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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전체 (상주문경답사 우수후기) 길에다 쉼표를 찍자! 지난 34차 상주문경답사의 여운이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예쁜 글들이 많이 올라왔지만 그 중에서 비움님 글을 하나 뽑았습니다. ^^ 사진은 이번 답사에 참여한 모놀가족들 사진을 모아서 편집했습니다.
쉼표, 문장에도 쉼표가 있듯이 내 생활에도 가끔 '쉼표'가 필요하다. 그 쉼표는 주로 헐렁한 옷차림으로 방바닥에 배꼽을 붙이고 책을 읽거나, 백지에 낙서를 하거나,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그도 아니다 싶으면 송장처럼 자는 걸로 대신한다.
그러면서도 늘 내가 목말라하는 것은 물, 바람, 하늘, 달, 별, 햇볕, 들, 숲, 바다, 강 그리고 사람들이다. 여행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정말 쉼표를 찍어야한다 싶을 때는 그냥 집을 나선다. 그런 나에게 오월, 모놀식구들과 문경과 상주를 가게 된 것은 하늘빛 마음이었다.
-첫 걸음, 진남역(문경 철로 자전거)-
한때 석탄산업이 활발했던 문경. 그러나 세상은 늘 변화 속에 살아야 하는 살얼음판. 1980년대 말에 탄광들이 문을 닫아버리자 기차 운행도 멈춰버렸고 기찻길은 비와 바람을 맨몸으로 맞으며 녹슬어갔다. 그렇다고 폐철로를 끊어 엿사먹을 수도 없는 비통함을 애써 삭이는 중에 한 사람의 번뜩이는 기지로 생겨난 것이 철로 자전거. 이제 진남역은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실어다 줄 철로자전거 역으로 다시 태어났다. 오로지 '철로 자전거'를 탄다는 기쁨 하나로 진남역에 사뿐히 발을 들여놓았는데,
예기치 못한 반김. 아침 일찍부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다례원 원장님과 함께하신 문경 분들. 따뜻한 차와 먹기 아까울 정도로 곱게 빚어놓은 송편. 이름도 다 모를 말랑말랑 떡들. 문경의 인심은 그야말로 콩고물처럼 고소하고 찰떡처럼 말랑했다.
문경 찻사발. 흘러내린 듯한 저 유약 자국은 장인정신이 빚어낸 눈물일까. 혼일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찻사발은 담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품이라더니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난 차마 저 송화다식만큼은 반짝 집어들어 입에 넣을수가 없었다. 어느 분의 발에 채이면서 그냥 바라기만, 바라보기만, 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어떤 솔향이 퍼지고 문양이 새겨지는 것 같았으니까.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철로바닥. 풋풋한 낭만만을 생각하자면 '야호!'를 외칠 일이지만 한때 문경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이 배어있었다고 생각하니 잠시 숙연해졌다.
출발, 둥글게 둥글게 페달을 돌리며 무공해 자전거로 달리는 것만도 좋은데, 양쪽에 줄을 지어 우리를 환송하는 아까시꽃의 향긋한 내음. 정작 내 이름은 제대로 불러주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어릴 적부터 몇 해 전까지 저 꽃을 '아카시아'라고 잘못 불러줬다. 아카시아 나무는 뉴질랜드의 국화로 따로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 동안 얼마나 슬펐을까? "아까시 나무야, 이제는 너를 '아까시꽃'이라고 제대로 불러줄게."
살다보면 어찌 순탄할 수만 있을까. 우리는 때로 저런 컴컴한 터널도 입 꼭 다물고 묵묵히 통과해야 하는 것을.
고만고만한 아픔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구에게나 기쁨과 슬픔은 번갈아 오는 손님. 진득하게 버티고 살다보면 캄캄했던 터널을 저토록 후련하게 벗어날 때도 있는 게 우리들의 삶. 혹 지금 모놀 분들 중에 어려움을 갖고 계신 분이 있으면 '아자자' 힘내시기를.
막막한 터널을 애써 헤치고 살다보면 저렇게 서서히 햇볕도 들고 시원한 바람이 그간 고단해서 쳐졌던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겠지.
딸 다정아, 종아리가 아파도 열심히 페달을 밟는 거야. 누군가 밀어줘서 맹숭맹숭 가는 것보다 탄탄한 네 다리가 있어서 힘껏 굴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엄마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봤던 영화 '말아톤'이 생각나지. 힘들면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렴. 그러면서 다시 페달을 밟는 거야.
"다정이 다리도 백만불짜리!"
