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6년생, 2014년 현재 나이는 스물아홉 살(女)입니다. 2009년 2월, 엄마의 권유로 공동체에 처음 발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을 다니다가 제 힘으로 살기를 택하여 1년 동안 세상에서 헛바퀴를 돌고, 썩어가는 피부로 인해 2010년 6월부터 다시 공동체에 와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이 공동체에 오기 전에 경험했던 거짓신앙의 모습과 공동체에 와서의 변화, 그리고 사역자가 되기까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공동체에 오기 전의 신앙생활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초등학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 예배 반주를 해오고 있습니다. 신앙에 관해서는 매우 엄격하셨던 엄마 때문에 어쩌다 다른 곳에 놀러가도 주일이면 반드시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반주를 했어야 했고, 어쩌다 한번이라도 주일을 다른 교회에서 예배드리거나 반주를 놓치는 날에는 큰일이 나는 것처럼 교육을 받아서 20년 동안 본 교회 예배를 빠지거나 반주를 거른 날은 거의 없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정말 신실하고 성실하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주일 예배, 성가대, 오후 예배 찬양팀 반주, 수요예배, 철야예배 반주, 그리고 교사까지 겸해서 학생예배 교사&반주, 어린이예배 교사&반주, 수련회를 가면 수련회 임원&반주를 했습니다. 또 강릉시 연합 찬양단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찬양단 정기 집회가 있을 때마다, 그리고 수련회에 초청받아 예배인도를 해야 할 때마다 반주를 하며, 대학교에 가서는 예수전도단 동아리에 가입하여 임원진까지 하면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만큼 바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열정을 바쳐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고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하나님때문에 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바빠서 정신적으로 많은 고비가 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보며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겪어야 하는 것이 신앙인 줄, 그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과정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이 음악적 달란트는, 대부분의 찬양 사역자들이 그렇듯이 예배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하나님이 아닌 나를 드러내는 곳에 사용되었습니다. 반주를 하며 나도 모르게 맘에 드는 이성을 유혹하고 나를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 제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과 제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은 “지체들 간의 친목도모, 나눔”이라는 명목 하에 계속 되었고, 저는 25년 신앙생활 내내 그런 감정들을 즐겼습니다. 청년 예배, 성가대 연습, 주일예배, 찬양팀 연습 등이 끝나면 바닷가 근처의 카페(그 때 당시 집이 강릉이었다)로 가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나 하며 노는 재미로 살았습니다(지금 보니 그것이 제 신앙생활의 동력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신앙생활에는 문제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예배 후에 청년들과 집사님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며 낄낄대는 그런 교제는 하나님과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 교회의 성가대는, 엄마 표현에 의하면 세상의 계모임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친목도모를 하기 위해 회비를 걷고, 해외로 놀러가며, 때에 따라서는 지휘자를 포함한 몇 명이 모여 호프집을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성가대였습니다.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것인 줄, 신앙생활이란 다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고, 신앙과 내 삶은 따로따로였습니다. 찬양팀 모임과 청년팀 모임, 학생회 또는 학생회 교사 모임 등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이기보다는 사람이 중심이었고 그 와중에 드리는 기도, 예배, 찬양 등은 정말 형식적인 겉치레일 뿐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것이 음란의 영에 이끌려 다니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영적 분별력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때라 그것이 악한 영의 소행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귀신에 이끌려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아마 누군가 그것을 분별하여 그것은 악한 영들이 이끄는 대로 이끌려 다니는 것임을 말해주었더라면 저의 신앙생활이 그렇게 분별력 없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며 대학(유아교육과)을 졸업하고 2009년 2월부터는 다시 음악공부를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에 수도권으로 올라와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의 권유로 같은 달, 공동체에 처음 발걸음하게 되었습니다.
2. 공동체의 첫인상
2009년 2월추운 겨울, 칼바람이 부는 날 지하철을 타고 금정역에서 내려 노점상이 널린 곳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언덕을 타고 중반까지 가는데 25분 정도가 걸렸는데, 교회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 자체로 짜증이 났습니다. 게다가 “이게 교회야?” 싶을 정도로 허름한 건물의 먼지 나는 계단을 내려가야 있는 지하에 위치한 교회는, 제게 그다지 반가운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강의가 시작되기 전 기타 한 대로 구닥다리 찬양만 하는, 음정․박자 다 틀리는 찬양도, 음악공부를 하고 풀 세션(일렉기타1,2, 베이스기타, 드럼, 신디사이져1,2,3, 싱어 기본 5명)으로 구성된 멋진 찬양팀 안에 있었던 저에게는 “뭐 이런 교회를 다니자고 난리를 치나..” 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만 불러일으킬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공동체에서 처음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면 잘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 왕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왜 그렇게 가난한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왕자도 아버지의 것들을 누리며 사는데, 왜 당신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해결하며 사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일도 아니고, 40개월도 아니고, 40년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고 살았는데 왜 당신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가?”라는 강의는 여태까지 들었던 어떤 설교보다도 현실적이었고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습니다.
저희 집은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 때 저는 과외를 뛰고 알바를 하며 제 쓸 것을 벌었지만, 그래도 핸드폰은 끊기기 일쑤였고 학교 갈 버스비만 겨우 남아있는 때도 다반사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남들 일주일에 한 번 받는 용돈을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겨우겨우 이것저것 핑계를 대야 얻어냈기 때문에 메이커 옷이나 신발 등에 민감한 나이였지만 그런 것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냥, 삶은 신앙생활과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챙겨주시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저였기에 이 강의는 그 어떤 설교보다도 신선했고 나의 정신을 초 집중하게 했습니다. “그래, 맞아! 나는 하나님을 그렇게 내 나름대로 끔찍이 생각하고 평생 봉사도 해왔는데 왜 이렇게 거지같이 살지?”라며, 잘은 모르겠지만 왕의 자녀답게 살라는 강의를 듣는 내내 청정수를 마시는 기분이었습니다. 공동체의 첫 이미지야 어쨌든, 강의는 신선해서 좋았습니다.
