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밤에 달린다
원제 : They Drive by Night
1940년 미국영화
감독 : 라울 월슈
출연 : 조지 래프트, 앤 쉐리단, 아이다 루피노
험프리 보가트, 게일 페이지, 알란 헤일
로스코 칸스, 존 리텔, 조지 토비아스
'그들은 밤에 달린다'는 1940년 흑백 영화입니다. 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다작 연출을 하며 남성적인 마초 영화를 많이 연출한 라울 월슈의 작품이지요. 일부 평단에서는 말론 브란도나 캐리 그랜트 급 배우로 평가받는 험프리 보가트가 출연합니다. 하지만 험프리 보가트가 아직 스타덤에 오르기 이전의 작품으로 그는 보조 역할이고 조지 래프트가 주인공입니다. 이 영화에서 조지 래프트는 정말 굉장히 호감 가는 주인공입니다. 왜냐하면 잘생기고 훤칠하고 잘 나가는, 소위 '잘난' 주인공은 영화에서 참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지 래프트가 연기한 조 라는 인물은 평범한 외모, 작은 키, 많이 배운 인물도 아니고, 가난한 남자입니다. 그렇지만 매우 성실하게 살아가는 선량한 트럭 노동자 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이지요. 그래서 더욱 친근하고 호감이 가는 역할입니다.
주인공이 호감이 가는 인물이지만 굉장한 능력자가 아니라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이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걱정을 꽤 많이 하게 됩니다. 뭔 장르인지 자세히 살펴보고 본 영화는 아니지만 조지 래프트나 험프리 보가트, 아이다 루피노 이런 배우들이 나오는 1940년 흑백영화라면 대략 장르 예측이 그리 어렵지 않지요. 이 시대는 갱스터 무비에서 필름 느와르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험프리 보가트는 그런 장르에서 악역 조연으로 많이 등장하던 인물입니다. 그는 갱스터 무비 시대에 조지 래프트, 제임스 캐그니, 에드워드 G 로빈슨 이런 배우들을 보조하는 악역 조연으로 많이 나오면서 10여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조연 배우로 인생을 마쳤다면 어네스트 보그나인이나 칼 말덴 급의 배우로 남았을 수도 있는데 40년대 '말타의 매'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가 히트하면서 일약 전설급 배우로 급부상했습니다. 42세에 스타가 된, 참 보기 드문 인물이지요. 그것도 초고의 탑 배우 레벨에 올랐으니.
트럭 운전사 형제 조(오른쪽)와 폴
식당에서 만난 여종업원 캐시에게
호감을 느끼는 조
트럭 살 돈이 없어 할부금을 갚는
트럭이라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 형제
악덕 도매업자에게 화를 내는 폴
그러나 '그들은 밤에 달린다'는 조지 래프트의 영화입니다. 그의 인생영화 라고 할만한 작품이지요. 평범해서 너무 호감이 가는 주인공이고 영화 보는 내내 그의 안위가 걱정되는 내용입니다. 그가 연기한 조는 트럭 운전수인데 동생인 폴(험프리 보가트)과 함께 일을 합니다. 폴은 유부남이라서 아내인 펄(게일 페이지)이 많이 걱정하지요. 트럭 운전이 어디 쉽나요? 운전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제목처럼 밤에도 달려야 할 정도로 빡쎈 노동시간이 고단한 것이지요. 졸음 운전의 위험은 늘 있지요. 성실하게 살아가는 두 형제지만 노동자의 삶이 원래 힘겹고 고단하지요. 더구나 1930년대 미국은 극심한 경제 대공황 시대를 겪었습니다. 두 사람이 하루 벌이로 겨우 겨우 입에 풀칠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조가 미혼인 것도 경제적인 어려운 상황이 영향을 주었을테고, 폴은 결혼은 했지만 일부러 아기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불안정한 삶이니 만큼 선량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이 계속 걱정되지요. 배우들의 성향을 보면 분명 뭔가 사건이 일어나는 영화일 테고. 그래서 둘에게 무슨 큰 불행이 닥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들지요.