느림의 미학. 시속 30키로가 아니라면 놓칠 뻔한 저 아스라한 풍경들. 푸릇한 연둣빛 풀이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냇물의 도란거리는 소리들. 더러 물새들도 날아와 구욱구욱하며 저 물가 늪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겠지. 물 위에 부딪는 저 햇볕은 마치 수혈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나 자연을 좋아하는 까닭은 같은 것.
과거로 끝난 자리, 그 출발점에서 우리는 철로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돌아오기 위해 떠났던 것이다. 아, 오래도록 기억하고, 소중하게 아끼고 싶은 저 얼굴들. 어깨 언저리에 쏟아져 내리는 금싸라기 같은 햇볕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두번 째 발걸음, 대정숲-
아, 이 초록빛 은유. 누가 오월을 '금방 세수한 청신한 얼굴'이라 했던가.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거듭 내 하얀 웃도리를 살폈다. 어느 시인이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투명한 시'라더니, 아니다. 말짱 거짓말이다.
투명! '투명'의 대명사는 대정숲. 난 어디를 가나 내 기분 취하는대로 즉석 소망 한 가지씩을 뿜는다. '내 숨이 똑 끊어지기 전에 새벽에 이 숲을 산책할 수 있는 날을 장만할 수 있기를'
연리지. 나무도 이리 부등켜 안고 서로 사랑하는데, 사람이 살면서 용서 안 될 일이 있을까. 천년 만년을 살 것도 아니면서 서로 눈 흘기고 등 돌릴 일이 뭐가 있을까. 팔팔 끓는 마음까지야 아니더라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을.
-세번 째 발걸음, 쌍용계곡-
'쌍용계곡'은 물가에 세워진 저 자그마한 정자 '사우정 四友亭'에서 시작된다. 저런 곳에서 나를 한 달만 곰삭여봤으면.
아흐! '미치고 환장할' 저 호쾌함. 콸콸 내리치는 물소리는 숲과 하늘 언저리에 떠도니 후후, 제 아무리 뻣뻣한 감성을 가졌다 한들 저 물 소리에 취하고, 골짜기에 이는 저 바람에 취하지 않을 이 누가 있을까. 가슴이 쏴악 쓸고 내리는 것 같은 씻김. 해저녘까지 머물면 드러누운 용이 하품을 하며 일어나 달빛을 안주 삼아 한 잔 하자고 할 것 같은 계곡. 착각인가. "머물다 가라, 머물다 가라"
저 우람한 바위와 굽이치는 물줄기가 내 소매 끝을 붙잡고 조르는 것 같아 미적거리며 몇 번을 뒤돌아 봤다.
대체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이람? 속살이 훤히 보이는 저 물. 저쯤의 풍광이라면 마음의 자물쇠를 훌렁 풀어도 된다. 누구한테라도 말벗이 돼줄 수 있는 '풍류'가 내 안에서 슬슬 기어나온다.
생명력이라는 것 참 대단한 것! 바위를 뚫고나와서라도 살겠다는 저 어린 것들의 아우성. 저 목숨. 문득 나는 '헛살았다'는 생각이 드니 어쩌면 좋을까.
쌍용계곡 오르는 골짜기 바위 틈바구니에 핀 제비꽃. 이즈음에 나는 사람을 만나면 겉모습보다는 내면에 마음을 둔다.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별다른 치장 없이도,
말이 없이도 정답고 살뜰하여 그윽한 품격이 우러난다. 그래서일까? 여느 곳에서 만난 제비꽃보다 더 청초한 모습.
-네 번째 발걸음, 장각폭포
장각폭포,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에서 시작한 시냇물이 계곡을 굽이쳐 떨어지는 폭포. 폭포 옆에 아늑하게 서 있는 정자 '금란정'과 그 아래의 짙푸른 소가 아찔하면서도 멋진 경치를 빚어낸다. 태양인 '이제마' 드라마가 저곳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은 그렇다치고 영화 <낭만자객>의 처녀 귀신들이 전라로 목욕할 때는 오돌오돌 떨었지 싶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기절하듯 떨어져 고인 옥수. 아찔한 풍경에 차라리 빈혈이라도 일으켜 칵, 쓰러지고 싶은 심정. 저 곳에 밤이 이울면 어떤 분위기일까? 물에 비친 달이 흐느적거리고, 비파와 거문고 소리가 골짝을 울리고,,,,, 누구라도 이백이 되어 ‘이다지 밝은 달밤 어찌 잠을 자겠느냐’며 물소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일지도 모를 일.