또한 강의가 끝난 후에는 엄마가 저를 이상한 곳에 줄을 세웠습니다. 예언과 치유사역을 받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기에 굉장히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방언을 말하는 동시에 통역을 하며 예언기도를 해주셨고,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어떤 자매는 한참동안 기도하며 무언가를 계속 적더니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는 것을 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나와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하나님 음성을 들어서 사역을 해주는 것이 부럽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해서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일까? 자기 생각 아닐까?’ 반신반의 하면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다는 설레임에 감격하며 적었습니다. 또 치유사역을 받을 때에는 저의 상처받았던 과거를 끄집어 내셔서 그것을 싸매주시고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치유사역을 받으면서는 ‘이 허름한 곳에서의 사역이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약 한 달간을 그렇게 강의를 듣고 사역을 받으러 공동체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올라온 취지가 이 공동체를 다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리고 가기만 하면 엄마랑 싸우는 통에 엄마에게 “더 이상 엄마랑 싸우기 싫어서 그 교회를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강의와 사역은 좋았지만 음악공부를 해서 내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있던 강릉의 연합 찬양팀에 뼈를 묻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제 사명인 줄 알았기 때문에 음악공부를 하러 친히 강릉에서 서울까지 상경한 것이었습니다. 10년 정도를 계획하고 음악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아서 강릉으로 돌아가 그 찬양팀의 수준을 높이고, 영동지방의 찬양&문화사역에 이바지하는데 이 한 몸 바치려 했습니다.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나의 사명이리라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저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니까 다른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옮겨 원래 가려고 했던 안양의 대형교회인 새중앙 장로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3. 1년 동안의 헛바퀴
그렇게 쇼킹했던 공동체의 첫 강의내용은 싹 잊어버리고, 1년 동안 제 힘으로 집을 구하고, 제 힘으로 돈을 벌어 월세, 세금, 레슨비, 핸드폰 비, 생활비를 해결해나가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직장을 얻어 돈을 받고 필요한 모든 것을 내며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이 공동체와 차로 10분밖에 안 걸리는, 안양에서 제일 큰 교회인 새중앙 장로교회를 다녔습니다. 이전에 다니던 교회들은 작은 교회였던 터라 인재가 없어서 혼자 맡은 게 너무 많아 힘들었었기에 조용히 다니고 싶어 큰 교회를 갔는데, 어디에 소속되지 않으면 청년들과 어울려 다닐 수가 없어서 그 교회에서도 찬양팀에 들어가 반주를 하고 86또래 모임에 참석하며 그들과의 교제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으면 2010년에는 1년도 채 안 다닌 교회에서 86또래장에 청년회 임원, 찬양팀장까지 맡아 마치 평생 이 교회를 다녀온 사람처럼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청년팀 사람들과 교제(말이 좋아 교제지, 먹고 웃고 떠들고 농담 따먹기나 하는 것이다)하고, 또 그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들을 즐기며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랑 공동체는 택시로 10분 거리밖에 안 되었기에 가끔 엄마를 만나러 공동체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한 번은 부활절 헌금을 준비하는 제게 엄마가 구약성경의 절기에 대해 얘기하며 유월절 헌금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논리도 없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유월절 헌금을 하라는 말에, “지금은 신약시대인데 그런걸 왜 해?”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정말 해야 하는건가? 왜지?” 를 생각하며, 나와 고민을 나누며 가까이 지냈던 법대생 친구에게 “하나님이 영원한 규례로 지키라고 명하신 절기와 절기 헌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성탄절, 부활절을 지키지 않고 그것을 지키는게 옳은 것 같아?”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기독교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건이잖아? 그러니까 성탄절,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거지.”라고 대답하는 그 친구의 말은 내가 듣기엔 굉장히 논리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절기를 지키라는 엄마의 말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 근거가 있는 방향을 택하여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신앙의 무서움이라는 것은 공동체에 들어오고 나서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4. 피부병을 달고 살던 나 ; 공동체에 돌아오게 된 계기
어찌됐든, 그렇게 혼자 힘으로 벌어 공부를 해서 서울 예대 실용음악과 실기 1차에 합격했는데, 말도 안 되게 필기시험 날짜를 놓쳐서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수입도 줄어들어 레슨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된 건 피부병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를 달고 살았습니다. 너무 애기 때부터인지라 피부병은 그냥 숙명처럼 평생 나와 함께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제가 성장해갈수록 그로 인한 불편함은 더해졌습니다. 어렸을 때는 피부가 보기에 안 좋은 것이 창피한 줄 모르는 나이였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지만, 커가면서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피부병 없이 깨끗한 다리, 깨끗한 팔, 그것이 나에겐 큰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더워서 맨 다리로 다닐 때에도 나는 까만 스타킹을 신어야 했습니다. 길에 가다가도 짧은 바지와 짧은 치마를 입어도 부끄러울 것 없는 깨끗한 피부를 가진 또래들을 보면 부러움이 있었고, 거기에 비춰 내 모습을 보면 속상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가면서부터 피부가 깨끗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피부병이 다시 도진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토피도 아니고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상처들, 그저 끔찍하게 생긴 피부암 같은 피부병이 온 몸에 도진 것이었습니다.
