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
푸른 가을 하늘은 추억 속 낭만이다.
누런 벼이삭 고개 숙이면
동네 학교 운동장에 만국기가 내걸린다.
젊은이들은 경운기로
가마솥과 장작을 실어 나르고
아낙네들은 모처럼
매니큐어를 꺼내 바른다.
그 뵙기 어렵다는 면장님도
머릿기름 잔뜩 바른 가르마를 타고
귀빈석에 앉아 반쯤 누운 채로
지긋이 먼 산을 응시한다.
산속 나뭇가지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던 딱새도
구경 온다는 가을 운동회 날이다.
작은 동네는
아이들 함성으로 뒤덮이고
공부와 담을 쌓던 개똥이 녀석도
연필 한 자루와 공책 한 권에
세상 다 가진 듯 싱글벙글이다.
5학년에서
달리기 제일 잘 한다는 춘식이 녀석은
잔머리 태훈이 다리에 걸려
꼴찌를 하고 씩씩거리던 차에
누이가 건넨 환타 한 병에
억울함이 씻은 듯이 나았다.
어른들의 잔치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내내 얼근했던 김씨 아저씨가
기어이 상다리 하나 부러뜨린 후에야
아낙들의 성화로 서둘러 끝이 났다.
채 식지 않은 가마솥과 함께
경운기 한 귀퉁이에 실려 가며
무슨 못 볼 걸 보았는지
히죽히죽 웃는 김씨 아저씨도
평소 점잖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지켜보던 뭉게구름이
절로 행복한 미소 지으며
저녁 노을 속으로 사라져 간다.
추억 속 기억 한 켠에서
가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소싯적 가을 운동회는
동화 속 한 조각 푸른 낭만이다.
- 추억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미지 : 사춘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