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잊고 있었더니 운동치료를 맡으신 선생님이 병실로 올라오셨다 .
토요일이고 본래 담당하시던 선생님이 교육을 가신다고 들어서 지레 포기하고 있었는데
대신 맡으신 분이 운동실에서 기다리다 안오니 직접 오신 것이다 .
“ 당신은 왜 생각 못했어 ? 난 다른 분이 해줄 거는 생각 못했네 .”
“ 생각했었어 !”
“ 그런데 왜 말 안했어 ?”
“ 생각했다니까 !”
“ 그러니까 왜 말 안했냐고 !”
“ 생각만 했지 .”
“........”
하긴 내가 왜 생각 못했냐고 물었으니 ....
예수님이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 .
곧 잡혀가고 채찍을 맞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담하고 너무 괴로우셨다 .
제자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갈 일에 환영했던 사람들이
침 뱉고 돌아서서 욕할 모습을 떠올리니 외롭기조차 하였다 .
그런데 이마에 땀이 피가 맺히도록 기도하시고 난 결과는 ?
예정되어 있던 일은 몽땅 그대로 진행되었다 .
하나도 바뀌거나 덜어진 것 없이 !
바울은 몸을 가시처럼 찌르는 병을 떠나게 해달라고
무지 심하게 기도를 했다 . 결과는 ?
그대로 병을 안고 죽을 때까지 살았다 .
그럼 기도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아무 사실도 변하지 않고 바라는 것들은 요지부동 그대로인데 ,
이 지독한 나쁜 상황이 좀 바뀌고 회복되게 해달라고 참 많이 기도했다 .
얼른 끝도 나고 어둡고 무거운 마음들 거두어달라고 ...
결과는 ?
좋아지는 것도 같다가 나빠지기도하고 더 망가진 것도 같다 .
보는 각도에 따라 희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상태다 .
그럼 기도는 왜 하라고 하셨을까 ?
단지 믿음이 약하여 ? 성의가 부족해서 ? 아님 더 기다려야 한다고 ?
이재철 목사님의 ‘ 사도행전 속으로 ’ 책을 보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이제 말하는 기도는 좀 줄이라고 !
기도가 결과를 바꾸기 위한 요청의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
예수님은 그 참람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시작하신 기도를 드린 후에
아주 담담하고 평화롭게 말씀하셨단다 .
‘ 이제 내려가자 ! 모든 예정대로 하러가자 !’
두려움도 , 피하고 싶던 마음도 다 평안을 회복하시고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걸어가시는 결단을 내리셨다 .
피해서 멀리 도망가거나 몸의 수명을 많이 늘려 살다가 죽으시는 길이
기도의 응답일까 ? 아님 죽으시고 부활하신 길을 따라감이 기도의 응답일까 ?
사도바울은 하늘의 은혜가 네게 넘친다는 응답에 아멘 ! 하고 다시는 병 낫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
그리곤 질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요한 목숨을 스스로 내어 놓으시고 순교를 하셨다 .
더 확신에 차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
돌아보니 우리도 기도의 응답을 많이 받았다 .
죽을 만큼 심했던 공포감도 넘었고 ,
길거리로 나가 앉을 것 같은 조마조마했던 불안도 다 사라진채로
몇 년을 그럭저럭 감사하면 넘겼으니 !
결과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면 예수님과 바울이 받은 기도의 응답을
우리도 받으며 살았다 .
영원하지 않는 세상의 결과를 바꾸는 것보다 ,
영원한 영혼의 평안과 확신을 바꾸어주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 방식의 응답인가보다 .
그래서 기도는 내 말을 끝까지 올려 보내는 지독함이 아니고
내려오는 말씀과 배려를 알아듣는 수용의 통로인가보다 .
말로 하는 게 아니고 가슴으로 듣는 것이고 ,
손에 얻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들을 비워내는 일들이라고 ...
재물도 몸도 병을 가진 채로 목숨을 드리는 날 까지 ,
그런데 이 기도는 예배당에서만 드려서는 안 된다고
이재철 목사님은 이야기하신다 .
영원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삶으로 , 실천으로 해야 한다고 !
‘ 생각만 ’ 해서는 안 되고 , 계속 바라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
오늘도 기도를 시작한다 .
입 다물고 요구사항 떨쳐버리고 백지 같은 마음 되려 애쓰며
‘ 무슨 말씀인지 잘 안 들려요 , 조금만 크게 해주세요 .
죄송한데 한 번 더 말해주실래요 ? 못 들었어요 !‘
아님 ‘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 그러면서 !
첫댓글 진정 주님이 그대와 함께 머무실 것입니다 ^^ 끝없이 애끊는 사랑으로 ^^ 아멘
늘 계셔주는데도 제가 자주 몰라줍니다. 깜박 깜박! 하면서...
어? 안보이네! 이러면서...ㅎㅎ
제 경우 중도 장애를 입은게 아니고 생후 7개월만에 앓은 소아마비로 정상인의 삶 의 세계는 아예
모르기에 장애 그 자리에서 울고 웃습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부인처럼 중도에 육신의 불편함에 매여 있다면 아마도 더 절실하게, 처절하리만큼
전능자의 자비를 바라리라 생각 됩니다.
희망으로2님!!! 지금의 고난 속에도 윗 분의 섭리를 체험 하시며, 더 크신은총, 더 강한 치유의 손길을
바라실때 그 분의 치유의 역사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분의 계획대로 역사 하심을 믿으시고....
그래서 닉네임 처럼 희망속에서 살아가시길 빕니다.
낙심은 금물이오메... 다시 기도 하세요.
낙심은 금물! 쉬지말고 기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고 순종의 대상이신것 같습니다.
생명이 그렇듯,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