이 피부병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더니 단 며칠 만에 얼굴을 제외한 온 몸에 퍼졌습니다. 사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됐지만 나는 상황이 심각한 줄도 모르고 막연히 “하나님이 낫게 하시겠지”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믿음인줄 알고, 병원에도 가지 않고 계속 일을 하며 다시 재수를 준비했습니다. (거짓신앙이 나의 사고를 뒤덮어버려 내 상태는 뒷전이고 헛된 것만 쫓아다니도록, 그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으레 왔다가 지나가는 신앙의 고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엄마 환상에, 제가 똥통에 빠져 목만 겨우 내놓고 있는데도 심각한 줄도 모르고 주변만 두리번거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사고를 뒤덮고 있었던 무언가가 한 꺼풀 벗겨지며 나는 내 상태를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권유대로 공동체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5. 참 신앙에 대한 인식
그렇게 2010년 3월, 저는 고삐 걸린 소가 마지못해 끌려가는 모양으로 다시 공동체에 발걸음 했습니다. 처음엔 피부병만 고침받고 다시 원래 다니던 교회로 돌아갈 심산이었습니다. 큰 교회의 역동적인 것들의 중심에서 함께 무엇을 만들어 나가는 것, 큰 교회의 청년회에 소속되어 리더가 되는 것, 이것은 제가 작은 교회만 다녔던 터라 마음 한 구석에 소망했었던 것이었고 이제 막 그것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교회를 옮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교해 봤을 때 이 공동체는 이사를 하여 지하에서 2층으로 올라왔지만 여전히 건물은 초라했고, 본당은 내가 보기에 50명 정도를 수용하기에도 벅찰 만큼 작았습니다. 또 여전히 멋드러진 찬양과 악기도 없었고, 샤워를 한다는 공간은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건 둘째 치고 큰 거미들과 쥐가 나올 것 같아 두려움에 벌벌 떨며 씻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역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들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때 당시 회복 시리즈「회복의 개요」를 강의하셨는데, 그 내용 중 “거듭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조명 받지 못한 신앙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신앙이 아니다. 거듭난 자라야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성경이 말하는데, 내가 거듭나지 못하여 내 영혼이 지옥에 갈 가능성이 단 0.000001%라도 있다면, 깊게 점검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내용은 그동안의 나의 신앙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했습니다. 여태까지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저 사람 말대로 저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남이라면 저는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니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데 지옥에 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고, 애써 그동안의 저의 신앙생활을 합리화시키며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거의 최면을 걸듯이 되뇌었지만, 여기에 대해 반복되는 강의내용은 제 양심을 계속적으로 찔렀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저의 영적 상태를 인정하고 거듭나는 것이 뭔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나도 만나게 해달라고, 거듭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또한「신앙의 본질」강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신앙은 거짓신앙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는 예배, 선교, 헌신, 노력, 봉사는 다 하나님과는 무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려는데 거기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소방 호스를 갖다 대면 되겠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는 것은 아무리 선한 모양이더라도 모두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나의 신앙생활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정곡으로 찌르며, 그동안 거짓 신앙을 참 신앙으로 알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매주 토요일 하루를 듣는 강의였지만 거듭남의 중요성에 대한 강의 내용,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반복적으로 주지시키는 회복 시리즈 강의는 그동안 잘못된 나의 거짓신앙의 근간을 흔들어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공동체의 강의는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성경 말씀대로 나의 혼과 골수를 찔러 쪼갰고, 나의 잘못된 신앙을 보게 하였으며 나의 양심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짓신앙의 실체를 인식해 가던 중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제 신앙생활에 열매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마 7:20,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들을 보고 나무들을 알게 되리라.) 2009년 2월에 이곳에 왔다가 엄마한테 내 멋대로 살겠다고, 혼자 알아서 하나님 잘 믿을테니 걱정 말라고 하며 튕겨져 나갔는데, 1년 동안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어디로 가고 저는 제자리였던 것입니다. 2009년 2월에 온 그 자리 그대로라는 것, 1년 동안 커다란 원을 돌아 다시 제자리에 왔다는 것은 나의 신앙생활이 거짓신앙이라는 것을 방증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거짓신앙의 열매인 질병만 얻어서 1년 전 그 자리(제로점도 아닌 마이너스 점)에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본 이상 더 이상 큰 교회고 허름한 교회고, 교회에 청년들이 많고 적고는 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올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것,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5월까지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더니, 이상하게도 주변 환경이 그렇게 되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환경이 되어져간다는 공동체의 강의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같이 살며 월세를 나누어 냈던 친구는 다른 먼 곳으로 직장을 잡게 되어서 그 근처로 집을 얻어야 했고, 그로 인해 저 또한 거처를 옮겨야 했습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정리되고, 수입이 줄어들면서 직장도, 받고 있던 레슨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제 발목을 잡았던 것은 제가 다니던 교회였는데, 그것을 정리시키는 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6.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거짓신앙
당시 저는 86또래장이자 청년회 임원으로서 교회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공동체도 나오며 그때 당시 다니던 교회 생활도 하던 어느 날(4-5월 쯤), 86또래 클럽(인터넷 카페)에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공동체에서 들은 것을 토대로 글을 올렸습니다. 장로교 보수파에 속하는 이 교회에서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 이단으로 몰릴 것이 뻔했지만, ‘그 중에 하나라도 나의 말에 귀 기울여준다면 그 사람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글을 올렸습니다. 당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는 말씀(요 10:27,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을 근거로 로고스와 레마의 음성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는 지금 로고스(성경)의 말씀만 듣고 있지만 레마의 음성,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음성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적어 올렸더니, 원만했던 친구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너 지금 다니는 데가 어디냐느니, 거기 이상한 곳 같으니까 나오라느니, 로고스랑 레마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느니, 당장 네이트온(온라인 메신저)으로 들어와서 얘기 좀 하자느니.. 그 글을 보는 순간 문자하며 전화하는 친구도 있었고, 아무튼 한 영혼이라도 구해보고자 올린 글 때문에 사태가 심각하게 흘러갔습니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얘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가 이단에 빠졌다고 생각하며 나를 다시 원상복귀 시키려는 댓글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에 대해 말없이 침묵하며 내가 이단에 빠진 위험한 상태인줄 생각하고 청년 담당 목사님께 얘기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나와 고민을 나누며 친하게 지냈던 그 법대생 친구였습니다.
