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를 공부하다가, 어! 뭐지라는 생각을 잠시 갖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아 정조가 아들의 장인으로 미리 낙점한 동반자 관계였던 풍고 김조순.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연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는 죽음을 앞두고, 어린 나이로 즉위한 세자(훗날 순조)의 안위를 김조순에게 부탁했고,
그에게 세상을 올바로 다스릴 도리인 세도(世道)를 맡겼습니다.
김상헌 - 김수항 - 김창집 - - - 김이중 으로 이어지는 안동김씨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전형적인 유학자로,
문장에 뛰어나 규장각검교제학으로 홍재전서, 열성어제 속집 간행에도 참여한 당대 최고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1789년 청나라로 가는 동지사 사절단에 서장관으로 참여하여, 청나라 학자들과 만나
깊이 있는 학술적 교류를 가졌습니다. 그는 평소 소설을 좋아하여, 예문관 숙직 시절에 연애 소설을
읽다가, 정조에게 적발되어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반성문이 너무 잘 되어서,
정조로부터 극찬을 받은 좀 특별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소설을 단지 탐익만 하지 않고, 아예 자신이 직접 무협소설인 [오대검협집] 을 씁니다.
이 책을 읽고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노론의 고리타분한 학자, 권세가, 세도정치를 연 인물로만 알았던 김조순이 이런 책을 쓴다고!
예전에 [화랑세기]를 공개한 박창화 선생집을 찾아가, 그의 유고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은
논어 등 많은 유교 경전을 베겨서 책으로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박창화는 전형적인 유학자로 삶을
살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이 박창화가 매우 음란한 [을불대왕전]을
직접 창작했다고 주장할 때, 저는 유학자가 어찌 그런 책을 직접 쓸 수는 없으므로, 이 소설은 창작이 아닌
베껴쓴 것이라고 단언했었습니다. 술이부작(述而不作), 즉 기술하되 지어내지 않는다른 공자의 학문적
태도를 이어받아 박창화가 그저 옮겨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박창화가 고대의 성풍습, 생활상을 보고
저윽이 당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김조순의 [오대검협집]을 읽은 후, 다시 박창화를 생각해보니 유학자인 박창화도 자신의 관심사를 더욱
분명하게 택해서 책을 옮겨 적거나, [강역고]처럼 직접 창작을 할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유학자라고 해서, 고리타분한 명분이나 학문적 편협을 드러내는 것은 남들이 볼 때만이 아닐까,
유학자도 개인적으로는 호기심 많은 인간으로, 겉으로 드러난 면모와 속내는 크게 다를 수도 있다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금 일깨우게 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오대검협전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득, 선생님께도 예상치 못한 관심사가 있으신게 아닐까 궁금해지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