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외한적공비구[物外閑跡共比丘]
(물물에 욕심없어 스님과 같네)
보은산은 남향이어서 산속이 유난히 따뜻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산속에서는 어느새 진달래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김삿갓은 진달래 꽃 봉우리가 터진 것을 발견하자
오랫동안 몸 속에 잠재해 있던 방랑벽이
별안간 가슴이 설레도록 용솟음쳐 올라왔다.
(아아, 나도 모르게 어느새 대지에는 봄이 왔구나.
나도 이제는 방랑의 길을 떠나야 할 때가 왔구나!)
김삿갓은 무의식중에 그런 충동이 느껴져
진달래 꽃을 그윽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안 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봄이 왔으니, 나도 이제는 길을 떠나야 하겠소이다."
그리고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작별시를 한 수 써 보였다.
[원객유유임병신(遠客悠悠任病身)
먼 나그네 오랫동안 병을 빙자하여
군가몽은 차봉춘(君家蒙恩 且逢春)
댁에 폐를 끼치며 봄을 맞았소
춘래각자 동서거(春來各自 東西去)
봄이 와서 동서로 뿔뿔이 헤어지면
차지간화 시별인(此地看花 是別人)
이곳 꽃 구경은 다른 사람과 할 것이오.]
김삿갓은 길 떠날 결심을 한 수의 시로써 안 진사 에게 알려 준 것이었다.
안 진사는 김삿갓의 시를 들여다 보고 크게 놀랐다.
"선생이 여기를 떠나시다니, 무슨 말씀이시오?
건강이 쾌유하시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지금 길을 떠나시면 안 되시옵니다."
하며 안 진사는 기를 쓰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한번 결심한 것인데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그냥 눌러 있을 김삿갓은 아니었다.
"나는 워낙 방랑 생활을 끝없이 계속하다가
언젠가는 길에서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 가려는 나를 굳이 붙잡지 말아 주세요."
김삿갓의 결심이 이렇다 보니, 안 진사는 더이상 김삿갓을 붙잡을 수가 없다고 느끼며,
"길을 떠나신다면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하고 물었다.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웃어 보이며,
"내가 언제는 갈곳을 미리 정해 놓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던가요?
봄을 따라 북상하면서, 가지산에 있는 보림사와 용천사도 구경하고 싶고, 마음이 내키면 화순 동복에 있는 적벽강에도 한번 둘러 볼 생각입니다."
안 진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마침 잘 되셨습니다.
<동복>에는 신석우(申錫愚)라는 막역한 친구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편지를 써드릴 테니
동복에 가시거든 그 친구를 꼭 찾아 주십시오.
그 친구라면 선생에게 모든 편의를 정성껏 보아 드릴 것입니다."
이리하여 김삿갓은 신석우라는 사람에게 전해 줄 소개 편지 한 장만 받아 가지고, 기어코 강진 고을을 떠나고야 말았다.
김삿갓은 몸으로 봄을 느끼자 고집스럽게 방랑의 길에 오르기는 했으나, 먼 길을 걷기에는 몸이 너무도 쇠약해 있었다.
그러기에 강진에서 용천사를 거쳐 보림사까지 2백리도 못되는 거리를 보름만에야 가까스로 닿았다.
김삿갓이 진작부터 보고 싶었던 가지산 속의 명찰, 보림사를 구경하고 풀밭에 누워 피로를 풀며
자기 자신의 신세를 다음과 같은 시로 읊었다.
[궁달재천 등가역구(窮達在天登塏易求)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천명, 맘대로 안 되는것
종오소호 임유유(從吾所好 任悠悠)
나는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살아왔노라
가향북망 운천리(家鄕北望 雲千里)
고향 하늘 바라보니 천리길 가득한데
신세남유 해일구(身勢南遊 海一漚)
남쪽에 헤매는 신세 물거품과 같구나.
소거수성 배작추(掃去愁城 盃作箒)
술잔을 비로 삼아 시름을 쓸어내고
조래시구 월위구(釣來詩句 月爲鉤)
달을 낚시로 삼아 시를 낚아 오면서
보림간진 용천우(寶林看盡 龍泉又)
보림사 용천사를 두루구경하고나니
물외한적 공비구(物外閑跡 共比丘)
내 마음 욕심없이 스님과 다름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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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평35" 소설/김삿갓에서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