어차피 교회를 옮기기로 작정한 상태였으니 그 친구들을 자주 볼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인간적인 서운함도 있었고 “내가 올렸던 그 글, 자녀가 아버지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그 당연한 내용이 그들에겐 고려할 가치도 없는 주제란 말인가?”를 생각하니 거짓신앙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얼마 후에 있은 주일 청년 예배 설교였습니다. 그 날 청년 담당 목사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는 설교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설교 내용을 요점만 간단히 말하면 “주일 날 설교를 듣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는 겁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데, 목사가 말하는 주일날의 설교가 그 음성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몇 백 명 중에 나를 겨냥한 설교인지, 내가 교회 내의 사람들을 끌어들여 분란을 조장할까봐 미리 선수치는 것인지, 마치 철저하게 교육받고 교회 내로 들어와 사람들을 빼가는 신천지인이라도 된 양 저를 취급하는 그 교회와 사람들은, 더 이상 그 교회에 미련이 남지 않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5월까지 사역을 하고 교회를 옮기겠다고 찬양 리더 전도사님께 한 말이 청년 담당목사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만무했습니다. 역시나, 청년 담당 목사는 그 소식을 듣고 1:1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안양에서 친히 제가 사는 사당까지 오셔서 밥을 사주고 커피를 사주시는 것이 나를 설득하러 오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 몸 상태(피부병으로 썩어있는)의 일부를 보여드리며 치유사역도 받고 엄마와 같이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말하며 이미 결정한 거라 번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는 “나도 보수파이긴 하지만 성령체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역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고 교회를 옮기는 것은 좀 위험하다. 다시 한 번 고려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며 나의 결정을 보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때는 거짓겸손에 쌓여서, 또한 하나님의 종인 목사들한테는 막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냥 “네,, 네.. ”하고 말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까지 몸이 썩었는데, 내 피부는 썩어가고 있는데 당신들이 해준 게 뭐 있냐, 그저 높은 지위에 취해, 보기만 해도 배부른 청년들 얼굴 익히는 데만 급급했지, 어디 아픈데 없냐고 물어보길 했냐, 기도하기를 해줬냐.’ 등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체험만 강조하는 곳, 하나님 음성을 강조하는 곳은 이단이라느니 어쨌느니 하는 소리들만 했었던 그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 가소롭습니다.
7. 참 신앙생활이란
어쨌든, 그렇게 2010년 5월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난 후 6월부터 정식으로 공동체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매주 듣는 설교와 회복 시리즈 책 강의가 꿀송이처럼 달았고, 겉으로는 정말 허접스러운 교회였지만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가득한 것이 예배 때마다, 강의 때마다, 사역을 받을 때마다 느껴졌습니다. 내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화려한 교회의 겉모습도 아니고, 몇 백 명의 청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풀 세션이 갖춰진 멋진 찬양도 아니었는데, 또한 여전히 음정․박자는 다 틀렸는데(나는 음악을 해서인지 음정․박자에 예민했다) 이유도 모르고 그저 은혜에 감격해 찬양할 때마다, 강의 중에 어떤 내용이 가슴을 칠 때마다 울었습니다. 요즘의 세련된 찬양들에 비해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찬송가 가사들이 새롭게 와 닿았고, 신앙의 연조가 깊으신 백발의 할머니 권사님들만 부르는 노래인줄 알았던 그런 찬양들의 가사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환경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서 찬양 반주를 하며, 이런 살아있는 찬양을 하게 하시고 반주하게 하시는 것, 거짓신앙에서 건져주신 것 등등에 감격하여 반주하며 강의를 듣는 내내 하나님의 은혜에 푹 잠겼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강의 중에 집사님께 된통 혼이 났습니다. 저는 그 당시 서울에서 안양까지 버스를 타고 공동체에 다녔습니다. 온 몸이 썩어 있었고 다리는 특히 더 심했기 때문에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저는 다리에 붙는 스키니 바지를 입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 주에 사역자분이 통풍이 잘 되는 것을 입으라고 하셔서 그 날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반바지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오자마자 반주를 해야 했던 터라 강의 쉬는 시간에 갈아입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그 쉬는 시간이 되기 전에 벌어졌습니다. 피부병 때문에 통풍이 잘 되는 것을 입으라고 하는 사역자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공개적으로 굉장히 많이 혼났습니다. 평생 그렇게 공개적으로 혼나본 적은 없는 터라 어안이 벙벙하고 말문이 막혀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강의를 듣는 내내 강의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울면서 온갖 잡생각들만 가득했습니다. 정말 억울하고 창피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책망하는 것에 너무 분했고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집에 갈까 말까를 그 짧은 시간 내에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갈아입으려고 가져온 바지도 갈아입지 않고 그냥 개기고 싶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어 저는 유아실로 들어가 엉엉 울었습니다. 바지 그까짓거 갈아입으면 되는건데,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그렇게 공개적으로 책망을 받았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해서 집에 가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가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맘 먹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겠다고 들어왔는데 지금 집에 가면 다음에 다시 어떻게 얼굴 들고 이 교회에 오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전에 다니던 교회로 다시 가야 하나 등등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주님한테 따졌습니다. “주님은 내가 사역자 말 무시한 게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주님은 나 지금 억울한 거 아시잖아요. 저 사람은 다 안다면서 왜 저래요? 영적으로 다 본다면서 내가 바지 갈아입으려고 가져온 거는 왜 몰라요? 그것도 모르면서 왜 혼내요?”라며 막 따졌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안다. 내가 안다. 내가 알아주면 되지 않니. 너 억울한거 안다. 그거 알아달라고 사람들한테 변명하지 않아도, 내가 안다. 그럼 되는 것 아니냐..” 하시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주님이 알아주면 족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성질대로 했으면 당장 뛰쳐나갔을 것을, 주님이 안다고 말씀하시니까 위로가 되고 진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안다니까,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설명하지 않기로, 굳이 나를 알아달라고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그 다음 주 화요치유사역 때 사역자님의 입을 통해 나왔습니다. 뭔가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 잘 넘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사건은 하나님의 테스트였던 것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하는 것임을. 사람들에게 나를 이해시키려고 하지도 않고, 나를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고, 영적 리더로부터 무언가를 지적받았을 때 변명하지 않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묵묵히 가는 것임을. 그렇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8. 하나님의 기적 ; 계시에 따라 피부병이 나음
교회를 옮기고 강의를 들으면서, 또 3일 금식도 시작하면서 영적 지식들이 조명되고 영적인 기반들이 닦여 갔습니다. 피부병 또한 나았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사역자님들의 입을 통해 말씀해주신 대로 점차, 점차 나았습니다. (암 3:7, 실로 주 하나님은 선지자들인 그의 종들에게 그의 비밀을 나타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행치 아니하느니라.)
