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세계가 생기던 이야기
1 그때에, 대중 가운데 있던 부루나가 일어나 합장 에배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이 세상 모든 것이 모두 여래장이어서, 맑고 깨끗하고 본래 그런 것이라면, 어찌하여 산과 물과 땅과 하염 있는 모양들이 생기어서, 차례로 변천하여 마치었다 다시 비롯합니까?"
"부루나여, 허망하고 시끄러운 것이 서로 의지하여 피로함이 생기고, 피로함이 오래 계속되어 티끌이 생기어서 모양이 흐리터분하게 되었나니, 이리하여 번뇌 망상이 일어난 것이다.
일어나서는 세계가 되고 고요하여서는 허공이 되었다. 허공은 같은 것이요 세계는 다른 것이니, 저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는 것이 참으로 하염 있는 법이니라.
각의 밝은 것과 허공의 어두운 것이 번갈아 바뀌어 흔들림으로 풍륜이 있어 세계를 받들었다. 허공으로 인하여 흔들림이 생기고, 밝은 것을 굳혀 막힘이 되니, 금이란 것은 밝은 각이 굳혀진 것이므로 금륜이 있어 땅을 받쳤다.
각을 굳혀 금이 되고 밝은 것을 흔들어 바람이 생긴 뒤에, 바람과 금이 서로 가림으로 불이 생기어 변화하는 성품이 되었다. 밝은 금이 축축함을 내고 불은 위로 오르므로 수륜이 있어 시방세계를 싸고 있다.
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가서 번갈아 발동하여 굳혀지므로, 젖은 편으로는 바다가 되고 마른 편으로는 육지와 섬이 되었다. 물의 힘이 불보다 작으면 엉키어 높은 산이 되고, 흙의 힘이 물보다 작으면 빼어나 물과 나무가 되었다.
허망한 것들이 서로 얽히어 생겨나고는, 번갈아 서로 씨가 되나니, 이런 인연으로 세계가 계속되는 것이다.
부루나여, 마치 미혹한 사람이 어떤 동네에서, 남쪽을 잘못 알아 분인 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의 미혹은 아득함으로 인하여 생겼느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겼느냐?"
부루나, "이 사람의 미혹은 아득함을 인한 것도 깨달음을 인한 것도 아닙니다. 그 미혹은 본래 근본이 없는 것이므로 아득함을 인하였다 할 수도 없고, 깨달은 데서는 미혹이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깨달음으로 인하였다 할 수도 없나이다."
부처님, "저 미혹한 사람이 만일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미혹한 줄을 알았다면 이 사람은 그 동녁에서 다시 미혹하겠느냐?"
부루나, "그럴 이치는 없나이다."
부처님, "부루나여, 여래도 그러하다. 미혹한 것은 근본이 없어서 끝까지 공한 것이다. 본래 미혹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 미혹한 듯하지만, 미혹한 줄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지면, 그 깨달은 데서는 다시 미혹이 생기지 않는다.
또 눈병 난 사람이 허공에서 헛꽃을 보다가, 눈병이 나아서 헛꽃이 없어졌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헛꽃 없어진 허공에서 다시 헛꽃이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이는 철저하게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여래의 묘하고 밝은 각에서 언제 다시 산과 물과 땅이 생기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광석에 섞였던 금이 한번 순금이 되면, 다시는 광석에 섞이지 않는 것이요, 나무가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2 부루나여, 또 네가 묻기를 '지대ㆍ수대ㆍ화대ㆍ풍대와 허공은 성품이 원융하여 법계에 가득하였다면, 그것들의 성질이 다른데 어떻게 서로 용납하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마치 허공 자체는 여러 가지 모양이 아니지마는, 저 여러 가지 모양이 일어나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허공은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둡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날이 개면 맑은 것이다.
참되고 묘한 각도 그와 같아서, 네가 허공으로 발명하면 허공이 나타나고, 지대ㆍ수대ㆍ화대ㆍ풍대로 제각기 발명하면 제각기 나타나고, 한꺼번에 발명하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것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인가? 어떤 강물에 해 그림자가 비친 것을 두 사람이 함께 보다가, 한 사람은 동쪽으로 가고 한 사람은 서쪽으로 가면, 물 속에 비치었던 해 그림자도 그 사람들을 따라 한 그림자는 동쪽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으로 가는 것이다.
부루나여, 네가 색과 공으로 여래장을 당기거나 놓으려고 하면, 여래장은 따라서 색도 되고 공도 되어 법계에 가득하고, 그 가운데서 바람은 흔들리고 허공은 고요하고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둡다. 중생들이 아득하고 갑갑하여, 각을 등지고 번뇌에 합하기 때문에, 번뇌 망상이 생기어서 여러 가지 현상이 있게 되거니와, 나는 묘하고 항상한 여래장에 합하므로 다만 묘한 각의 밝은 것뿐이어서, 하나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며, 작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작은 것을 나타내며, 도장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세계에 두루 퍼지며, 한 몸 속에 넓은 허공을 포함하고 한 털 끝에 많은 세계를 용납하며, 티끌 속에 앉아서 큰 법의 바퀴를 굴리나니, 이것은 번뇌를 없애고 각에 합하기 때문에, 진여의 묘한 각의 성품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래장은 마음도 아니요 공도 아니며, 지대ㆍ수대ㆍ화대ㆍ풍대도 아니요,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아니며, 빛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도 아니요, 무명도 아니며, 행ㆍ명색 따위도 아니요, 고ㆍ집ㆍ멸ㆍ도도 아니며, 여섯 가지 바라밀도 아니며, 또 동시에 이런 것이기도 하는 것이다."
3 부루나, "부처님이시여, 모든 중생들은 무슨 까닭으로 허망한 생각이 생기어서, 자기의 밝고 묘한 성품을 가리고 나고 죽는 데서 헤매게 되었나이까?"
부처님, "부루나여, 사위성에 있는 연야달다가 어느 날 아침에 거울을 보다가,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은 얼굴이 얌전한데, 자기 머리에는 눈도 코도 보이지 아니하여 도깨비가 되었다 하고, 미쳐서 달아났다 하니, 이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미친 까닭이다.
묘한 각은 본래 뚜렷하고 밝지마는, 까닭 없이 허망한 생각이 서로서로 인연이 되어, 미혹을 거듭하여 끝없는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부처님의 변재로도 그 원인을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연야달다가 마음이 미쳐서, 자기의 머리가 무섭다고 달아났던 것과 같다. 미친 증세만 없어지면 머리가 딴 데서 생길 것도 아니다. 설사 미친 증세가 없어지지 않더라도 머리야 어찌 없어지겠느냐?
부루나여, 허망한 성품이란 본래 이런 것이니, 무슨 까닭이 있겠느냐?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증세가 없어만지면, 곧 보리의 깨끗한 마음이라. 본래부터 법계에 가득하여 딴 데서 얻을 것도 아니며, 애써 닦아서 비로소 증득할 것도 아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차고도 알지 못하여,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옷과 밥을 구걸함과 같아서, 아무리 빈궁하더라도 여의주는 없어지지 않았으니, 만일 지혜 있는 사람이 여의주를 가르쳐 주면 이 사람의 소원은 뜻대로 되어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에는 그 훌륭한 여의주가 딴 데서 생긴 것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다."
여러 대중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잡고, 의심이 없어지고 실상법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뿐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