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포 철길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는 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진 시간의 흐름을 불연속적으로 끊어 구분함에 있다. 동서남북 방위의 구분도 그렇다. 이렇게 표현하는 원리를 언어의 특성에서 찾으면 분절성이다. 보신각 제야의 타종 행사를 비롯해 전국 각처 해돋이 명소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을 것이다. 새해 아침 나는 창원중앙역에서 송정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순천을 출발해 포항까지 하루 한 차례 오르내리는 열차다. 진례터널을 빠져나가 화포천을 지날 때 엷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각임에도 사진작가는 철새들을 겨냥해 프리즘을 맞추고 있었다. 한림정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 삼랑진에선 경부선 선로를 따라 원동 물금 화명 사상 부전에 이르렀다. 부전에선 최근 복선 공사가 완료된 동해남부선을 따라 해운대를 지나니 송정이었다.
나는 송정역엔 처음 내려 보았다. 더 나아가면 기장 좌천 월래 남창 태화강 호포 불국사 경주 안강 포항이 종점일 테다. 예전 동해남부선 철길은 해안선 가까이 바다를 조망하기 좋았다. 그런데 복선화가 되면서 내륙으로 선로가 놓여 바다를 조망하기엔 거리를 두었다. 송정역에서 바다 방향으로 나아가니 초등학교와 시장이 나타났다. 송정항으로 가니 어선들이 여러 척 정박해 있었다.
방파제 둑에서 무변광대하게 펼쳐진 동해남부 바다를 바라보았다. 내가 사는 마산 근교에서 보았던 호수 같은 바다와는 비교할 수 없이 광활했다. 아마 두어 시간 전 해돋이를 보기 위해 해운대와 송정 일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것이다. 송정 어항 곁에는 죽도공원이 있었다. 예전엔 섬이었으나 이제는 뭍과 이어져 있었다. 해변 송일정에 오르니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였다.
죽도공원에서 활처럼 원호를 그리는 백사장을 따라 걸었다. 백사장엔 해맞이를 끝낸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해운대 백사장보다 규모가 작아도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이 찾을 듯했다. 백사정이 끝난 지점에서 해안선 따라 계속 걸으니 구덕포였다. 구덕포는 작은 어항이었다. 등대가 있는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찌에다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방파제가 끝난 갯바위로 내려가 보았다.
수없이 밀려왔다 사라진 파도에 암반은 마모 침식되었다. 철석거리는 파도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는 점심때가 조금 일렀지만 갯바위에서 가져간 도시락을 열었다. 보잘 것 없는 찬이었지만 왕의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눈앞에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비웠다. 이보다 더 좋은 풍광에서 식사를 해 볼 수 없을 명당이었다.
점심 식후부터 본격적으로 송정역을 찾아온 목적을 수행했다. 폐선이 된 동해남부선 철길를 따라 걷는 일이었다. 철길로 오르니 해운대 청사포 방향에서 송정으로 걸어오는 걷기 마니아들이 다수 있었다. 청사포를 향해 돌아가는 산모롱이가 절경이었다. 청사포는 해운대와 인접한 작은 어항이었다. 청사포 포구 내려가니 횟집이 즐비하고 방파제엔 낚시꾼들이 고기 낚기에 여념 없었다.
다시 폐선 철길로 올라 남은 마지막 구간 해운대 미포까지 걸었다. 미포항을 앞두고 저 멀리 태종대와 오륙도가 보였다. 광안대교와 해운대 동백섬과 너른 백사장도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마천루처럼 높이 솟은 아파트들이 우뚝했다. 미포도 작은 어항이었다. 해운대의 삼포가 아까 지나온 구덕포 청사포와 함께 미포였다. 미포항에는 오륙도를 둘러오는 유람선 선착장도 같이 있었다.
해운대 백사장에도 해맞이 여운을 떨치지 못한 산책객들이 많았다. 나는 백사장으로 내려가질 않고 해안선 따라 계속 걸었다. 해운대 시장을 둘러보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아침에 내가 타고 간 열차는 나중 어둠이 깔릴 때 해운대역을 지나가기에 그 시각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창원행 버스를 탔더니 한 시간 남짓 걸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 해는 중천에 있을 때였다. 201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