회복 되기전
회복된 후
온 몸이 썩어서 다시 공동체에 왔을 때, 감독님은 나를 보시고 몸 전체에 수의壽衣를 입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옷으로 가려서 보이진 않지만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가 썩어있다는 것을 영으로 보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몸은 썩어 가는데, 한 달 가까이 기도를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피부병만 나을 심산으로 공동체에 온 나의 잔꾀를 하나님께서 아시고, 기도의 감동을 주지 않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들으며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결단한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들로 하여금 내 피부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매주 주일마다 공동체 사역자님들과 감독님의 안수기도를 받으면서 피부병은 점차 회복되어갔습니다. 팔에 감겨있던 붕대를 푸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을 때는 팔에 있던 상처들이 나았고, 상체의 붕대를 푸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을 때는 상반신의 모든 상처들이 나았습니다. 그 붕대를 푸는 모습은 점차 아래로 내려가, 마침내 다리의 붕대를 푸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을 때는 다리까지 거의 전부 회복되었습니다.
감독님을 통해 보여주신 환상 말고도 화요사역을 매주 받으면서 사역자님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들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하리라.”는 말씀, 하얀 세마포를 입은 모습, 상처 딱지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 등 저의 몸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하나님이 말씀하여주신 대로 점차적으로 나았습니다.
9. 6개월 동안의 금식 ; 거짓신앙에 대한 조명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거듭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계속해서 거듭남의 중요성에 대해 반복해서 듣다보니,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조명 받지 않고는 신앙생활의 ‘신’자도 꺼내면 안 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25년 평생을 열심히 신앙생활 해왔어도 이렇게까지 거듭남의 중요성에 대해 각인된 적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식되니 금식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금식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식에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동체에서 의연히 행해지는 3일 금식은, 이전 신앙생활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금식을 해봐야 한 끼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온전한 금식이 아닌 ‘굶식’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일 동안 굶어야 한다? 처음에는 웃었습니다. 한 끼를 못 먹으면 살 수 없었던 저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혼자 사는게 빡빡했어도 밥은 굶지 않고 살았던 저였습니다. 저는 결코, 평생 금식은 못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동체에 와보니, 저보다 어린 중학생 애들도 3일 금식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쟤들보다도 의지가 약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평생을 바쳐서 반주를 하며 하나님을 위해 했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3일 동안 굶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었기에 계속 보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거듭남이 대체 무엇인지,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하나님하고 담판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게 해달라고 매달리기 시작하며, 정말 하나님이 금식 가운데 함께하시기를 구하며 7월부터 6개월 작정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당시에 아주 갓난아이 빼고 꼬맹이들 다 포함해서 40명 정도 되는 그 작은 공동체에서, 리더를 포함한 25명 정도가 금식을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매 달 마지막 주 3일을 금식하며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는 모든 것은, 어떤 선한 모양이라 할지라도 악한 것이라는 것이 조명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것, 인본적인 생각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뽑힐 것이라(마 15:13,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모든 초목은 뽑힐 것이라.)는 말씀 또한 조명되었습니다.참 무서웠습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모든 것(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음악공부를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데 힘쓰겠다는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영동지방 복음화니 뭐니 하는 것은 모두 내 인본적인 신앙생활의 산물이었고, 내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욕심이었고, 더 깊게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아닌 내가 높아지고자 했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려놓을 것이 두 가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첫째는 제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던 음악과 둘째는 제가 사랑했던 강릉에 있는 연합 찬양단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3절 말씀을 조명해 주심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심지 않으신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저의 삶의 이유였던 이 모든 것이 뽑힌다는 것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동안의 나의 신앙생활이 모두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거짓신앙이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의 생각으로 이스마엘을 생산해내고, 그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이런 아픔이었을까요? 저는 아직 살아온 삶도 짧고 인생의 어떤 크나큰 고비들을 많이 겪지는 않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제 인생의 축을 이루고 있었던 그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엄청난 믿음과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하셨습니다. 저를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끄시고자, 더 이상 스스로 계획하지 않게, 더 이상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대로 살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10. 세상의 교회와는 많이 달랐던 공동체 ; 찬양 사역팀의 실체
