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왕따 가수 다오랑(刀郞· 52· 본명 뤄린羅林)은 한때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생계를 이어가다가 2004년 초, 데뷔,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나, 사라졌다가 지난달( 2023년 7월? 19일 흑백이 전도된 혼란한 세상을 풍자한 신곡 '나찰해시(羅刹海市)'로 컴백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데뷔 때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곡이 발표된지 고작 20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각종 음악 플랫폼 누적 스트리밍 건수만 100억회 이상을 기록하는 기적의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현재 분위기라면 200억회도 조만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네이브)
이 노래는 원래 청(淸)나라의 포 송령(청나라 초기 산동(山東) 치천(淄川) 사람)이 1679년에 지은 聊齋志異 중 나찰해시(羅剎海市) 에서 비롯된 말이다.(네이브)
청나라가 1616년부터 1912년까지 유지되었으므로 청나라가 들어선지 불과 53년 후에 이 글을 썼다. 산동은 강소성과 지척에 있다.
나찰해시(羅剎海市)를 이해하자면 밍나라의 건국유래를 알면, 이해가 쉬워지게 된다. 밍나라의 朱元璋[주원장- (강소성 패현沛縣 사람)]은 아명이 주중팔(朱重八)이었다. ‘중팔’은 ‘주빠’ 즉 주워왔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이런 이름은 흔했었다. 그러나 그는 백제계 유민으로서 워낙 가난하여 먹고 살기 위하여 홍건적에 들어가서 고구려의 후신이었던 원나라와 죽기살기로 싸우다 보니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원나라를 물리치고 밍나라를 세우게 되었었다. 주원장도 ‘주워짜’ 즉 주워왔다는 말을 다르게 썼을 뿐이다.
그랬는데 밍나라가, 고구려 후신으로서, 후금을 세웠다가 1636년 태종 때 국호를 개칭한 칭(淸)에게 망해버렸으니 그 원한이 오죽했겠는가? 금나라는 고구려 유민을 모아 ‘끄(따)’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칭(淸)나라도 밍나라를 ‘치’야 한다는 말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포 송령이라는 이름도 칭나라를 ‘뽀소려’ 즉 ‘부수려’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원한관계를 잘 알던 포 송령은 칭나라 관리를 보면, ‘악귀’로 보았고 ‘나찰’로 보았다. 더더구나 잘 생기지도 못하여 콧구멍이 3개를 가진 X들 이라고 보기도 하였다. 악귀처럼 요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고 보았다. 海市는 직역하면 ‘바다의 도시’라는 뜻이므로 ‘신기루’라는 의미를 갖다붙였다. 그러다 보니 전체 뜻은 칭나라 관리들은 하나같이 ‘악귀로 보인다’는 의미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羅剎海市의 실제 우리말 뜻은 ‘낮추어 하시’ㄴ 다는 말이니, ‘아주형편없는 것들’이 고위직을 차지한다는 뜻이 된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왕따 가수 다오랑(刀郞)은 예명인데, 우리말로 하면 ‘도라’버린다는 말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공산당원이라면, 아무렇게나 생긴 것들이 듸나 개나 고위직을 꽤어차고 있으니 돌지않고 배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옛 한국말은 여전히 속 마음을 털어내는 데는 특효약이 되고 있다.
아직도 백제의 후예들은 살아서 피를 튀기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어서 동북3성의 고구려 후예들도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 당나귀는 자기가 당나귀인 줄 모르고, 그 닭은 자기가 닭인 줄 모른다"라는 묘한 뉘앙스의 가사를 담은 이 곡의 인기 비결은 별다를 게 없다. 가사에 담긴 해학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한국 사람들도 한 때, 공산당원들은 이마에 뿔이 달렸다고 생각했었다.
요즘도 사사건건, 말썽을 일으켜, 결국은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면서, 부정한 축재를 서슴치 않고 있다.
참고로
“강희자전(康熙字典)은
30명의 학자가 강희제의 칙명을 받아 4만여 자의 자수를 수록한 이 자서(字書)도 전기한 바와 같은 학풍에서 생긴 것인데 일의일음(一義一音)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실증주의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강희는 청나라제4대 황제(재위 1661~1722)이었다.”
아무튼 거의 최근까지 2백여 년 동안, 칭나라 말기까지 가장 좋은 자서로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일반 백성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백성들은 1958년 로마자 발음기호가 발표될 때까지 지방마다 다른 우리말 사투리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