영화의 절반은 트럭 운전수의 애환을 담은 내용이고 후반부 절반은 치정 범죄극이랄 수 있습니다. 성실하고 선량한 서민 조에게 큰 사건이 세 번 정도 일어납니다. 뭐 한 번은 다른 사람의 사건이긴 하지만 두 형제가 트라우마를 겪을 만한 일이었죠. 별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불안 불안하게 보게 되는 이유가 주로 비극적 범죄물에 많이 등장한 배우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뭔가 안 좋은 사건이 곧 터질 것 같지요.
식당을 때려 친 캐시를 태워준 형제
이로 인하여 캐시와 조의 인연이 시작된다.
삶이 힘겹고 고단한 조, 하지만 더 힘든
캐시를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조
나이 많고 투박한 운수업계 사장과
불만족스러운 부부 생활을 하는 라나
라나는 은근 조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남편의 과로한 트럭 일을 걱정하는 아내
조연 시절의 험프리 보가트의 모습
조는 식당에서 일하던 캐시(앤 쉐리단)라는 여자를 알게 되고 주인의 치근댐 때문에 홧김에 식당일을 때려치운 캐시를 도와주면서 그녀와 친해집니다. 둘이 사랑하게 될거라는 건 뭐 당연하지요. 다만 삶이 안정되지 못한 조와 그런 조에게 조차 도움을 받아야 하는 캐시라서 결혼할 형편은 되지 못하죠. 거기에 또 어떤 엄청난 사건까지 일어납니다. 일이 잘 풀려도 모자랄 판에 안쓰러운 사건까지 벌어지지요.
아이다 루피노는 뭔 역할일까요? 영화의 후반부 절반은 그녀가 주도합니다. 인형 외모의 여배우 아이다 루피노는 끼있는 미모의 유부녀 라나 역할입니다. 라나는 나이 많은 운수회사 사장과 결혼했지만 당연히 늙고 투박한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녀가 눈독을 들이는 인물은 바로 조, 영화의 후반부는 캐시와 이미 사귀고 있는 조를 유혹하려고 별 짓을 다하는 라나의 선을 넘는 행위와 그런 라나에게서 꿋꿋이 버티는 조의 힘겨루기 같은 느낌입니다. 아이다 루피노는 이 역할에 꽤 잘 어울리더군요. 선역도 어울리는 배우지만 이렇게 끼 있는 암여우 같은 역할도 잘 어울리더군요. 젊은 미모의 사모님이 사장이 철석같이 신뢰하는 투박하고 성실한 남자를 집요하게 유혹하는 내용, 위태위태 합니다. 더구나 어려울 때 함께 만나서 굳은 신뢰로 연인이 된 캐시라는 여인도 있으니.
충분히 쉬면서 운전하기를 바라는 폴
하지만 더 부지런히 일하고자 하는 조
돈 보고 결혼한 남편의 투박함에
짜증이 난 라나
라나는 조에게 눈길을 계속 주지만....