제가 본 이 공동체는 세상의 교회들과 참 많이 달랐습니다. 교회는 간판도 없었고 십자가도, 주보도, 교회 전화도 없었습니다. 이사 오기 전에 이 건물을 쓰던 교회가 달았던 십자가도 오히려 떼어져버렸습니다. 이런 겉모양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사역자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 온전히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성경의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를 지키는 것(성탄절이나 부활절 추수감사절 같은 세상교회의 절기들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만든 절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등은 이전의 교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교회의 풍경이었습니다. 또한 공동체는 직분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대로 행하였습니다. 즉, 여자 집사도 인정하지 않았고 권사라는 직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목사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많은 부분들이 이전의 교회들과 달랐지만 특히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의 목사로 번역된 헬라어 ‘포이맨’은 목사가 아니라 목자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세상 교회에서는 목사들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러러보고 섬겨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 모든 것들이 자기들이 섬김받고자 그렇게 가르친 것임을 알았을 때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가 얼마나 성경적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들 직분도 성경에 명시된 기준대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제가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약하고, 저는 제 관점에서 본 이 공동체와 세상 교회와의 차이점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먼저 앞에서 반바지 사건을 언급했지만, 이 공동체에서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애고 어른이고, 노인들이고를 떠나서 그때그때 지적받았습니다. 다른 교회는 교인들이 빠져나갈까봐 항상 웃는 얼굴로 좋은 말들만 해대는데, 이 교회는 도통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들이 오든지 가든지 신경 쓰지도 않았고 주일 설교는 질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누구나 지적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공동체에 들어왔으니, 물론 사십대 이상의 어른들이 보기에는 애같이 보이겠지만 그래도 무엇을 할 때마다 지적받을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공동체에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거짓신앙에서는 으레 그러려니 지나갈법한 일들이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반바지 사건 말고도 수두룩하게, 기존의 잘못된 신앙생활 습관이 나올 때면 참 신앙생활이 무엇이라는 것에 대해서 지적을 받았습니다. 특히, 저는 청년들과의 교제를 좋아했다는 것을 앞에서도 밝혔는데, 저는 그것이 당연하고 옳으며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로운 교제라고 생각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지지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에 와서 그것이 음란의 영에 이끌림 받는 행위임을 지적받고 알았을 때는 그 행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앞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많은 곳에서 반주를 했었습니다. 영동지방 전체를 품고 복음화 시키는 것을 제 사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 또한, 영동지역의 많은 수련회에서 이뤄진 찬양사역의 메인 피아노 자리에는 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전도단 강릉지부 화요모임팀에도 있었고, 홀리파이어라는 강릉 연합 찬양팀은 전문 찬양사역팀은 아니었지만 동해, 속초, 태백, 도계 등 각 지역의 대표성을 띠는 찬양팀들과 연합하여 청소년팀 수련회 찬양예배를 이끌기도 했고, 강릉의 온 교회들이 모이는 큰 연합예배가 있을 때마다 부름 받는 그런 찬양팀이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제가 이런 대단한 팀에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찬양팀들 내에 횡행하며 돌아다니는 음란의 영의 실태에 관해서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각 교회 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사역을 행하는 찬양팀들은 대부분 팀원들 간에 끈끈한 정이 있습니다. 제가 홀리파이어 팀에게 그랬던 것처럼(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찬양사역팀이 그럴 것입니다) 각 팀원들은 서로를 가족같이 여기고 챙깁니다. 예배를 준비하면서, 연습을 하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하는 모습들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갈급해하고 어떤 부스러기 은혜라도 받으면 그 은혜로 인하여 감격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팀 안에서 음란의 영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바로 제가 그랬듯이, 그 거룩하게 포장된 이면에는 그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같이 커피 마시는 게 좋고 같이 웃고 떠드는 게 좋은, 세상의 동호회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것이 그냥 사람이 좋아서라고, 서로 가족같이 여기고 끈끈한 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음란의 영이 이끄는 대로 이끌리는 것인줄도 모르고 하나님으로 포장된, 포장지만 화려한 것에 취하고 가려져서 그것이 참된 예배이고 참된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예배는, 예배의 겉모습만 화려할 뿐 예배의 실질이 없습니다. 박자 놓치면 큰일 나는 드럼, 더 세련되게 반주하고자 하는 메인 건반과 더 신기한 소리로 사람들의 혼을 울리고자 하는 세컨․ 써드 키보드, 탄성이 나오도록 화려해야 제 맛인 일렉 기타, 무겁고 진중하게 깔아주면서 드럼 베이스와 리듬을 맞춰야 하는 베이스 기타, 바이올린이나 퍼커션․섹소폰 등의 금관악기들은 있으면 금상첨화, 여기에 싱어들도 질세라 이제는 2중, 3중으로 화음을 넣으며, 그것이 은혜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하고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자 노력합니다. 일단 이러한 화려한 세션과 화음의 어우러짐이 받쳐줘야 찬양이 은혜로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인도하기 전에는 정말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예배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예배에 임하지만, 막상 자기들 밑에 선 예배 참석자들을 보면 하나님은 없고 ‘나’만 있습니다. 그들을 보지 않으려, 하나님만 바라보려 눈 질끈 감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보지만, 그래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저 앞에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어느새 교만이 치솟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화려한 세션들을 갖춘 찬양팀의 팀원이라는 자부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봉사한다는 자부심 등에 취해 그 날 찬양의 분위기가 좋았으면 ‘오늘 찬양예배 좋았다’, 사람들이 잘 따라하지 않았거나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였으면 ‘오늘 예배 별로였다’, 주일날 같은 경우에는 예배가 알바도 아닌데 “예배 몇 탕 뛰었다.” 등등의 소리를 합니다.
