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 장수의 고생[賣炭苦] 賣炭何苦業(매탄하고업) : 숯 파는 일 얼마나 고생인가 賣炭無餘粮(매탄무여량) : 숯 팔아도 남은 양식이 없어라. 身無立錐地(신무립추지) : 자신은 작은 땅 한 뙈기 없으니 本業非農桑(본업비농상) : 본업은 농사와 양잠이 아닐세.
朝入山中伐山木(조입산중벌산목) : 아침엔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베고 暮劚深坑燒碧炭(모촉심갱소벽탄) : 저녁엔 구덩이 파서 숯을 굽는다.
飛灰入面狀貌黑(비회입면상모흑) : 나는 재 얼굴에 묻어 용모는 검고 烈焰燻身流赭汗(열염훈신류자한) : 뜨거운 불길 몸을 데워 땀은 줄줄
十指如鉤肌膚裂(십지여구기부열) : 열 손가락은 쇠 갈고리 피부는 거칠고 短褐懸鶉不掩脚(단갈현순불엄각) : 허름한 옷 너덜너덜 다리도 못 가린다.
辛勤擔負入城市(신근담부입성시) : 고생하며 숯을 지고 저자 거리에 들어가니 凍脚無力行欹傾(동각무력행의경) : 추위에 언 다리 힘 없어 쓰러질 듯 걷네.
兒童亂街拍手笑(아동란가박수소) : 아동들은 거리에 모여 손뼉 치며 웃고 山鬼何能臻紫陌(산귀하능진자맥) : 산 귀신이 어이 하여 이 대로에 왔느냐고.
今年無氷炭不貴(금년무빙탄불귀) : 올해는 날씨가 푸근해 숯이 귀하지 않아 足徧東西終未鬻(족변동서종미죽) : 동쪽 서쪽 다 다녀도 하나도 팔지 못했구나.
歸來妻怨子啼飢(귀래처원자제기) : 돌아오니 아내는 원망하고 아이는 배고파 우니 仰訴皇天天漠漠(앙소황천천막막) : 우러러 호소해도 하늘은 아득하기만 해라.
人生賦命各有差(인생부명각유차) : 사람의 타고난 운명이 저마다 다르니 請見朱門臭酒肉(청견주문취주육) : 술과 고기 냄새 풍기는 고대 광실을 보라.
- 이응희(李應禧, 1579~1651), 『옥담사집(玉潭私集)』
<해설>
검댕이 가득한 얼굴, 말라 버린 손가락, 거친 피부, 허름한 옷. 시장의 아이들은 고생에 지쳐 있는 숯 장수에게 ‘산 귀신’이라고 놀려 댑니다. 숯이라도 잘 팔리면 좋으련 만, 따뜻해진 날씨에 숯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신세를 하소연 하지만 무심한 하늘은 대답이 없습니다.
반면 잘 사는 집에 사는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삽니다.
옥담(玉潭)이 그려낸 숯 장수의 신세는 이처럼 비참했습니다.
그 후로 반 백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바뀐 것은 없습니다. “피땀 흘려 일하시는, 그러나 사회로부터 개 돼지, 흙 수저로 취급 받으며 살아가는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울분을 쏟아낸 어느 여고생의 외침이 가슴을 칩니다. 그 아이를 거리에 나오게 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듭니다.
전국 시대의 어느 날, 맹자(孟子)는 평륙(平陸)이란 지방에 간 적이 있습니다. 맹자는 평륙의 대부에게 소속 병사가 하루에 세 번 대오를 이탈한다면 죽일 것인지, 살린 것인지 묻습니다.
그 대부의 대답은 칼과 같습니다. “세 번까지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맹자는 대부에게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대오를 이탈한 경우도 많습니다. 흉년으로 기근이 든 해에 노약자들은 굶어 죽은 시신이 구렁에 뒹굴고, 건장한 사람들은 흩어져 사방으로 떠난 것이 몇 천 명이나 되었습니까? [然則子之失伍也亦多矣. 凶年饑歲, 子之民, 老羸轉於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
맹자는 대부에게 위정자들이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병사가 대오를 이탈하는 것과 같다고 역설합니다. 병사가 자신의 직분에 맞게 행동하여야 하듯, 위정자도 ‘백성의 보호’라는 직분을 준행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인을 향해 분노하는 이유도 그들이 헌법에 명시된 자신의 직분과 의무를 무시한 데서 연유 합니다.
절망과 분노에 몸을 가눌 수 없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줄 시기이기도 합니다.
위기는 곧 기회. 분노 어린 냉정함으로 그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다립니다. 오늘 이후로, 500년 전의 숯 장수도 웃고 살만한 그런 시절이 오기를.
글 쓴 이 : 남성현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받은 글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