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안방을 들락거린다. 일요일이라 잠자리에서 미적거리고 있는데, 아마 할 일이 있으니 서둘러 일어나라는 모양이다.
젊어서는 주말마다 바빴다. 친구 아니면 동료들과 남이 하는 것은 다하고 싶었다. 테니스, 낚시, 등산, 보링, 골프, 등 운동으로 바빴고, 만나면 반갑다고 한 잔 술로 시작하여 술독에 빠졌고, 그 위에 도박에 가까운 고스톱을 치느라 밤샘도 불사했으니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이제 정년을 하였으니 당연히 백수다. 오라는데도 없고 마땅히 갈 곳도 없다. 백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 어느덧 일흔둘이나 되었다. 나이는 달리는 자동차 속력에 비례한다 드니, 시내 도로가 아니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수준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핸들을 꼭 잡아야 하겠다.
아내가 퉁명스레 말을 건넨다.
“오늘 OO백화점에 데려다 쥐요.”
“왜?”
“준이(외손자)가 전화 왔는데 새 축구화 사달라네.“
“김 서방은 무엇 하는데, 같이 가서 사주지.”
“오늘, 일직이라네요.”
“어허! 박 사장과 강구에 가서 대게 먹기로 며칠 전에 약속했는데….”
“당신은 맨날 놀면서 평일에 가지. 오늘은 외손자 축구화도 사주고, 나도 외출하려니 마땅한 옷도 없고 백화점에 가 봐야 해요. 박 사장한테 전화하소.”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코에 바람도 넣고 대게를 먹으러 가야 하나, 온종일 기사 노릇을 해야 하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옷도 사야 한다는 아내의 어투는 어쩐지 가시가 돋아있다. 여자들은 외출할 때마다 옷 타령이다. 근자에는 싸움할 때마다 옷이 단골 메뉴가 되었다. 변변찮은 월급쟁이의 아내로 살았기에 좋은 옷 한 벌 얻어 입지 못했노라고 늘 투정이었다.
아내의 잔소리에는 할 말은 없다. 이럴 때 말 들어주지 않으면 연중 쉬지 않고 바가지 긁힐 것이니 놀러 가는 것을 포기해야 될성부르다. 좋은 게 좋지 싶어 박 사장에게 전화를 한다.
“박 사장! 오늘 급한 일이 생겼네. 시골에 계시는 당숙 어른이 상(喪)을 당했네. 어쩌나? 친구들끼리 잘 다녀오소.”
오늘은 빼도 박도 못할 입장이다. 죽은 듯이 아내와 딸, 외손자의 운전기사 노릇이나 해야 할 처지다.
딸과 외손자를 차에 태우고 백화점으로 간다. 북새통 속에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되는데 손자는 잘도 다닌다. 여름철에 전기료 절약한다며 애를 데리고 백화점에서 시간 보낸다고 하더니 모르는 곳이 없다. 요즘 말하는 신식 장돌뱅이로 만들어 놓았다.
어정쩡 따라다니는 나를 시식코너로 잡아끌더니 이것저것 먹이고는 먼저 점찍어 놓은 비싼 축구화 사달란다. 그런데 웬걸 가격이 구두보다 비싸다. 만만찮아 망설이니,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은 말은 적게 하고, 지갑은 쉽게 열라는데? 여태껏, 애들한테 많이 받았잖아요, 손자 하나 사주지 그러세요.”
딸이 보고 있으니 아비 체면에 어쩔 도리가 없어 카드를 꺼낸다.
다음은 숙녀복 코너로 간다. 아내는 마네킹에 걸려있는 옷을 멀리서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다가가서 살펴보고 가격표를 보더니 "아이고!" 하고는 혀를 내두른다.
“어찌 이리 비싸 노?”
모처럼 나온 김에, 마음에 들면 한 벌 해 입어라고 했지만, 아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그러고는 다른 가게로 팔을 잡아끈다. 들리는 점포마다 옷에 붙은 품질 표시를 꼼꼼히 살펴보고 나서 가격표를 보고는 또 망설이다 고개를 젓는다.
“우리 형편에 너무 비싸.”
그렇게 몇 차례 옷 가게를 순례하더니, 집에 가잔다. 그렇게 옷 타령을 해놓고 사지 않겠다는 것은 무언가. 다음에 또 옷 타령할 텐데 싶다. 결국 아내는 백화점 정문 입구의 세일 코너에서 철 지난 옷을 몇 개 고른다.
모처럼 아내에게 호사 시켜주려던 일이 어긋났으니, 입이라도 호사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앞산이나 팔공산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나 하고 가자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손자에게 물어본다.
“우리 준이는 무엇 먹고 싶어요?”
“할머니, 피자. 크림 스파게티 먹을래요.”
아내와 딸에게 생색내고 점수 따려 했지만 쉽지가 않다. 순간, 남자들끼리 우스개로, ‘나이 칠십이면 이사 갈 적에 버리고 갈까 봐 운전석에 먼저 올라탄다.’는 말이 떠오르고, 내가 지금 그 지경이 되었다. 젊어서 아내를 고생시킨 죄업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에 아내의 손을 잡아본다. 꺼칠꺼칠한 손이 애처롭다. 젊어서는 보드랍고 예쁘게 생기지 않았던가.
나의 성질이 괴팍하여 아내는 마음고생이 많았다. 책상 위의 종이 한 장은 물론이고, 집안의 모던 사물이 깨끗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했었다. 그것뿐이랴. 밥상머리에서는 반찬투정이나 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까.
“노 기사, 운전해, 어서!” 하는 환청(幻聽)이 들려는 듯하다. 늘그막에 소박 받고 ‘졸혼’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아내한테 잘해야 되지 싶다. 오늘 하루 무사하기를 빌어본다.
(노덕경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