그러면서 큰 집회가 끝나면 뒤풀이랍시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때에 따라서는 노래방을 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이 섞이면 안 된다는 인식, 거룩함은 구별된 것이라는 의식이 없으니까 그래도 되는 건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세상 노래를 부르러 노래방을 가는 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게 전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의식도 없고, 개념도 없고, 그냥 시간 내서 하나님 예배하는데 도움 좀 주면 그것이 봉사인양, 그것이 헌신인양, 사실은 취미생활 하는 것이 전부이고 내면은 썩어있으면서 거룩한 척 눈 질끈 감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 안에서 웅크리고 활개를 치는 음란의 영은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게 하고 관심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유혹하기에 바쁩니다. 그것이 지체를 사랑하는, 가족 같다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닌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찬양팀들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영적으로 보고 지적해주는 참 리더가 없었습니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음란의 영에 대해 분별하게 해주는 것은 둘째 치고, 어떻게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겸하여 섬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한 입에서 단 물과 쓴 물이 같이 나올 수 있는지, 거룩함이란 구별된 것으로서 세상의 것과 구별되어야 하는데 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는지 책망하고 그 모든 것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올바른 목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교회와 공동체와 다른 점이었습니다. 공동체에 세워진 리더 감독님은 어떤 것도 세상의 것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것, 인간적인 생각, 영적으로 하나님의 영과 부딪히는 어떠한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즉시 지적하여 잘못된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아이고 청년이고 어른이고를 떠나, 세상에서 살면서 쌓인 모든 견고한 진들에 의한 어떤 행동들이 나오면, 그것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견고한 진들을 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일에 토를 달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영적인 눈으로 보시고 영적인 관점에서 보신 것을 얘기하신 것이었고, 따라서 그 모든 말에는 영적인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물론이거니와 어른들도 어느 누구도 항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의 음란의 영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형제의 지난날의 상처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기도해주고 싶다는 생각, 나라도 잘 해주고 싶다는 생각들이 들어서 얘기도 더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었는데, 사람이 좋아 얘기하는 것을 즐기고 나눔이라고 하는 것을 즐겼던 저의 신앙생활 습관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정립해 가는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얘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상대방이 아픈 과거나 상처 등을 얘기하면 동정심이 들면서 도와주고 싶고 작은 것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그 마음 이면에 음란의 영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잡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 안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방해하고자, 구원의 길에서 실족시키고자 횡행하는 음란의 영의 움직임을 잡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지막으로 소울타이가 되며 그 실체를 잡기 시작한 것이 2011년도 8-9월이었습니다. 감독님께서 그것이 음란의 영의 움직임이라고 지적해 주셨을 때에서야 음란의 영의 실체를 잡았습니다. 그 실체를 보니 축사 사역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여러 명과 소울타이(soul tie, 혼의 묶임)가 되어 마치 뱀들이 엉켜있는 것 같이 영들이 엉켜있었습니다. 그동안「믿는 자의 표적」강의를 통해 “사람에게 관심 끌려고 하는 것은 음란의 영의 소행이며, 관심의 본질은 섹스이다.”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여러 번 들었지만 제가 했던 그 행동들이 그 영들의 소행이라는 건 잡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무려 5-6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 영들을 잡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개차반으로 신앙생활을 했는지가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11. 자백
2011년 9월, 저의 자백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음란의 영의 실체를 잡기 시작하면서 음란의 영이 주는 생각들을 적고 안양에서 용인을 왔다 갔다 하며(공동체는 용인으로 거점을 옮기고 저는 안양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씩 감독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모든 행동들을 자백하고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기억을 끄집어내어 적기란 쉽지 않았지만, 오직 한 가지 소망, 이 영으로부터 해방되고 싶고 더 이상 이 영 때문에 신앙생활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로 모든 것을 감수하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공개된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죄의 대가는 수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조명된 후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저의 죄가 공개적으로 오픈이 되어 창피함을 당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도 나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계속 이 복된 자리에 나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자백이 계속되던 중 추석 연휴가 끼어서 강릉 집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강릉에 가서도 이 영은 저를 무의식적으로 끌고 다녔습니다. 이전에 친하게 지냈던 교회 청년들을 만나는 도중, 감독님의 “너 뭐하냐!”는 뜬금없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 연락을 받는 순간 ‘아차!’ 하며 안양 집에 돌아올 때까지 불안함에 덜덜덜 떨었습니다. 추석 연휴여서 주말까지 고향집에 있다가 가려고 계획했었는데 그 문자를 받고 뒤도 안보고 그 다음날 바로 용인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감독님을 뵈러 갔습니다. 그런데 감독님의 태도는 더 이상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을 쫓아내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치는 중에, 다시 그 영이 끄는 대로 끌려가 그 짓을 또 하고 있냐는 감독님의 책망은 하나님의 책망으로 들렸고, 재고의 여지가 없다며 집에 가라고 하시는 감독님의 태도는 하나님이 나에게 등을 돌리신 것 같아 너무나 무서워서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고 3일 동안 두려움에 벌벌벌 떨게 했습니다.
