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질문 1.
원 간섭기의 개혁정치 기관...각종 도감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충숙왕 : 찰리변위도감
충혜왕 : 편민조례도감
충목왕 : 정치도감
공민왕 : 1 차 - 전민변정도감, 2 차 - 전민추정도감
이게 교재에는 저렇게 기관 명칭만 나와있더라구요 (탐구).
명칭만 봐서는...정치도감을 제외하고는 전부 국가 재정 확보를 위한 기관인가요?
객관식 문제를 하나 봤는데 위의 기관 중 하나 (정치도감은 아니었어요.) 에 관한 옳은 지문...
국가 재정의 확보 였거든요. 그냥 전체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다, 이 정도로만 알려주세요~!
질문 2.
탐구한국사를 보면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1, 2 차로 나눠놨거든요.
1 차 : 공민왕과 신진사대부들이 주도, 전민변정도감 설치
2 차 : 신돈을 삼중대광영도첨의로 등용, 전민추정도감 설치
근데 객관식 문제를 보면 신돈 관련 지문으로는 거의 전민변정도감이 나오거든요.
신돈이 왕께 간청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야 합니다, 왕은 ㅇㅇ네 말이 맞다, 이러면서요.
근데 신돈 등용 시기는 2 차 개혁정치 때이고 이때는 전민추정도감...
이거 설명 해줄 분 계신가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질문이 좀 길었어염ㅜ_ㅜ
첫댓글 1. 각종도감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어가 보지 않아서 설명을 잘 못해드리겠네요....
성격이 다른 하나를 찾아야 한다면 정치도감이 맞구요. 일단 정치도감은 원 간섭기에 국고가 줄어들어 관리들에게 녹봉 대신 녹과전을 지급하기위해 설치한 기구이구요. 나머지는 농장의 개혁과 노비의 해방을 통해 양인의 수를 증가시켜 국가 재정을 확보하려고 했던 개혁이었는데, 모두 다 실패했지요. 그 이유는 원간섭기에 권문세족이 강성하였고, 양인 이었던 농민들은 권문세족의 토지겸병(토지 하나에 여러명의 전주가 있는것)으로 1/10을 거두어야 할것을 7~8/10을 가져가니까 농민들이 살수가 없어서
권문세족의 노비로 들어가서 경작하는것이 덜 고통스러웠기에 투탁하는 현상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는데 위의 개혁 정치로 다시 양인이 되어봐야 권문세족에게 조세를 다 빼앗길것이 뻔하기에 이 개혁은 실패 했구요.
2. 제가 보는 맥락 한국사에서는 정민변정도감이 2차 개혁때 나온것으로 되어있는데.... 홍건적의 2차침입으로 안동으로 피난간 공민왕이 흥황사의 변을 당하게 되죠. 권문세족도 못믿겠고, 사대부도 못믿겠고, 좌주니 문생이니 어쩌고 저쩌고 돌아오면서 2차개혁을 하게되는데 그때 등용한게 신돈이지요. 정민변정도감 역시 위의 개혁기구들과 같은 맥락으로 설치 하였지만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못하여 실패하게되는데.... 전민추정도감은 전민변정도감의 실패로 인해 다시 나온 기구같은데....
정확히 저 기구의 기능을 설명못하겠네요.... 다만 전민변정도감의 실패로 나중에 불법으로 노비가 된자들이 자진 신고하지 않을 경우에 처벌을 받게 된다고 반강제적으로 양인으로 돌리려 했지만, 이것 역시 시대상황속에서 살기가 힘들어 노비가 된자들이 다시 양인으로 돌아갔을턱이 없기에.... 실패 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님 댓글 다 받아적었습니다.
자세한 댓글, 그리고 시간 할애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자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건가...
아무튼 정말 고맙습니다.
열공 하십시오 !
신돈에 관해서 나온 기사 중
고려사절요 - 전민추정도감
고려사 - 전민변정도감
결국 사서에서 하는 용어가 차이가 있을 뿐 같은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다..ㅎ
아, 그런 거였군요.
좋은 거 알아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