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습 못한 미군유해 아직도 남북에 7,600여 구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95호(2019. 06. 15)
한국전 미군 유해 감식 진주현 연구원
피란민의 손녀 미 국방부 근무 - 유족 감사 인사에 사명감 충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올해 9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세요. 북에서 내려와 타향에 정착하셨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증손주들까지 보셨죠. 제 앞에서 감식을 기다리는 미군 유해 또한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였어요. 18세에서 25세의 젊은이들이 이름도 모르는 남의 나라의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거죠. 오랜 빚을 갚는 심정으로 한 구의 유해라도 더 가족들 품에 돌려보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진주현(고고미술사99-02) 동문은 미국 국방부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이하 DPAA)의 연구원으로, 2010년부터 10년째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감식을 전담하는 ‘코리아워팀’을 이끌고 있다. 현재까지 250구의 유해를 감식했으며, 북미 간 대화·협상이 급진전을 이뤘던 지난해 여름엔 서울과 판문점, 원산, 하와이 등을 오가며 유해송환 전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5월 27일 진주현 동문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송환되어 온 미군 유해의 상당수가 함경도 장진호 인근에서 발굴된 것들입니다. 할아버지가 남으로 내려올 때 중공군과 맞서 싸웠던 병사들이죠. 할아버지는 당시 중공군의 징집을 피해 3일만 미군을 따라가면 곧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속절없는 일이 돼버렸죠. DPAA에 근무하면서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한테서 어렴풋하게 들었던 6·25전쟁을 실감했어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도 커졌고요. 아직도 7,600여 명의 미군 유해가 남북한에 흩어져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해 감식에는 일반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감식법’이 주로 쓰인다. 이 방법은 비교적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활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번이라도 모계가 겹치면 구분이 어려워진다는 단점도 있다. 실제로 진 동문은 서로 다른 유족임에도 불구하고 DNA 매칭율이 같아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난항을 겪기도 했다. DNA 감식법이 한계에 부딪힐 때 진 동문의 주특기인 ‘뼈’가 빛을 발한다. 뼈에는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어 유해의 신원확인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생전에 운동을 좋아했는지, 식습관은 어땠는지,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 등 뼈를 통해 다양한 추적을 해볼 수 있다.
“DNA 매칭율이 같아 어느 유족의 유해인지 분간할 수 없을 때 허리에 남은 골절 흔적과 고인이 된 어머니의 편지가 결정적인 단서가 됐습니다. 미 국방부에서 보관하고 있던 편지에 아들이 14살 때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고 쓰였거든요. 이렇듯 가능한 많은 단서를 찾아내고 조합하면서 유해 감식이 이뤄집니다.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지난한 과정이죠. 그러나 유해를 찾으러 온 유족을 만날 때, 유족들에게서 감사의 편지를 받을 때 힘이 납니다.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학문이지만 인류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구나 싶어 뿌듯해져요.”
서울대에서도 지난 1996년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한국전 전몰 재학생을 발굴했었고, 2010년엔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순국 동문 기념사업’을 추진했었다고 소개하면서 난관을 겪고 있는 전몰 동문 발굴사업의 진척을 위해 짤막한 조언을 구했다.
진 동문은 “마음의 자세가 다른 것 같다”고 답했다. 한국전 전몰 미군은 멀리 타국의 전쟁터에서 숨져 미국에선 특별한 케이스인 반면, 한국인에게 6·25전쟁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겪은 불행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희생임에는 두말할 나위 없지만 특별한 케이스로 보긴 어렵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기록도 부실할뿐더러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릴 건가, 털고 일어나 미래로 나아가야지’ 하는 정서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서울대 졸업 후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을 떠난 진 동문은 스탠퍼드대에서 인류학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온두라스, 중국, 베트남 등 세계 각지의 발굴 현장에 참여해 인류의 진화와 기원, 사람과 동물 뼈대의 구조적·기능적 차이 등을 연구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