피 묻은 손을 애정으로 씼어다오' 는 독특한 제목 때문에 관심이 끌려서 본 영화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 개봉된 작품이지요. 그리고 버트 랭커스터, 조안 폰테인 이라는 톱스타 둘이 출연하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좋아하는 40년대 필름 느와르 장르이기도 하지요. 이래저래 궁금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다혈질인 한 남자가 우발적 살인을 하지만 착한 여자로 인하여 갱생을 길을 걷게 되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 남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악당이 있지요. 결코 순탄하지 못한 갱생의 길이지요.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1948년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는 시대였습니다. 특히 유럽지역은 더욱 그랬지요. 도시는 재건이 되고 전쟁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겨진 상처는 쉽게 치유가 되지 않았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상처, 퇴역 군인들이 갖는 후유증 등. 이런 배경을 놓고 전개되는 내용입니다.
빌 손더스(버트 랭커스터)는 아지 젊은 청년이지만 2차 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겪은 고초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습니다. 주먹이 세고 다혈질인 그는 어느 바에서 술을 마시다 우발적으로 시비가 붙어 살인을 저지릅니다. 경찰에 쫓기던 그는 무턱대고 어느 집에 숨어들어 갔는데 그 집은 제인(조안 폰테인) 이라는 젊은 여자가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제인은 이 낯선 방문객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그를 숨겨주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제인은 다음날 출근을 하고 손더스는 제인의 방 안에서 젊은 군인의 사진을 바라봅니다. 그는 제인의 애인이었지만 전사했습니다. 그 집을 빠져나온 손더스는 퇴근하는 제인에개 접근하고 제인을 그를 귀찮아 합니다. 손더스는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제인에게 접근하고 제인은 처음에 무척 경계를 하였지만 경마장에 가서 돈을 따고 즐겁게 하루를 보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두 사람은 모두 가족이 없는 외로운 처지이고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며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건달 손더스와 어엿한 직업을 가진 제인, 두 사람은 열차를 타고 가다가 손더스가 어떤 나이든 남자와 시비가 붙어 그를 폭행하고 그런 모습에 질린 제인은 실망하여 도망치고 제인을 쫓던 손더스는 말리던 경찰까지 폭행합니다. 결국 두 건의 폭행사건으로 손더스는 몇 달간 감옥 신세를 지게 됩니다.
민폐덩어리 남자와 어쩌다 본의 아니게 엮이게 된 여자가 그로 인하여 귀찮은 피해를 입게 되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제인은 워낙 착한 여자라서 출옥한 손더스를 따뜻하게 맞아 주고 오히려 그를 병원의 트럭 운전사로 추천해 줍니다. 이렇게 해서 극적으로 갱생의 길을 걷게 된 손더스. 그는 성실히 일하며 모처럼 자리를 잡아가고 제인과도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새출발이 결코 쉽지 않은 법, 손더스의 주변에 해리 라는 악당이 나타나고 해리는 바에서 있었던 살인을 목격한 인물로 그걸 빌미로 손더스를 협박, 그에게 범죄를 강요합니다. 해리의 협박과 제인에 대한 사랑, 과연 손더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필름 느와르 장르지만 워낙 그 시대에 출중한 필름 느와르 장르가 많아서 이 영화는 비교적 평범한 작품입니다. '로라 살인사건'을 비롯해서 '이중배상' '상하이에서 온 여인' '길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울린다' 등 1940년대 필름 느와르 걸작은 무척 많지요. 그런 영화들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스토리도 너무 작위적이고 빈약하지요.
버트 랭커스터는 한 시대를 풍미한 톱 스타였지만 1948년 당시는 데뷔한 지 3년차에 불과한 아직 신인급 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미 이카데미 주연상도 받았고 '레베카'나 '제인 에어' 등에 출연한 조안 폰테인이 훨씬 더 인지도가 높은 시절에 공연한 것입니다. 조안 폰테인은 한참 전성기 였고 버트 랭커스터는 이제 슬슬 이름을 알려가던 시기였지요. 버트 랭커스터가 나이가 더 많았지만 워낙 늦은 나이인 33세에 데뷔를 해서 인지도가 낮을 때였지요.
살인을 한 것을 숨기고 살아가는 남자와 그와 만나 갱생의 길을 걷게 하는 착한 여자, 그리고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범죄를 꼬드기는 악당 등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름 또 외로운 남녀가 만나 의지가 되면서 짧은 행복도 누리는 내용이지요. 영화가 1시간 20분도 안되고 너무 허겁지겁 갑자기 끝을 맺는 느낌입니다. 별로 뛰어난 수작은 아니라서 개봉이후 오래도록 잊혀졌고 방영된 기억도 없습니다. 현재 희귀작의 반열에 올라 있지요. 별로 복잡하거나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제가 접한 모든 필름 느와르 장르 중에서는 하위권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뭐 나름 볼만한 작품이고 재미도 있지만 막강한 필름 느와르 목록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초라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긴 전쟁, 그런 시대가 남긴 상처받거나 방황하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 범죄물이지만 시대적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이지요. 1940년대 유독 범죄 영화인 필름 느와르 장르가 많았던 이유도 20년대 금주법 시대, 30년대 경제 대공황 40년대 세계대전 등 여러 아픈 역사를 거치면서 피폐해지고 상처받은 세상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표 장르가 된 것입니다. 미국 감독이 연출했지만 영국이 배경이라는게 특징입니다. 오래된 흑백 고전이지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버트 랭커스터는 시대극, 서부극, 전쟁물, 드라마, 미스터리, 사회물, 활극 등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인 배우인데 초기에는 시대의 영향인지 필름 느와르 장르에 많이 출연했습니다. 데뷔작 '살인자'도 그렇고, '반항' '크리스 크로스' '살인전화' 그리고 이 영화까지.
ps2 : 조안 폰테인은 좀 뭔가 불안정한 남자를 위해서 희생이나 헌신을 하는 역할이 어울립니다. '레베카' '제인 에어'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그리고 이 영화까지 다 그런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미모를 가진 배우지요.
ps3 : 1948년 영화지만 개봉이 안되었다가 버트 랭커스터의 인기가 우리나라에서 높아지자 1959년 뒤늦게 개봉이 되었습니다.
ps4 : 특이하게도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채찍으로 때리는 태형을 같이 선고하는 처벌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도 흉악범들에게 그런 태형을 선고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출처] 피묻은 손을 애정으로 씻어다오 (Kiss the Blood Off My Hands, 48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