사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서워서였습니다. 이대로 내쳐지면 지옥에 가는 것이 뻔했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겠는데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죄를 씻기 위해서 어떻게 뭐라도 해야겠는데, 그때는 예수님의 보혈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 혼자 “예수님 날 위해서 죽었잖아요. 그런 나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잖아요.”를 되뇔 뿐 아무런 음성도, 아무런 위로도 없이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셨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내 영혼이 파리해진 상태에서 겨우겨우 생각해 낸 것이 하나님께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제발 나에게서 등 돌리지 말아달라고, 제발 하나님, 이 편지를 보고 나 좀 살려달라고 적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글씨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떠오르는 대로, 피폐해진 내 영혼의 상태 그대로, 숨김없이, 가식 없이 하나님께 온전히 아뢰었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쓰며 하나님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냈습니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 때의 제 부르짖음은 지옥의 고통소리와 맞먹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지쳤고 날이 밝고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갔습니다. 다크써클이 온 얼굴을 덮어 얼굴엔 검은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공동체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의 얼굴 상태였습니다. 악한영이 영혼을 파리해지게 만들 경우 어떻게 되는지 그 때 당시 나의 모습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시더니 하나님께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라고 하시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편지를 보시고 받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3주를 더 거쳐서 자백이 마무리되었고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음을 감독님을 통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시겠다고 하나님으로부터 확답도 들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이것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조명해주신 것이었습니다.「신앙의 본질」중 거듭남 부분에 기록된 그대로, 저는 거듭남을 경험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음란의 영에 이끌려 살다가 참 힘든 자백 과정을 거쳐 그 영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아마 온전히 하나님의 방법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과정을 안 거치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하나님 잘못했습니다.”로 끝난 문제 같습니까? 저는 단지 교회 안에서의 형제자매간의 교제가 즐거워 그들과 맛있는 것 먹고, 커피마시고, 볼링치고, 영화도 보고, 때로는 정말 신앙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을 나누며 말 그대로 형제자매간의 교제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음란의 영을 감지하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해서 끌려 다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참 기가 막혔습니다.
12. 성경이 사실임을 증명해주는 공동체
그 다음 해 2월, 저는 사역자로 세워졌습니다.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공동체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소망해왔던, ‘난 언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고대해왔던 사역자 자리였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지금까지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감당하면서, 또한 실생활 가운데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라는 말씀에서의 ‘내 음성’은 목사들의 말이 아니라 실제 주님의 음성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 음성을 듣고 손을 얹었을 때 나를 통해 사람의 병을 낫게도 하시고 귀신도 떠나게 하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통해 “믿는 자의 표적”이 있다는 것도 증명되었습니다. 또한 이제는 음란의 영뿐만 아니라 시기․질투․미움의 영, 가난의 영, 이세벨의 영, 거역의 영, 점치는 영 등 악한 영들이 사람을 이끄는 대로 이끈다는 것을 알게 하셔서 각 영들을 분별하게 하시고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는 말씀을 몸소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증명된 것입니다.
공동체에 와서 처음에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 스스로 증명하셨습니다. 스킨로션이 필요할 때 그것을 때때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나의 조정기간 내내 공급해주셨고, 먹고 싶은 것을 올려드리면 그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첫 금식 때 받은 은혜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첫 금식이었던 터라 먹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정말 기적같이 그 모든 것,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적어 올린 그대로 먹게 하신 하나님과 저만의 추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지금은 배가 터지도록 먹게 하셔서 공동체에 오기 전에 47kg이었던 몸무게가 지금은 59kg이 되었습니다.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어서 아무리 먹어도 50kg을 넘기지 않던 제가 한 달에 단돈 5만원으로 살아가면서도 배가 터지도록 먹고 지금은 살을 빼고 있습니다. 다들 배를 곯고 쫄쫄 굶어가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지내는 조정기간에 누구는 사이다 한 잔도 못 마셨다는데, 이정도면 공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충분히 증명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제는 절기에 대해서도 확실히 각인되어 매 절기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합니다. 유월절에는 어린양의 피로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오순절에는 성령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또한 초막절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것들을 받아 누리며 하나님을 기뻐하며 축제를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전엔 한국의 절기인 설과 추석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절기에 맞춰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더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킴으로 인해서 공동체에 재정의 통로가 열리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고 그 일하심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가 아닌 사람의 논리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얼마나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성찬식과 침례식(2014년 4월)을 통해 제 입을 잡고 있었던 귀신들이 떠나가 입이 작아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담궈지는 침례식을 통해 공동체의 어떤 지체는 몇 십 년 동안 지니고 있었던 몸의 어루러기가 없어졌고, 어떤 사람은 눈을 잡고 있던 귀신이 떠나가 짝눈이었던 양쪽 눈이 똑같이 정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리를 잡고 있었던 귀신이 빠져나가 안짱다리가 펴지고 허리가 펴지기도 했습니다. 각자 나타난 증상은 다르지만 모두에게 성찬식과 침례식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성찬식도 세상의 교회와 다른데, 공동체의 성찬은 그야말로 한 끼의 만찬입니다. 영적인 슬러지들이 쌓인 것을 느끼면 어느 때든지 자유롭게 성찬을 할 수 있게 했고, 포도주는 취하지 않을 만큼 각자 알아서 풍족하게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술을 입에 대는 것은 큰 죄라고 생각하여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던 이전에 비해 성찬에 대한 자유함이 생겼고,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며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는 것, 성경의 모든 일들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으며 말씀은 정말로 살아 움직인다는 것, 세상 교회에서 코딱지만한 잔에 포도주 몇 방울 주고 손톱만한 빵 한 조각 주는 세상 교회의 성찬식과 손끝에다 물 묻혀서 간소하게 행하는 세례식 등은 모든 것이 정말 형식적인 의식이라는 것 등이 조명되었습니다.
저는 허름하게만 보였던 이 공동체에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까이에서 내 삶을 일일이 간섭하시고 나와 대화하고 교제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하나님, 이전의 교회들에서는 말로만 들었지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님을 이 작은 초막 같은 공동체에서 만나고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화려한 겉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다시 한 번 각인되었습니다. 성경책 속의 하나님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내 삶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말뿐이 아닌 진정한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 이 확신을 주신 것에 대해 기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간증을 읽을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명이라도 이 간증을 통해 공동체로 나와 제가 만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가 막힐 수렁에서 나를 건지셔서 하늘 잔치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알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하시고 이렇게 간증하게 하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해 읽을 때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같이 모시고 살았던 모세와 같이 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하시옵소서. 저들도 참 신앙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