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 한통
대추 한 알과 열무 한포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랑과 정성의 손길일 것입니다.
한 알의 대추가 붉어지고 둥글어지고 맛이 들려면 그에 따른 보이지 않는 조건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열무 한 포기도 흙을 뚫고 싹으로 움트며 뿌리 내리기 까지는 농부의 땀방울과 손길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통하여 세상에는 노력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배우게 됩니다.
“목사님! 열무김치를 조금 담았는데 오다가다 들리셔요.”
주일 저녁 예배를 준비하려던 중 걸려온 할머니 교우 한분의 전화입니다.
오랜 지병인 당뇨로 무척 고생하시는 분인데 한번은 발 통증으로 날 밤을 지새울 정도로 고통을 겪었다 합니다.
약 4키로 거리의 면 소재지에 하나 뿐인 약국에서 진통제라도 사려고 추운 겨울 달밤에 사투를 벌이며 홀로서 걸어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혹여라도 그러한 일이 있으면 제발 목사에게 연락하시라며 신신당부 했지만 에지간해서는 연락을 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어쩔 수 없이 종종 연락을 드리며 어떠시냐고 확인해 보면서, 아프면 시간에 관계없이 교회로 연락을 주시는 것이 목사를 도우는 일이라며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어느 날 댁을 찾았더니, 몇해 전 만들어 놓은 자택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초입 둑이 트랙터의 무게에 붕괴가 되어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큰길가에서 내려오는 물이 초입둑이 없어서 고스란히 골목길로 쏟아져 들어간다며 걱정하시기에 몇 해 전에 시멘트로 방지턱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물의 방향이 바뀌었다며 한동안은 시름을 들었는데, 무너진 곳으로 장마비가 쏟아져 갈 우려가 있어서 시멘트를 사다가 긴급하게 막았습니다.
큰 힘 들이지 아니하고 잠시 동안 한 일임에도 신경 써준 것이 고마우셨던지 연신 그 일을 말씀하시더니 열무김치를 담가 주신 것입니다.
일년에 한 두차례씩 정기적으로 생 김치 생각이 날 즈음에 담궈 주시는 할머니 집사님의 사랑과 정성을 대하며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그분 입장에서는 아들이 목회자이기에 아마도 저를 보며 남다른 마음이 들겠지요.
아마도 열무김치를 담그며, 당신께서 본 교회 목사를 공궤하는 것처럼 아들이 목회하는 곳의 누군가가 아들 가정을 섬기도록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역사하시길 기도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니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담긴 열무김치이구나 싶어집니다.
반 자식의 마음으로 교회내외의 어르신들을 대하고 있자니, 되레 어르신들에게서 받는 사랑의 크기가 눈덩이 같을 때가 많습니다.
한번은 마을 어르신들 관광을 가신다기에 음료와 물을 준비해서 회관에 갖다 드렸더니, 다녀 오신 어르신들께서 추후 선물을 주시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습니다.
지역 교회 목회자로서 교우들과 지역민을 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진대
간혹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사랑을 경험하노라면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열무김치 속에 담긴 어머니의 정과 마음, 그리고 눈물의 기도를 느끼며 맛나게 김치를 먹고 힘을 내어 열심히 목회자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사랑의 손길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집사님! 열무김치 잘 먹겠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