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환 토마스(한국외대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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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식민기의 참혹한 시대를 몸소 살았던 모든 분들은 몸소 겪었던 일본의 만행에 치를 떨며 분개하신다. 강제 징병과 징용, 양민 학살과 고문, 생체실험 그리고 성노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잔악한 죄악을 어찌 일일이 열거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그러한 일제의 죄악상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일본인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잔악한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고 남의 영토를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뻔뻔한 거짓말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후쿠시마 원전 문제로 국제사회에 근심거리를 주고 이웃 나라 먹거리까지 폐를 끼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잡아떼는 일본의 궤변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는 극우파 정치인들은 더 나아가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선동하고 있다. 거리에서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스미마센(미안합니다)!"을 연발하는 이들이 이웃 국민들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모순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버지께 그 의문점을 여쭤보면서 궁금하던 것이 다소 해소됐다. 아버지의 냉소적인 답변은 "그 사람들 다 애국자라서 그래"였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에게 정직이라는 개인적 가치관은 '애국'이라는 국가적 가치관과 배치될 때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인에게는 개인적 윤리와 사회적 윤리 그리고 국내용 윤리와 국제용 윤리가 별도로 존재하는 셈이다. 이웃 나라를 강탈하고 선량한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다수의 일본인들 역시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정직과 배려의 덕목을 가르치는 모범적인 부모일 것이다.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고전이 된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1932)에서 개인 윤리와 국가 윤리 사이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본성적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이타심을 지닌 개별 인간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이기적 충동에 의해 유지되는 집단은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합리성보다는 폭력과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집단인 국가는 근대 이후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으로서 국민의 애국심을 통해 개인의 희생적 이타심을 국가의 이기심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이타주의에는 자아의 한계를 국가에 투영하려는 욕구도 반영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개인의 이타심과 이기심이 결합해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국가이기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라인홀드 니버는 목사이자 신학자였지만 국제 질서의 정치적 폭력에 대해 종교가 담당하는 역할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이상주의는 사회를 구원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국가 정책을 견제할 수는 있으나 현대 사회의 복잡한 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집단도 순수한 사랑의 감화를 받을 만큼 충분한 상상력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국가이기주의가 제국주의의 형태를 띠고 약자를 착취할 때 이에 대항하는 물리적 세력의 필요성을 정당화하고 당시 일제에 항거하던 한국인들 편에 서기도 한다.
지금 일본은 미국과 밀월관계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가장 왕성한 힘의 확장을 꾀하면서 니버가 말한 국가이기주의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국제정치적 곡예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기분을 낼지 몰라도 사실 일본은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지난 역사가 입증하듯이, 우선 군국주의는 타국민들의 생명은 물론이고 자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며 죽음의 광란을 벌인다. 실제로 '가미카제 특공대의 아버지'로서 4000명의 젊은이들을 선발해 사지로 내몰았던 일본 해군제독 오니시 다키지로는 2000만 명이 죽으면 제국을 지킬 수 있다고 호언한 바 있다. 그러나 자국민의 희생보다도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더욱 아파해야 할 것이 있다. 정직한 일본인의 인격과 문명국가 일본의 국격에 대한 최소한도의 믿음마저 국제사회에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니시 다키지로는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다음날 자신의 명령에 따라 산화한 젊은이들에게 사죄하면서 할복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젊은이들에게 일본의 재건과 국제평화를 당부했다. 그가 자결할 때 쓴 칼은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서 보존돼 있다.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일본의 정치인들은 그 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이루지 못한 세계 패권의 꿈일까 혹은 진정한 정의가 꽃피는 세계 평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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