파티에서 노골적으로 조에게 들이대는 라나
자신을 사모님으로만 대하는 조의 태도가
불만인 라나
노동자의 애환과 그런 상황에서도 성실히 열심히 일하는 모습도 잘 다루어졌고, 후반부에는 치정 범죄극으로서의 재미도 잘 다루어졌습니다. 시종일관 응원을 보내고 싶은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보는 영화지요. 잘난 주인공이 잘난 척하고 잘 나가는 영화들이야 넘처나지만 이렇게 평범하고 성실한 주인공의 영화가 더 재미나더군요. 조지 래프트는 아주 적역이었습니다. 캐시 역의 앤 쉐리단도 선량한 여주인공이지만 그 캐릭터보다는 아이다 루피노의 악녀 역할이 훨씬 재미난 캐릭터입니다. 라나 터너나 에바 가드너, 리타 헤이워스 같은 완전 프로급의 독사같은 팜므 파탈과는 다른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고 철없고 맹목적인 악녀라서 오히려 동정이 가기도 합니다. 마음 악한 남자라면 정말 쉽게 넘어갈 만한 캐릭터죠. 조는 우직한 인물이라서 유혹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역시 남자는 우유부단하면 안되고 중심이 바로 서야 한다는 걸 조 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잘 보여줍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혹을 이겨내고 올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교훈을 주는 내용입니다. 훈훈한 내용이지요. 마지막 장면은 꽤 감동적입니다. 잘나고 많이 배우고를 떠나서 주어진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더 큰 꿈을 향해서 나아가면 조금씩 행복이라는 것은 다가온다... 뭐 그런 교훈이 느껴집니다. 진정성은 통한다는. 어려움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헤쳐나가야 한다는 교훈도 있고. 그렇다고 열심히 살아가는 노동자들만 나오면 영화가 밋밋할텐데 아이다 루피노가 악역을 자처하여 영화에 쏠쏠한 재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악역이지만 꽤 매력적인 배우라는 걸 입증한 영화입니다. 감독으로도 꽤 재능이 있는 아이다 루피노인데 그녀의 전성기 시절 영화가 우리나라에 많이 풀리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영화도 '어둠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나오기 전과 나온 후에 영화의 분위기와 재미가 확 달라집니다.
라나의 선을 넘는 위험한 유혹
집요한 라나의 유혹에도 목석같은
남자처럼 행동하는 조
집착적인 사랑이 애증이 되고....
조의 연인 캐시를 외모가 평범한 여배우로
캐스팅 했어야 좀 더 볼만한 영화였을텐데
캐시 역의 앤 쉐리단의 미모도 출중했다.
트럭 운전수를 주인공으로 한 보기 드문 영화로 성실한 노동자 주인공이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도 잘 극복해 나가면서 꽤 만족스러운 결말로 이끌어낸 작품이지요. 영화의 완성도도 높고 재미도 뛰어납니다. 다작 감독인 만큼 라울 월슈는 영화에 기복이 있는 인물이지만 아무래도 50년대 이후의 작품들보다 40년대 작품들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의 영화 중 사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유사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면 딱 황정민 같은 배우가 등장하면 어울릴 내용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유혹을 뿌리치는 결단도 중요하지만 어려울 때 믿어주었던 사람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도 참 중요하지요. 이런 부분에서 조지 래프트가 연기한 조는 참 호감가는 주인공이지요. 당장 눈앞의 쾌락만 쫓는 사람들과는 다른.
ps2 : 1940년대에도 자동 전기 센서 시스템이 있다는 게 놀랍네요.
ps3 : 예전에 주 52시간 노동 문제로 시끄러울 때 예외로 해야 하는 업종 중 트럭운전이 거론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딴건 몰라도 졸음 운전의 위험이 정말 큰 트럭운전이야 말로 오히려 가장 먼저 주 52시간이 적용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졸음 운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피곤할 때 장시간 운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운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텐데.
ps4 : 국내에 개봉된 기록은 찾을 수 없던 영화입니다.
ps5 : 이 당시 미국에서 핀볼 게임이 참 인기였나 봐요. 요즘 여러가지 복고 문화가 성행하는데(대표적으로 달고나) 핀볼 게임도 생기면 좋을 것 같네요.
ps6 : 캐시 역의 앤 쉐리단도 미모가 제법 출중한 여배우인데 이 캐릭터도 평범한 외모의 여배우가 연기했어야 아이다 루피노와 좀 대비가 되어 그럴 듯 했을 것 같습니다. '붐타운' 같은 영화처럼 말이죠. (물론 그 영화는 지구 최고의 미인으로 불린 헤디 라마와 클로데트 콜베르의 외모 차이가 너무 크게 격차가 나서 문제였지만)
ps7 : 조지 래프트가 형으로 나왔지만 실제 나이는 험프리 보가트가 2살 많습니다.
[출처] 그들은 밤에 달린다 (They Drive by Night, 40년) 조지 래프트의 인생영화|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