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세계로 가는 사람이 보입니까. 안 보이지요? 깊은 산골에서 호미질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외국여행 가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죽음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간들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따라가는데 어떻게 그 반대의 행렬이 우리 눈에 보이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교를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겨쓰고자 합니다. 그것이 생활불교입니다. 불교에는 생활불교가 없습니다. 불교생활이 있을 뿐입니다.
불교를 중생인 나 쪽으로 끌어당겨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불교 쪽으로 들어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생활입니다.
그 누구도 태양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태양을 내 쪽으로 당겨 쓸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양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그처럼 내가 부처가 원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가피가 일어납니다.
이 이치를 모르면 불교 속에서 끝없이 방황합니다.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불교를 자기의 삶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한 때 그랬었지요. 참선 바람이 불어서 선원들이 거리마다 생기고 사찰마다 정말 야단이었지요. 참선한다고 참 많이도 쫓아다녔지요.
그러던 사람들이 어느날 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비파사나 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선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만두어 버립니다.
기도도 그랬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릅니다. 응답이 없으면 지장보살을 부릅니다. 그래도 응답이 없으면 산왕대신을 부릅니다. 그러다 그만두고 교회가서 하느님을 부릅니다.
염불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죽어라 천수경을 합니다. 그러다가 밤새도록 다라니 기도를 합니다. 안되니 광명진언을 합니다. 그래도 안되니 이제 천수다라니를 인도말로 합니다.
인도음의 다라니가 인도에서 벌써 다 사라졌습니다. 효험이 있었다면 왜 거기서 사라졌겠습니까. 정신 좀 차리시기 바랍니다.
출처 : 원효센터 공파스님.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 백중기도 입재법문 중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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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불교는 없다. 불교생활이 있을 뿐이다. 부처는 태양처럼 중생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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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부처가 중생의 삶에 관여한다면 죽는 중생이 없겠지요.
어짜피 모진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는 중생의 삶.
육신의 삶 그 너머에 죽음을 일으키는 마음의 세계를 모르면
그 중생의 삶을 윤택하게하려고 모든 분별심을 벗어난 覺者가 hot한 사랑으로 나를 도와주리라고 오해를 하게 되겠지요.
참 부끄럽습니다. 다만 부끄러운 근기일 뿐이지만
생활불교 말고 불교생활할 수 있게 작복과 염불로 정진하는 오늘 하루 만들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아내도 불자지만 아미타불 염불을 해서 극락왕생하자고 하면 스님 말씀대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합니다. 어리석은 중생의 생각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불자들이 왜 그렇게 바르게 불교생활을 못할까요?
부처님의 기르침 중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것,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헛것이라는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을 강조해 놓은 반야심경 270자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자라면 처음 입문하는 사람일지라도 반야심경의 뜻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불자의 가장 초보적인 입문과정입니다.
반야심경에는 제법이 공상이라고 분명히 못 박아 놓았습니다.
제법, 즉 세상 모든 것이 공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공상을 또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불생불멸. . .공상이란 생기지 않은 것이라고 분명히 못박아 눴는데. 이를 믿지 않으니
자기 스스로는 불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불교라는 방문의 문고리도 잡지 못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