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초보은 1
조선 세종 때 황씨성을 가진 장군이 있었는데 그의 형제 넷이요 그가 연장자였고, 그 해 그의 부친 연세 70이었다. 하루는 그 부친이 맏아들 황장군을 불러놓고, 《내 비록 70에 상처했다만은 효자 효부 불여 악처라. 내 다시 취처할 뜻인즉 너의 의향은 어떠냐?》 황장군이 얼른 대답하기를, 《옛말에 효자 효부 불여 악처라 했건만 우리 형제로 말하면 효자에 미치지도 못하거늘 노부 심사대로 처사하십시오.》 그래서, 사처 사지 사방에 탐문했으나 종시 적임자가 나서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던 중 겨우 황장군의 면목으로 20세 되는 처녀를 맞아들이게 되었다. 헌데, 노부 취처 후 몇 달 안되어 알지 못할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하루는 네 아들을 불러 앞에 놓고 하는 말이, 《너의 계모로 놓고보면 아직 한창 청춘이라 이 일이 난사로다. 나 죽은 뒤 좋은 혼처 구해 시집을 보내라.》 그러자 황장군은 혼연히 대답해 나섰다. 헌데 , 그 며칠 뒤 노부 다시 네 아들을 불러 앉히더니, 《내 천금같은 남의 집 여식을 데려다 한 번 변변히 동침도 못했거늘 나 죽거던 너의 계모를 나의 곁에 함께 묻어 달라.》 말 마치기와 같이 노부가 눈을 감으니 황장군의 세 동생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그 계모를 함께 매장하려 했다. 이 때 황장군이, 《옛날 노비와 상관지간에는 이런 악습이 있었다만 그 법이 좋으면 언녕 폐지 되었겠느냐? 아서라! 어찌 산 사람을 매장한다더냐?!》 이래는 놓았지만 아무리 보아야 자기는 필경 혼자요 동생들은 셋이라 안심이 되지 않아 얼른 그 계모를 빼내며 좋은 혼처를 찾아 떠났다. 반년 만에 겨우 적혼처를 찾아 출가를 보내고야 말았다. 그 수년 뒤 조정에서 말방소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키니 나라에서는 황장군을 대장군을 삼아 이를 대처하게 했다. 바로 이 때, 지하에 간 황장군의 계모 부친의 영혼이 가만 생각해 보니 이때야말로 자기 딸의 처사를 훌륭히 잘해준 황장군의 은혜를 갚을 기회라 생각했다. 하여, 그는 말방소가 나가는 길길에 풀을 어기잡아 매놓고 그대로 그곳으로 인진을 하니, 말방소 말들이 번번히 풀에 걸려 말방소 또한 말에서 떨어지니 황장군은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그를 잡게 되었다. 이로부터 《결초보은》이란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결초보은 2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에 한 임금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세월이 흐로고 흘러 부왕도 늙게 되니 후사가 걱정되었다. 어느날 부왕은 뒷일을 생각하여 두 아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얘들아, 내 너희들에게 뒷일을 한 가지 부탁하니 후일 어김없이 시행토록 하라. 이 다음 내가 죽거들랑 너희들 서모를 순장하지 말고 남몰래 친정집에 돌려보내거라. 들었느냐?》 《네. 들었습니다.》 형과 동생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때로부터 세월은 또 흐르고 흘러서 늙고 병든 임금은 자리에 누워 더는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임금도 제 운명을 아는지라 임종 전에 그는 두 아들을 불러놓고 유언을 남겼다. 《얘들아, 난 이제는 아주 글렀구나. 내가 죽거들랑 너희 서모를 순장하여라. 내가 죽어 땅에 묻히는데 부부일신이라고 함께 묻혀야지. 살려두지 말고 꼭 순장을 해야 한다. 알아들었으냐?》 《예, 들었사옵니다.》 두 형제는 또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얼마 후 임금은 끝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임금이 세상을 드니 장례를 해야 하겠는데 생전에 두 가지 같지 않은 유언을 남겼으니 두 형제의 처사도 어렵게 되었다. 먼저 동생이 형을 보고 제 생각을 말했다. 《형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가 병석에서 하신 말씀대로 서모님을 순장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유언이니 그대로 좇아야지요.》 형도 생각이 있었다. 형은 동생의 생각과 달랐다. 《그건 안 될 말이네. 아버지가 순장하라고 하신 것은 병들어 정신이 흐린 때에 하신 말씀이요, 순장하지 말고 집에 돌려보내라고 하신 것은 몸에 병도 없이 정신이 맑을 때에 하신 부탁이네. 그러니 우리는 아버지께서 정신이 맑을 때 하신 말씀대로 서모님을 순장하지 말고 집에 돌려보냄이 가당한 처사인가보네.》 동생이 생각해보니 형의 말에 도리가 있는지라 제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형님 생각대로 하자고 순응해 나섰다. 그때는 왕이 죽으면 왕비와 처첩들을 순장하는 때라 두 형제는 남의 눈을 속여 어머니를 순장하는 체하고 장례가 끝나자 가만히 친정집에 빼돌려보냈다. 그 후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나라에 싸움이 생겨 두 아들은 병정을 거느리고 싸움터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싸움을 하기만 하면 패하기만 하여 병정을 걷어가지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두 형제는 또 병정을 거느리고 싸움터로 나가게 되었다. 두 형제가 한창 군사를 몰고 나가는데 문득 하늘 공중에서 《청초파, 청초파(靑草坡)》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이상하오. 하늘 공중에서 울려오는 저 소리가 무슨 소리요?》 동생이 말을 멈춰세우고 의아쩍게 물었다. 《동생도 그 소리를 들었나?》 두 형제가 머리 위의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니 분명 하늘 공중에서 《청초파, 청초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은 무릎을 탁 쳤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도와주는구나. 동생, 우리 오늘 청초 우거진 언덕에서 싸우면 기필고 승전할 것이니 어서 청초파로 가세.》 이리하여 이날 두 형제는 청초파에서 싸움을 벌렸는데 웬 일인지 적군이 탄 말들이 기세 드높이 들이닥치다가는 갑자기 폴싹폴싹 제자리에 거구러지며 한치도 전진하지 못하였다. 이에 사기 충전한 두 형제는 싸울수록 기세 높아져 대승전을 거두었다. 싸움이 끝난 뒤 두 형제가 전장을 살펴보니 온 청초파가 청초를 마주 매여서 만든 올가미천지였다. 적들의 탄 말은 모두 이 풀로 묶어 놓은 올가미에 발이 걸려 나뒹굴었었다. 이것은 인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분명 하늘이 도우시어 한 일이라 두 형제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 인사드렸다. 《하느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이 때 하늘 공중에서 난데없이 웬 백발노인이 홀연 내려오더니 그들 앞에 와 공손히 인사하였다. 《두 장군께서 은혜라니 무슨 말씀이시오. 이건 노옹이 그대들께 은혜를 갚는 것이올시다.》 《노인님은 누구시기에 도리여 은혜를 갚는다고 하시옵니까?》 초면 강산에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갚는다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백발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고 그 사연을 아뢰었다. 《이 늙은이는 그대들 서모의 부친이로소이다. 그때 그대들이 내 딸을 순장하지 않고 집에 돌려보낸 덕으로 살아 천륜지락을 보고 죽어 승천해서도 만복을 누리니 오늘 이 노옹이 청포파에서 결초보은하는 바이옵니다.》 말을 마치자 백발 노인은 눈깜짝 새에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이 때로부터 결초보은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출처: 우리말 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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