-다섯번 째 발걸음, 신의터 농원으로-
막내 아이가 걸음을 배운 이듬해, 상주로 귀농했다는 단지님.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단아한 모습인데, 그 푸른 용기는 어디서 솟아난 걸까. 실제 모습을 뵈니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쳐다보고 싶은, 맑은 얼굴. 도시의 콘크리트 캐비닛에서 복작거리며 사는 나는 그저 단지님을 우러러 본다.
숨쉬는 항아리. 시골 아낙 궁둥이처럼 펑퍼짐한 독안에서 된장 곰삭는 소리가 '사바사바'들리는 듯. 단지님은 이 장독에 인생까지 함께 버무려 숙성시키시겠지.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게 가장 행복한 것을. 아무쪼록 '꼬꼬지 된장'이 전국에 '맛'으로 소문나 단지 님이 부자되시기를 빈다.
단지님 댁 소나무 숲, 이번 답사의 점심은 상주 '솔숲에서 바베큐'를 먹을 거라 해서 모놀 식구들 오종종 모여 앉아 삼겹살 근처 부위를 몇 점씩 구워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숲속의 만찬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100여 명의 모놀 식구들을 맞이해주신 단지님. 반찬 한 가지 한 가지가 엄마가 만들어줬던 그 맛깔스러운 맛. 마주 서서 밥 숟갈을 뜨는데, '모놀'이라는 끄나풀로 만나 것이 얼마나 좋은지.
정취가 물씬한 솔숲에서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가고, 바람소리와 솔숲 향기가 사람들의 체취와 함께 더욱 짙푸르러가고,,,, 이 정도만으로도 알근달근 인정에 취하고 오월의 푸르름에 취하겠는데, 사람과 사람을 흉허물없게 만드는 더 없는 매개체, 술! 단지님께서 손수 담근 포도주와 막걸리까지 내놓으시다니! 나는 본래 술을 분위기로만 마시는 편인데, 이번답사 때는 혀에 감기는 그 포도주를 뿌리칠 수 없어 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 그러니 알딸딸한 정신에 그 다음 답사한 곳이 기억날까?
-여섯 번째 발걸음, 효자 정재수 기념관-에 들러 가슴 찡한 영화 한 편 보고
-일곱 번째 발걸음, 상주 자전거 박물관-
나는 자전거의 바퀴 은빛살만 보면 할 이야기가 많다. 저걸 타고 내 추억으로 페달을 밟아가면 답사후기로 쓰기에는 어림도 없다.
특히 "편지 왔어요!" 하는 우체부 아저씨의 저 가방.
마지막 발걸음, 상주 남장사
남장사 오르는 길, 말해서 무엇하리.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남장사 경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꽃잎처럼 감싸안은 연봉들. 그 고운 연등에 “햐아~”하고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종교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느낌.
불두화, 저 꽃은 달빛에서 봐야하는데,,,,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탱. 세속에 물든 나는 어쩔 수 없나보다. 햇볕이 잘 드는 날, 저 댓돌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 무릎에 뉘어 놓고 귓밥을 파주고 싶다.
남장사 뒤뜰에서 찾은 네 잎 클로버.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클로버 네 잎이 내 눈에 띄는 순간, "와!"하고 허리를 똑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하지만, 참았다. 왜냐하면 부처님 오신 이브날이라 하여 많은 분들은 불공을 드리는데,,,,, 왠지 그걸 끊어오면 죄 받을 것 같아서 네 잎 클로버를 살려주고 사진만 찍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남장사 석장승
이즈음 실없이 혼자 웃을 때가 있다. 저 석장승 얼굴이 떠올라서. 개그콘서트니 웃찾사니 해도 옛사람들의 해학과 기지에 당해낼 수 있나. 마지막으로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건데, 저 석장승 코 안 갈아먹고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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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철로.자전거..타보고싶어요?..저를.자애로운 마음으로 함께타자고 하는데..그 사람 몰래?..요~요~손 가락걸어요..함께 아이들 마음으로???훗~훗..재밌어요(생각하니)????
왕방울만한 눈, 비투러진 주먹코, 선각한 송곳님에 야물게 다문 입술...아무리 무섭게 할려고 해도 착한 석공의 마음은 속일 수거 없었나 봅니다...
맛깔난 음식을 먹고 난 것처럼 멋진 답사 후기....차사랑님 덕분에 잘 읽고 보았습니다...문경 상주가 훌쩍 가까워진 느낌임니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