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간장 사리 / 이혜선
심상숙 추천
간장 사리
이혜선
시어머니 제사 파젯날
베란다 한 구석에 잊은 듯 서 있던 간장 항아리 모셔와 작은 병에 옮겨 부었다
20년 다리 오그리고 있던 밑바닥을 주걱으로 긁어내리자
연갈색 사리들이 주르륵 쏟아진다
툇마루도 없는 영주땅 우수골 낮은 지붕 아래
허리 구부리고 날마다 이고 나르던
체수 작은 몸피보다 더 큰 꽃숭어리들
알알이 갈색 씨앗 영글어 환한 몸 사리로 누우셨구나
내외간 살다 보면 궂은 날도 있것제
묵은 정을 햇볕삼아 말려가며 살아라
담 너머 연기도 더러 챙기며 사리 하나 품고 살거라
먼 길 행상 가는 짚신발 행여나 즌데를 디디올셰라
명일동 안산에 달하 노피곰 돋아서
어긔야 멀리곰 비추고 있구나*
이승 저승 가시울 넘어 맨발로 달려오신
어머니의 간장사리.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차용
(이혜선시선집『불로끄다,물에타오르다』,문예바다, 2024)
[작가소개]
- 이혜선 문학박사, 1950년 경남 함안출생,
=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업 ,
- 1981년 월간『시문학』으로 등단,
- 시집 『흘린 술이 반이다』 등 6권,
- 윤동주문학상, 동국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 평론상 등 수상, 세종도서문학나눔 선정(2016),
- 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현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시향]
이혜선 시인은 시와의 대련對聯을 위하여 살아온 듯 시인의 시편 뒤에 우뚝 서 있다. 깊은 신음을 넘어선 고즈넉한 어조가 시인과의 만남을 다행하게 맞아준다.
-내외간 살다 보면 궂은 날도 있것제
묵은 정을 햇볕삼아 말려가며 살아라
담 너머 연기도 더러 챙기며 사리 하나 품고 살거라
먼 길 행상 가는 짚신발 행여나 즌데를 디디올 셰라
명일동 안산에 달하 노피곰 돋아서
어긔야 멀리곰 비추고 있구나* -
시모의 파젯날에 이십여 년 전 담가둔 베란다 간장독에 갈색으로 영근 간장 사리를 주걱으로 긁어낸다.백제의 정읍사 노래에 외출 나간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녀자처럼 부덕婦德에 관한 시모의 말씀을 되새기며 고인의 고단했던 삶을 기리는 시이다. 뜻깊은 시를 대하며 삶에의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곳에 뿌리내려 있다는 생각이다.
글: 심상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